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6편 : 15부, 16부
천명이 덕만과 유신을 자신의 양 날개로 삼아 본격적으로 미실과 대적하려 한다. 이를 위해 그가 가장 처음 한 것은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것이 ‘책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간 미실이 책력을 이용해 ‘천신황녀’로의 지위를 굳건히 해왔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미실의 힘의 근원을 파악해가고 있는 아이들에겐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인 것이다.
‘사다함의 매화’가 상단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천명의 명으로 유신과 덕만은 이 자취를 쫓아간다. 이 과정에서 사막 출신의 덕만이 사신단과 상단의 음식을 맡게 되면서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사다함의 매화’와 함께 미실에게 전해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쌍둥이 한쪽을 찾아오라는 미실의 명으로 궁을 떠난 ‘칠숙’이 돌아와 15년을 넘게 묵은 임무에 대한 보고를 한 것이다. 상단 호위무사를 하며 목숨을 부지해 온 그는 사막에서 챙긴 ‘덕만’의 물건들을 상단을 통해 미실에게 전달한 후 훌쩍 떠났다.
‘궁주님. 화랑 칠숙, 맡은 임무를 보고 드립니다. 쌍둥이 한쪽과 그 시녀는 시신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제거되었습니다. 궁주님께 너무 늦은 죄로 용서를 구할 수 없고 궁주님께 이 칠숙, 더 이상 소용이 될 수 없을 듯하여 이제 물러가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소용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은 그가 시력을 거의 잃은 채이기 때문에 한 것으로 보인다. 사막에서 마주친 덕만과 소화를 쫓는 과정에서 칠숙은 불길에 눈을 다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미실과 궁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데에는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시신을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제거되었다고 보고한 시녀와 그가 함께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어찌 된 운명인지 함께 눈을 뜬 칠숙과 소화는 그 뒤로 줄곧 함께 지내왔다. 심지어 죽어가는 소화를 칠숙이 살리기까지 하고, 덕만을 잃었다고 생각해 마음에 병을 얻어 말을 잃은 소화를 칠숙이 계속해서 놓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칠숙의 마음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소용이 없다. 거대한 모래폭풍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연약했기 때문에. 새주의 명, 15년의 세월, 그 세월 내내 이어진 악연 그런 것들이 전부 부질 없어질 만큼 모래폭풍은 거대했다. 칠숙은 자신조차도 왜 소화를 여즉 붙잡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찰과 물건들을 받아본 미실은 당장 칠숙을 찾아오라는 명을 내린다. 칠숙이 세월을 뚫고 임무 보고를 위해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세월이 얼마나 모졌을지 가늠할 수 없어, 미실은 눈물을 흘린다. 그는 영원도, 목숨도 불사하라는 자신의 명을 위해 기어코 돌아온 자신의 ‘사람’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미실에게 감히 소화를 숨긴 칠숙의 마음과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이후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 중 하나이다. 지금 이 시점, 쫓아오는 미실의 손길을 모른 채, 칠숙은 소화의 닫힌 마음을 감히 열 생각도 못하고 단지 옆에서 걸을 뿐이다.
문제는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잠입한 덕만이, 칠숙이 미실에게 보낸 이 물건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두고 온 것들이 다름 아닌 미실에게 전해진 모양새를 말이다. 덕만은 공포를 느낀다. ‘사다함의 매화’와 미실 주위를 얼쩡거리다 아예 미실에게 잡혀 간 덕만은 미실이 어린 날 자신이 읽던 책을 펼쳐두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벌벌 떤다. 미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어린애의 얼굴을 보고는 웃더니, “너도 이것이 사다함의 매화인 줄 아는 모양이구나. 천명 공주가 사다함의 매화를 찾으라 명했느냐.”라고 말한다. 덕만이 천명의 명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찾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미실은, 그것이 책력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덕만이 다만 겁을 내고 있다 생각해 우스운 것이다. 미실은 그 책에 적혀있는 필기 하나를 집어 읽는다. 천명의 명에 무턱대고 자신의 뒤를 쫓는 이 순진한 아이를 좀 놀려줄 생각이다.
“… 이 책에 악한 짓 한 번 안 하고 결백하기만 한 자는 지도자의 자질이 없다, 그리 되어 있더구나. 헌데 너는 어찌하여 착해빠지기만 한 천명의 사람을 자처하느냐. 너도 천명처럼 사람은 선하다, 생각하는 것이냐. 아니다. 아니야. 사람은, 인간은 악한 존재다.”
사람들의 악한 그늘을 쭉쭉 뽑아내 자기 가는 길에 써 온 그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사다. 그렇게 믿어오고 또 그렇게 살아온 미실의 정치인 것이다. 지도자라 하면 무릇 강해야 하는 법, 그런데 그 강인함을 미실과 덕만은 다르게 해석한다. 덕만이 벌벌 떨다가도 이내 눈을 또렷이 떠 보이고는 말한다.
“물은 악합니까?”
덕만이 이리 묻자, 옆에 있던 미생이 미실을 대신해 답한다.
“홍수가 나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농토를 잃게 만드니 악한 것이 아니냐.”
문답이 계속된다.
“허나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아닙니까. 해는 선합니까?”
“해가 없으면 역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선한 것이 아니냐.”
“허나 가뭄을 일으키는 것도 해입니다. 저는 사람은 그냥 해와 물 같다 생각합니다. 그냥 자연이요. 그래서 저는 물이 사람을 죽이고 농사를 해치지 않도록 치수를 하듯 사람이 사람에게 이롭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이롭도록 행동하려 할 뿐입니다. 또한 천명공주님의 일을 하는 이유는 그분이 선해서가 아니라 천하만민을 이롭게 하시려 한다 믿기 때문입니다.”
미실이 공포와 환상을 이용한다면 덕만은 함께 두려움을 이겨내고 함께 꿈을 꾸겠다는 종류의 강인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실은 이를 두고 “재밌는 놈이로구나”라고 평한다. 미실은 덕만의 이상을 그저 재밌는 논리, 꽤나 똘똘한 생각으로만 보고 자신의 것과 감히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는 보지 않는 것이다. 서라벌에 있는 모든 세월, 자신이 생각한 정치는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만이 왕좌에 오른다는 것은 그 모든 기득권을 뒤집는 일, 서라벌 판을 갈아엎는 일이 될 것이며 따라서 덕만은 미실을 넘어선 다음에도 미실로 인해 고단하게 될 것이다.
이어 미실이 이렇게 말한다.
“내 사람이 되거라.”
“너의 생각은 더욱 크게 쓰도록 할 것이니.”
미실과 덕만, 둘 모두 서로를 ‘영입’하려 했다는 것이 이 극을 관통하는 재미일 것이다. 덕만이 미실을 가지려 하는 것은 이로부터 먼 훗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 시대에 한 꿈을 꾼다는, 서로 맞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한 번씩 탐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덕만은 미실에게 적수가 아닌, 내게 오면 좋은 장기말이나 그렇지 않대도 상관없는 인물 정도다. 미실은 다음날 엉망으로 적혀 읽을 수 없는 서찰 하나를 덕만에게 보내 그가 주변의 신임을 잃게 만들고, 그렇게 대충 꺾인 날개를 손에 넣을 생각이다. 즉, 미실이 덕만을 품으려고 던진 지금의 수는 ‘이 정도만 되어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게 신통하여 바로 죽이긴 싫어서요. 제 발로 찾아오게 해야죠.”라는 말로 그는 동생과 내기를 걸기나 한다. 미실이 오래된 노련한 용이라는 점, 그래서 관록에서 오는 그 여유라는 것이 이 싸움판의 흐름을 여러모로 좌우하곤 하는데, 지금은 이무기를 놓쳐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무기를, 그가 라틴어를 읽을 줄 안다는 이유로 솔깃해진 미실이 다시 직접 자신의 가까이로 불러들이게 된다. 칠숙이 전한 책을 자신을 대신해 읽으라는 명이었다.
자신에게는 읽히지 않는, 그 아이가 읽었다는 책을 며칠 째 들여다보는 미실의 얼굴은 묘하다. “그 쌍둥이의 한쪽이 이런 책을 읽고 있었단 말인가…”라며 중얼거리는 장면도 있다. 세상에서 죽어 더는 없는, 분명히 존재했던 똑똑한 흔적들을 보고 그는 생경한 기분이 된다. 그리고 기어코 붙잡은 칠숙의 눈의 시료는 물론 함께 온 여인에 대한 치료도 약속하면서, 쌍둥이의 한쪽이 어땠는지를 묻는데, 그가 “총명하고 대범했습니다”라는 대답을 한 것을 두고두고 곱씹기도 한다. 이미 미실의 세상인 서라벌, 이 서라벌 너머에서 어쩌면 더 강한 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어린애에 대한 약간은 무심한 질투였을 것이다. 그리고 죽은 어린애에 대해 갖는 승부욕 같은 이 유치하고 추잡한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것을 읽을 줄 아는 애를 앉혀 두고 읽게 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 애의 책인 줄도 모르고. 자신을 대적할 이무기가 버젓이 살아 자신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모래폭풍에 아이가 살아남을 리 없기에, 눈앞의 덕만의 정체에 대해 추호도 의심할 거리가 없는 미실은 ‘아무것도 아닌’ 덕만에게 오래된 비밀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저잣거리에 가면 이 미실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도 나돈다더구나. 들어본 적 있느냐?”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헌데 그 소문들도 다 내가 퍼뜨린 것이다.”
“사람들이 날 무서워하는 것과 무서워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유리하겠느냐?”
그리고는 지금 손에 넣은 ‘사다함의 매화’, 즉 책력을 통해 계산하고 있는 ‘월식’을 이용해 꾸미는 일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놀리듯 비밀을 누설한다.
“내가 너에게 정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할 텐데, 비밀을 지킬 수 있겠느냐?”
“사실은 하늘의 뜻이란 건, 없느니라.”
“실망하는 눈치구나. 별 거 아니야?”
“나는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 것인데. 하늘엔 아무런 뜻이 없느니라. 있다 해도, 그 뜻은 인간과는 별 상관이 없어. 물론 앞일은 모르는 것이다. 허나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미실의 뜻이지, 하늘의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뜻을 빙자한 미실의 뜻은 무엇인가. 전편부터 이어지는 미실의 탐욕, 김서현 일가를 손에 넣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천명이 아닌 자신에게 오라는 단도직입적인 말에, “새주께서 저를 얻으실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줄 아옵니다.”, “절 죽이셔서 그 시신을 가지시옵소서.”라고 답하는 유신을 직접 대면한 후로, 이 ‘사람’들을 가져야겠다는 미실의 욕심은 깊어만 갔다. 그리하여 미실은 김서현 일가의 지지대인 가야 유민들을 인질로 삼아 그들의 다리를 부러뜨린 후 자신의 손을 잡지 않고는 일어서지 못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 우선 가야인들이 자신의 인질임을 눈짓하기 위해 미실은, 가야민들을 서라벌 백 리 밖으로 내치지 않으면 ‘사흘 안에 달은 빛을 잃을 것이요, 스무 나흘 안에 서라벌과 그 백 리 안에 대기근이 일어나 만백성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는, 천신황녀로서 ‘하늘로부터 받은 계시’를 던져두었다. 책력으로 계산한 월식은 과연 ‘미실의 뜻’대로 일어나게 되어 있고, 가야 유민들은 터전을 잃게 될 것이며, 하늘을 업은 듯 보이는 미실의 절대적 힘에 김서현 일가는 무릎을 꿇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미실은 월식이 결국 일어나게 된 밤에도 그것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자신의 별실에 앉아 유유히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좌절한 채로, 책을 읽기 위해 별실에 들어선 덕만에게 미실이 말한다.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니라. 사다함의 매화는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책력이니라. 그것을 알기 위해 잠입한 것이 아니냐. 가서 천명하게 고하거라.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었다고. 허나 너희들이 그것을 안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십 년간 계획하고, 준비하고, 많은 희생이 있었느니라. 그리고 오늘의 월식까지 만들어냈다. 이것이 사다함의 매화이니라.”
“이 미실은 하늘을 이용하나 하늘을 경외치 않는다. 세상에 비정함을 아나,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는다. 사람을 살피고 다스리나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다. 허나 너희는 무엇이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미실이야. 가서 모두 전하거라.”
이때 미실의 목소리는 오만에 가득 차 보이기도 하고,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보이기도 하며, 권태에 젖은 믿음으로 굳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자신을 대적할지도 모른다는 아이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 지도 15년이 훌쩍 넘어 있는 지금, 그 아이가 모래 폭풍을 만나 죽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지금, 미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하늘이 미실의 편이라 생각했지만 미실은 하늘을 믿지 않는다. 하늘은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하늘이 자신이 계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던져줬던 날이 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어서 애가 타던 그날의 예언. 그리고 그 예언이, 그렇게 갈라진 별이, 이제는 소용을 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미실의 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오래된 명령으로 인해 망령처럼 떠돌던 수하까지 손에 넣은 참이다. 미실의 뜻대로 하늘은 움직이고, 미실의 뜻대로 달은 빛을 잃는다. 하늘의 뜻은 곧 미실의 뜻이다. 그것이 미실만이 알고 있는 아주 오래된 비밀이다. 책력만이 사다함의 매화이겠는가? 미실이 가진 무기들은 아주 많다. 그중 절대적으로 강력한 무기는 그 자신이다. 그는 다른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주인으로서 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 미실의 힘의 근원을 안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심이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애들과 그런 건 다 환상이라고 말하는 어른의 싸움. 형세는 미실에게 이미 너무 유리하다. 누구와 싸우는지 무엇과 싸우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진심을 떠드는 아이들을, 미실은 차근히 밟아버리려 한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어린 마음들을 완전히 망가뜨리려 한다.
“무서우냐?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덕만과 천명, 그리고 유신. 이들은 미실이 던져준 선택지 중 무엇을 택하게 될까? 도망칠까? 분노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덕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막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이 서라벌에 돌아와 자신의 과거를 미실에게 바쳤다. 이게 다 무어냐고 따져 물어야 하는데, 미실은 잔인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도망치라 속삭인다. 자기가 누구인지만 알면 되었던 덕만은, 자신이 줄곧 너무도 거대한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걸 직감해 버렸다. <7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