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4편 : 9부~12부
아역 연기자들이 퇴장하고 성인 연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것으로, 극은 제2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제부터 우리는 낭도가 된 덕만을 중심으로 신라의 ‘화랑도’를 만나게 된다. 천명이 김서현 일가를 서라벌로 불러들이고 유신의 용화향도 역시 자신의 화랑으로 데려왔으나, 용화향도는 보종이 이끄는 일월성도를 포함한 ‘서라벌 10 화랑’에게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상징 깃발까지 뺏긴다. 김서현은 그 전부를 지켜본 뒤, “이것이 화랑도다. 겉으로 보기엔 곱고 아름다우나 엄청난 훈련과 전쟁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만 화랑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어떤 시대도 아닌 오직 신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랑, 화랑의 정신이라는 요소는 이 극의 재미를 담당하는 큰 축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화랑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문제시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용화향도는 화랑의 ‘비재’조차 치르지 못하는 오합지졸로 취급된 치욕을 씻기 위해 몇 년간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데, 덕만은 체력이 약해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와중에 화랑 하나가 기생들을 양옆에 두고 궁 안을 거닐다 덕만을 보고는, “참 신묘한 일이로군. 어찌 네 놈이 이 년보다 예쁜 것이냐.”, “얼굴은 곱상한 것이 수련은 형편없다. 혹 계집이 아니냐.”, “내 그 생각을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대사를 하며 덕만의 옷을 벗기려 하고 희롱한다.
이 장면은, ‘우리’ 덕만이가 무시당하자 화가 난 용화향도가 벌인 패싸움이 그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겨뤄야 하는 ‘진성 비재’를 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전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장면이다. 질문해야 하는 것은, ‘덕만에 대한 무시’로도 충분한 시발점이 왜 ‘성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냐는 것이다. 여자인 것을 들킬 위기가 강제로 옷을 벗기는 행위로 재현되는 장면은 TV 너머로 전해질 때 굴절되어 드라마 밖의 여성 시청자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대사 속 ‘년’, ‘계집’ 따위의 단어들은 이 모욕감을 배가 되게 만든다. 화랑의 주인인 공주도 여자, 화랑을 키운 뒷배이자 원화 출신인 미실도 여자인 설정 속에, 이 장면의 의도는 더욱 의문스럽다. 특히 덕만을 희롱하는 이들은 덕만이 정말로 여자인 것은 모르기 때문에, 이는 ‘여자 같은 남자’, ‘여성성’이라 이름 되는 특성을 가진 남성을 모욕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화랑은 아름다운 용모가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한 집단인 만큼, 다각적으로 혐오를 내뿜는 이러한 장면은 ‘예쁘다’는 것이 여성만의 것이 아니었던-지금의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신라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대상(신라 시대가 아니라 2009년)의 문제일 것이다. 더 나아가, 무인으로서 덕만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문제, 즉 그의 고질적 체력 문제는 덕만이 태어나자마자 빼돌려지느라 그 과정 중에 불길 속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시녀 소화와 마찬가지로 폐가 좋지 않다는 기존 설정으로도 충분히 상상될 수가 있다. 체력이 약한 문제를 덕만이 여성이라는 점과 연결시켜 놓은 게으른 작업은 상당히 안타깝다.
용화향도는 결국 죽음을 각오한 진성비재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부여장(백제 제30대 왕 ‘무왕’)이 직접 이끄는 백제군이 무서운 기세로 전쟁을 걸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모든 화랑들은 급하게 전쟁에 투입된다. 이렇게 유신과 덕만은 한번 더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전쟁은커녕 비재도 한번 해보지 않은 채의 용화향도는 화랑 ‘알천’의 비천지도에 편재된다. 그런데 전쟁의 총지휘관인 병부령 설원이 김서현과 그 측근의 부대, 용화향도를 포함한 비천지도 등을 적극적 작전 수행에서 배제시키고 방어를 맡기더니, 김유신만은 자신과 함께 속함성으로 데려간다. 설원이 이 전쟁에서 쓰고자 하는 전략은 ‘반간계’이다. 백제군의 첩자를 역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계책인 것이다. 설원은 속함성으로 진군하는 모습을 일부러 백제 첩자에게 보인 뒤 김서현 부대에게 아막성 제1관문을 뚫으라는 군령을 내려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진짜’ 작전인 것 마냥 백제군을 속인다. 이후 아막성을 막기 위해 백제군이 허겁지겁 이동하는 바람에 텅 비어버린 속함성을 설원이 이끄는 부대가 치고, 이로써 신라군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것이 전장을 누비던 원화 출신의 ‘미실’이 설원에게 ‘사람을 흔들면 군이 흔들린다’는 힌트를 준 것에서 출발한 전략이라는 점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점이다.
그리고 설원이 한 술을 더 떠서 김서현 부대에게 아막성을 아예 점령하라는 최종 군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우리는 바로 이것이 전쟁의 첫 번째 얼굴임을 확인하게 된다.
설원은 전쟁을 이용해 김서현을 죽이려는 것이다. 이는 이후 자세하게 다룰, 미실과 관련된 그의 열등감 때문인데, 그는 자신의 정적이 될지도 모르는 자를 없애는 것을 신국의 승리에 따라올 몫으로 미리 챙겨두었다. 이미 신라의 승리가 결정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아막성을 총공격하라는 것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과 같다. 설원은 너무나 잔인하게도, 유신이 원군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묻자, “원군? 원군은 없느니라”라고 말하며 웃는다. 내 살을 내어주고 적의 뼈를 끊는다는 뜻의 육참골단의 전략이라 못 박으며 말이다. 백제에 김서현의 부대를 내어주고 속함성을 끊어낸, 장수로서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전략이자, 그곳에 남은 청룡익도 등의 자기 사람들을 내어주면서까지 김서현을 끊어내고자 하는 그의 비열한 수. 설원은 “네가 네 아비와 낭도들을 구해내야 하느니라”라며 김유신에게 퇴각 명령을 전하라 명한다. 사실 전령으로 누구를 데려가든 성공할 작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아버지와 낭도들이 죽음 직전에 모두 남아있다는 패닉 상황을 굳이 쥐어준 설원의 수는 유신이 퇴각 명령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백제라는 외부의 적 앞에 하나 된 신라인 듯 보이지만, 전쟁을 이용한 계산들이 그것의 절반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모질게나 선연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을 천명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김서현 부대의 아막성 전투만이 이 전쟁에 남은 마지막이 된 상황에서, 퇴각을 돕기 위해 병력을 지원하는 것은 확전을 의미하므로 절대 되지 않을 일이 되어 있다. 자신의 사람을 모두 잃을 위기에서, 천명은 흔들림 없는 표정을 기어코 지어낸다.
“새주께 배웠습니다. 살아 돌아오면 내 사람이오, 아니면 그냥 고마운 사람 아닙니까.”
“육참골단. 그들은 저에게도 살입니다. 살을 내주었으니 전, 뼈를 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황상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김서현에 관한 사후 대우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천명은 만명과 야합해 황실을 등진 죄를 물어 진골 화랑 자격을 박탈당했던 김서현의 과거를 황실의 이름으로 지우며 김서현의 복권을 확실히 한다. 또한 그의 죽음을 전제한 흐름을 “살아 돌아온다면요?” 하고 물어 끊어내기도 한다. 사실상 김서현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기적이고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무리수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김서현이 살아 돌아올 사실을 두고 봤을 때, 천명은 이 작은 가능성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세력 기반을 다지는 똑똑한 수를 둔 셈이 되었다. 이는 모두 천명이 가진 군주의 모습일 것이다. 덜덜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전쟁을 이용한 계산을 구태여 해내 보이는 얼굴 말이다.
한편, 덕만은 이 전쟁에 낭도로서 참여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런 덕만을 통해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전투에 투입되어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개인의 생과 사가 아니라 다만 화랑의 이름으로만 기억될 거라는 무력하리만치 거대한 현실. 승전보 하나를 위해 잃은 이름 모를 사람들. 친구 ‘시열’을 죽이려는 백제군 뒤에서 창을 날려 꽂는 덕만의 첫 살생과 멍하니 멈춰 있는 덕만을 노리는 백제군에게 사정없이 칼을 꽂는 용화향도 낭도들. 내 동료를 살리려면 다른 생이 멈춰야 하는. 죽어 널브러져 있는 백제군을 앞에 두고 이겼다는 함성이 울려 퍼지는 뒤로, 덕만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감추지도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다. 전쟁은 생명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시공간인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상황을 다름 아닌 살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버텨내야 하는 점은 상황을 더욱 끔찍하게 만든다.
그런데 덕만을 통해 전쟁의 얼굴을 만나는 한편으로, 우리는 전쟁을 통해 덕만에게서 군주의 얼굴을 보게 된다.
유신이 김서현 부대에 무사히 퇴각 명령을 전하고, 퇴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서현은 “살아 돌아가야 할 본진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 임무”인 조이군으로 알천과 그의 비천지도, 그리고 그에 편재되어 있는 용화향도를 선택한다. 이때, 부상이 심해 기동력에 해가 되거나 전투에 임할 수 없는 부상병들은 수장인 알천이 직접 목숨을 거둔다는 비천지도의 약속이자 원칙이 공개된다. 그런데 조이군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천까지 부상을 당해 지휘권을 유신에게 넘기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그리고 원칙대로, 알천은 자신의 낭도에게 자신을 베라고 명령한다. 모두가 이 일촉즉발의 공포 상황에 아무 말을 못 하고 있을 때, 척후 임무에 다녀와 퇴각로 정보가 담긴 서찰을 가지고 있던 덕만이 알천에게 소리를 지른다.
“만약 여기서 또다시 부상병을 벤다면 서찰을 보실 수 없을 겁니다.”
덕만은 서찰을 아예 삼켜버리고는 알천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이제 퇴각로를 아는 건 저뿐입니다. 저를 베시고 부상병도 베시고 남은 병사들도 길을 모른 채 모두 함께 죽어가든지! 부상병도 살리시고 저도 살려서 남은 병사들과 다 함께 퇴각을 하든지. 둘 중에 고르십시오.”
“유신랑께서는 전투가 끝난 지역까지 우리의 생사를 확인하려 오셨습니다. 하여. 부상당한 낭도를 찾아내셨고 저를 업어 옮기셨습니다. 또한 죽지 않고 싸우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 했고 부상당한 동료를 제 몸처럼 업고 가기 위해 곡식 한 가마니를 지고 산을 오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 했습니다. 저는 동료 하나 지켜주지 못할 체력이라는 이유로 늘 흙주머니를 차고 훈련했습니다. 그게 용화향도라 했습니다.”
알천이 화가 나 소리친다.
“지금은 전시다. 그런 온정이 통할 것 같은가!”
“그것이 훈련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사기입니다. 사람은 자기한테 사기를 친 사람한테 충성을 바치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반기에 알천이 그를 누르려한다.
“현실을 직시하라. 우린 조이군이야. 부상병을 데리고는 하루 십리도 가기 어렵다.”
알천의 원칙은 그 이유마저 논리적이기에 언뜻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덕만이 찾아낸 하나가 있다. 전쟁에 임하는 우리는 장기말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충성심이 없는 자들을 데리고는 하루 1리도 가기 어렵습니다.”
“우릴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겁니다. 살 희망을 달라고 하는 겁니다. 싸우려고 하는 병사의 의지를 어찌 꺾으시려 하십니까. 어찌 겁먹은 우리를 더 두렵게 하십니까. 어찌 동료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 하십니까. 우리 모두 살고 싶고 살기 위해 싸우고 싶습니다.”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듯 보이는 덕만에 알천은 마지막으로 그를 다그친다.
“같이 살 수가 없다는데도. 같이 싸울 수가 없다는 데도!”
그런데 이때, 덕만이 군주의 얼굴을 해 보인다.
“방법을 찾으십시오. 그게 지휘권자의 임뭅니다. 그게 저희가 화랑이신 두 분께 충성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아닌 당신들에 대한 충성을 이용하라는 직언. 따르는 이들에게 더 나은 방향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군주의 조건을 덕만은 이미 알고 있으며, 정말로 그 마음을 간직한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이 장면으로 예고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비가 마구 쏟아지는 와중에 덕만이 살벌한 눈을 해 보이는 이 장면을 특히 아낀다.
그리고 지휘권을 넘겨받은 유신은 독초를 이용한 선제공격이라는 방법을 생각해 내 덕만의 마음에 보답해 보인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용화향도는 풍류황권에 이름을 올리고, 김서현마저 살아 돌아오게 되며 천명의 기반은 더욱 탄탄해진다.
그리고 이제 전쟁의 마지막 얼굴이 드러난다.
김서현이 살아 돌아오며, 전쟁을 이용한 설원의 계산은 어긋나게 되어버리고, 설원의 오랜 불안만이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김서현이 더 크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설원의 말에 미실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냥 좀… 아까워서요. 매번 사지에서 살아 돌아오고 점점 강해지는 모습이 마치 젊은 날의 설원공 같지 않습니까?”
김서현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탐을 내는 미실을 목도한 후, 설원은 손으로 컵을 깨고 피를 흘려가며 조급해하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아들 보종에게 이 조급함이 옮겨가 버린다. 낭도 화정에게 김서현을 암살하라 시킨 것이다. 일을 수습하기 위해 미실과 설원이 나서 암살은 실패하지만, 궁지에 몰린 화정이 덕만이 미수범이라 지목해 버리게 된다. 덕만은 만노군에서 만났던 친우 ‘지운 스님’과 회동하고 있다가 휩쓸려 버린 것인데, 이 지운 스님은 알다시피 ‘천명’이다. 공주가 승녀 행색을 하고 낭도와 만나고 있었다는 논란을 키울 수가 없는 황실에 의해, 천명은 덕만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쉬이 나설 수가 없다. 그러나 용화향도의 활약으로 진범 화정이 잡히고, 유신은 그를 문초 당해 넋을 거의 잃은 덕만 앞에 데려다 놓는다. 진짜 배후가 누구냐고 모두 앞에서 묻는 유신과 진범과 눈 맞추는 미실의 눈빛은 압권이다. 네가 무엇을 말하지 않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지 않느냐는 눈.
화정은 자신이 대가야 출신으로, 신라에 빌붙어 명을 유지한 금관가야의 김서현 일가에 복수하려고 한 것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결한다. 그때 진평의 명으로 어디도 가지 못하게 방에 가두어져 있던 천명이 결국 밖으로 나와 이 현장에 입장하고, 덕만은 지운 스님이 공주 천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명의 정체를 알게 된 덕만의 충격으로 끝나는 에피소드이지만, 나는 전쟁이라는 키워드와 가야를 연결 짓는 것이야말로 진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덕만이 유신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다.
“전쟁 말입니다. 왜 하는 겁니까. 상처만 남는 이 죽을 짓들을 왜 하는 거냐고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그러자 유신이 답한다.
“살아남고 싶어서겠지.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내 할아버님의 나라가 그렇게 사라져 가지 않았느냐.”
너무도 작은 나라 신라가 살 길을 찾기 위해 진흥이 찾은 답은 조금이라도 더 큰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정복 군주는 전쟁을 통해 가야를 삼켰고, 우리는 화정의 대사를 통해 가야는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상처로 피를 질질 흘리며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지 못해 사라져 버리고야 만 나라의 원망과 함께, 신라는 앞으로 어떤 전쟁을 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덕만은 군주의 자리에 앉아 군사들 몇을 보내라는 명령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동료들이 죽고 수많은 목숨이 버려져야 하는 전쟁터가 떠오를 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밖에서 죽어가는 젊은 목숨들을 두고 궁 안을 계산을 하는 기만을 어떻게 다루며 살게 될까. 화해하지 못한 이들까지 품어 하나가 돼 앞으로 가야 하는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직은 멀고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