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0편 : 25부, 26부
천명이 죽었다. 그가 죽어가며 남긴 말은 덕만이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부다. 유신은 천명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덕만에게 이 유지를 전해주는데, 덕만은 독기가 어린 눈빛으로, 그래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난 그거 못 지켜.”
“언니가 남긴 유언. 그거 못 지킨다고.”
“그 유언, 단 하나도 못 지켜. 아니, 안 지킬 거야.”
언니라고 한번 불러보지도 못한 천명의 죽음을 목도해 놓고 덕만은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 천명을 죽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신라다. 그깟 저주 하나로 자신을 버리더니 이제는 자신으로 착각해 언니를 죽게 했다. 덕만은 그런 신라에서 도망치기가 싫다. 지기가 싫다.
“난 떠나지 않아요. 신라에 있을 거야. 죽지 않고 신라에 있을 방법을 찾을 거예요. 아니, 죽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을 거예요.”
“신라를 먹을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여기, 이 신라를, 뒤집어 버릴 거라고. 미실이면 되겠지. 미실을 무너뜨리면 되겠지.”
덕만은 신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신라에서 살아남겠다 선언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신라를 차지해 온 미실을 무너뜨린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천신황녀’가 되는 것을 시작으로 권력을 취해 온 미실에게서 이 신권을 빼앗고, 그리하여 미실을 쓰러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덕만은 여기서 한 술을 더 뜬다. 미실을 쓰러뜨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신라의 정상이라는 표식까지 갖겠다는 것이다. 태어난 그 자체로 죄가 되어 버려져야 했던 아이는 다시 돌아온 지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골’ 신분이 되어 있다. 골품의 나라 신라에서 미실이 결코 가질 수 없던 명분을 덕만은 이미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쥐지 못했음에도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미실이다. 그 자체로 시대가 된 사람에게 덕만은 기어코 맞서고자 한다. 그리고 미실에게는 없는 자신의 신분 혹은 명분을 이 싸움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네 궁극의 목표가 무어냐 묻는 유신에 덕만은 ‘왕’이라고 대답해 보이는 것이다. 미실은 한 번도 꿀 수 없었던 꿈.
덕만은 미실이 신라를 가진 방법 그대로 미실이 오랜 세월 독점해 온 신권을 빼앗으려 한다. 이는 자신을 복제한 방법으로 무너지게 될 미실의 입장에서 아주 건방진 술수이자 엄청난 모욕이 될 테지만, 그 자체가 덕만의 의도라고 볼 수는 없다. 덕만은 성골 신분을 갖고도 황실이 미실 다음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 힘에 대해 알고 있고, 신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우선 미실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덕만은 미실의 방법이라면 무조건 통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덕만이 미실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이다.
여기서 미실의 방법이라 함은 하늘을 계산하고 백성들을 속여 자신의 뜻을 곧 하늘의 뜻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다함의 매화’ 에피소드에서 그의 방법은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기묘한 상황들을 조작하고 연출해 백성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후 책력으로 계산한 월식까지 그의 힘으로 일어난 듯 보이게 해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것이다. 덕만은 똑같은 방법으로 공주로서의 ‘권위’를,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권력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실이 이미 스스로를 통해 증명했지 않은가.
덕만은 또 한 술을 더 떠서 ‘일식’을 이용하고자 한다. 달이 가려지는 월식보다 해가 가려지는 일식은 백성에게 더 큰 공포를, 그리하여 백성으로부터 더 큰 권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덕만은 미실이 장악한 신당에 잠입한다. 어떻게 하늘을 계산한 것인지를 파헤치기 위해, 적을 알기 위해 직접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긴장이 감도는 상황에서 덕만은, 천명을 죽게 해 쌍생을 덮게 만든 서리에게 미실이 독약을 건네 자결하라 강요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서리가 미실이 자신에게 오기 전 덕만을 병풍 뒤로 숨긴다. 하늘을 읽는 자답게, 덕만의 얼굴을 보고 그가 개양성의 주인의 운명을 타고난 자라는 것을 알아채버린 것이다.
서리는 덕만이 천의가 향하는 곳이라 확신하며 덕만에게 미실의 기반이자 강점 혹은 비밀이자 약점인 것을 알려주려 한다. 그는 독약을 마시며 미실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화덕사’와 ‘월천대사’를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화덕사에 있는 월천이 지금껏 미실의 책력을 계산하며 하늘을 주무르는 데 일조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병풍 뒤의 덕만에게 닿게끔 하려는 것이다. 피를 토하며 죽어 가는 서리를 보고도 미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천의가 미실을 떠날 것이라 저주하는 서리에게도 미실은 자신이 곧 하늘이라는 담담한 표정을 보이는 것이다. 덕만은 자신을 거스른다면 곧장 ‘필요 없는’ 자로 인식해 중요한 수족임에도 잘라버리는 미실의 모습을 보고 벌벌 떤다. 미실이 ‘그 정도로’ 강한 상대, 아니, 상대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을 걸고 미실을 넘어서기로 결심한 덕만에게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는 곧장 화덕사에 가 월천을 찾으려 하는데, 이미 월천을 노리는 이들은 많았다.
미실, 덕만, 그리고 ‘복야회’까지. 월천은 바로 복야회에게 이미 끌려간 채였다. 이를 바로 알아보고 미실과 덕만은 각각 복야회의 산채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화덕사에 월천은 없고 복야회의 표식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인데, 여기서 복야회는 가야의 복권을 위해 움직이는 비밀결사조직이다. 여섯 가야를 상징하는 육란을 등에 업은 거북이 모양이 이들의 표식이며, 복야회는 거북의 머리를 노래하며 왕을 얻은 나라의 부활을 위해, 신라가 죽인 그 나라의 부활을 위해 언젠가는 신라의 심장부를 제물로 갖다 바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복야회는 가야를 배신하고 신라에 협조한 이들의 목부터 거북의 먹이로 만들고자 한다. 월천 역시 가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미실을 돕는 자이기 때문에, 복야회는 가야의 죽음을 대신해 그에게 벌을 내리려 하는 것이다. 또, 어쩌면 월천을 통해 신라의 심장, 즉 미실에 대해 알아낼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알천은 천명의 죽음 앞에, 화랑으로서의 마지막 일을 하겠다 했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화랑이기에, 자결하려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낭장결의를 하고 천명의 죽음에 대해 소상히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평에 간한다. 그러나 배후를 밝히는 작업이 돌입될 경우, 사건 자체에 뛰어든 자들이 많기 때문에 쌍둥이의 한쪽을 죽이려 했던 을제와 김서현도 용의자로 거론될 수가 있다. 이는 황실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며, 특히 미실이 공주님을 승하케 한 자를 찾아내라면 찾아드릴 순 있으나 공주님을 그곳까지 가게 했던 쌍생의 문제도 다시 논의하겠다는 말을 해 보이기에, 진평은 천명의 죽음이 사고였다고 일단락해 버린다. 미실은 자신 역시 불리한 이 상황에 진평의 오래된 태만과 패배감이 일을 그르칠 것을 통찰하고 수를 던진다. 진평은 역시나 걸려들고, 습할 정도로 짙은 열등감은 또다시 누적되었다. 갓 태어난 덕만을 버리고, 천명의 죽음을 그냥 흘려보내며, 진평은 결국 그 누구도 지키지 않은 셈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천명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민심을 이용해 빨리 ‘춘추’를 후계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을제에게 봉고파직(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하고 관고를 봉함)과 삭탈관직(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명부에서 이름을 지움)을 명한다. 이제 을제를 보기가 힘들다며 그를 내쫓는 것이다. 자신에게 쌍생을 덮어야 한다고 끝없이 말하는 을제를 잘라내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쌍생을 덮기 위해 천명의 죽음까지 방관하는 꼴이다. 그러나 쌍생을 인정하는 것은 곧 황후의 폐위와 덕만의 추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궁으로 돌아와 공주가 되고 왕이 되고자 하는 덕만의 결심이 더 공허한 무언가일 수 있는 상황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덕만은 모두가 자신을 포기한 상황에 스스로 군주로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알천은 진평의 사고사 결론을 듣고 좌절하며, 궁 뒤편에서 천명에게 인사를 올린 뒤 자결하려 한다. 그런데 그의 앞에 덕만이 끼어든다. 다소 껄끄러운 이 상황에 알천은 낭도 덕만에게 말하듯 ‘비키거라’라고 말하는데, 덕만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례하다. 미실이 나를 인정치 않고, 내가 황실에서 버려졌다 하여, 너 또한 나를 인정치 않는 것이냐.”
알천은 당황하면서도, 화랑답게 곧장 예를 갖춘다.
“이리 서라벌에 계시면….”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신국을 걱정하는 것이냐. 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살 것이다. 살아서, 신국의 공주가 될 것이고, 공주가 되어 너희들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살아라.”
“하오나, 저는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죄인입니다. 천명 공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하였고,”
“견디거라. 나 또한 견디고 있느니라. 죽고자 한다면, 그 마음으로 살아라. 살아서, 네 오욕과 자괴감, 절망, 모두 견뎌라. 죽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버텨내거라. 화랑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덕만이 공주로서 내리는 첫 명령이 알천에게 내려지는 것이다. 그 언젠가 방법을 찾으라 직언한 덕만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듯하다. 우리가 죽지 않고 함께 살 방법을 찾으라던 간청은 이제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내라는 명령이 되었다. 서로 목숨을 한 번씩 빚진 사이인 아이, 질문을 틀어막는 신라에 태어난 용감한 아이, 그래서 자신을 바꾼 아이. 알천은 그런 덕만을 주군으로 받들며 무릎을 꿇어 보인다.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 화랑의 주인, 공주님을 뵈옵니다.”
이렇게 덕만은 알천을 자신의 ‘첫 신하’로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는 왜 덕만이 가장 가까운 사이에 있는 ‘유신’을 첫 신하로 삼지 않은 것인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꾸준히 다뤄왔듯, 덕만과 유신은 서로에게 ‘정인’이다. 덕만은 정인을 신하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죽는 길이든 사는 길이든 함께하겠다는 유신에게 덕만은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이 일에 끼워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갈팡질팡한다.
“유신랑과 함께하면, 유신랑은 다시는 제 머리를 쓰다듬을 수 없고,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를 수 없고, 다시는 제 몸에 손대지 못합니다.”
아주 잠깐 꿈꾸기도 했던 종류의 ‘함께’가 아닌 군신으로서의 ‘함께’는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가려는 길은 패도니까.”
“언니가 나에게 가라고 한 길. 사람의 길. 난 그 사람의 길과 반대길을 가려고 해요. 그 길을 유신랑과 가긴 싫어요.”
“유신랑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들, 그걸 못 견딜 것 같아. 함께 도망치려 했던 내 마음. 유신랑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이 생각나고, 계속 의지하고 싶어질 거고, 여자로, 사람으로 사는 걸 상상할 거야. 유신랑은 자꾸 사람의 마음이 생기게 하니까. 근데 패도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건, 죽는 거잖아. 그래서 싫어. 그 마음만 남겨두게 해 줘요. 사람으로서 가졌던 마지막 마음으로 유신랑을 남겨둘 수 있게 해 줘요. 함께하면 유신랑을 장기판의 말로 여겨야 해요. 그거, 나한테 너무 잔인하잖아.”
“허니 유신랑, 나, 버려요.”
덕만의 말대로, 덕만이 유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패도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그에게 유신과 함께 도망쳐 사람으로 살고자 한 마음, 유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곧 끝을 의미한다. 왕의 길을 선택한 덕만은 정인을 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이기에, 이 상황에서 유신이 덕만을 그대로 정인으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유신은 그 길로 덕만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유신이 덕만의 손을 놓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사람’ 일 수가 없는 덕만은 그를 한때의 사랑으로 남겨둘 수라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신은 다른 선택을 한다.
월천을 잡아간 복야회의 다음 표적은 김서현 가문이다. 이전의 전쟁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신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금관가야의 후손들에 대한 악의와 원망을 확인했으며, 따라서 김서현과 김유신이 복야회와 당연히 긴장 관계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 위기 상황을, 유신은 ‘모든 걸’ 걸고 뚫어내고자 한다.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가문은 최대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헌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복야회가 우리를 노린다는데, 그들을 다 쳐 없애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나면 쫓겨난 가야 유민이 우릴 노릴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세력의 필두이기에 폐하께서도 우릴 필요로 하는 것이고, 미실도 우리 가문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헌데 가야 기반을 잃는다면 우리 가문은 어차피 그날로 끝입니다.”
“모든 걸 걸어야 합니다. 우리 가문의 모든 걸 걸어야 하옵니다. 저에게 모든 걸 걸어주시옵소서.”
유신은 직접 복야회를 찾아가 자신의 가문의 땅문서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거래를 제안한다. 복야회의 수장인 ‘월야’,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의 아들에게, 가야 유민들이 먹고 살 땅을 줄 테니 너희의 충성을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섯 나라, 여섯 왕이 힘을 합치지 못한 가야, 나라가 망한 후에도 금관가야와 대가야 유민이 나누어 반복하는 이 오랜 굴레를 끊어내자는 말이다. 월광태자와 구해왕이 하지 못한 일을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자며 유신은 월야와 ‘동맹’을 맺게 된다. 이렇게 단합된 하나의 세력으로서 더 강력해진 가야계를, 유신은 덕만에게 바친다.
덕만은 자신이 첫 신하로 삼은 알천, 그리고 자신의 일을 돕고 싶다는 비담과 함께 복야회 산채를 찾아낸 상황이었다. 이내 포위당하는데, 월야와 협상을 끝내고 이를 발견한 유신이 이를 저지한다.
“당신이 내게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 답이다. 이 분이 내가 하려는 일의 전부이니라.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우리 동맹의 왕이시다. 예를 취하라.”
모두가 덕만에게 무릎을 꿇고 그렇게 덕만은 유신이 믿는 일, 걷는 길 그 자체가 된다.
정인으로 남을 수 있게 자신을 떠나라 말한 덕만에 대한 유신의 응답은 이런 것이다. 연모를 간직한 채로 신하가 되어 어떻게든 덕만의 곁에 남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었던 마지막 기억으로 유신을 남겨두고자 한 덕만에게 너무도 잔인한 대답이자, 미실마저 탐을 내는 가야계를 필요로 하게 될 왕에게는 너무도 기중한 대답인 것이다. 그리고 덕만은 유신의 이 결정으로 당장의 일에 필요한, 복야회가 데려간 월천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난 널 모실 수 있고 도울 수 있고 이끌 수 있으나 나는 너를 연모할 수 없다. 나는 너를 택했으나, 넌 왕을 택했기에, 나는 이제 너를 나의 왕으로 택한 것이다. 그거 이외에는 내가 너에게 마음을 줄 방법이 달리 없기에, 그거 이외에는 네가 내 마음을 받을 방법이 달리 없기에.”
“너는 나를 장기판의 말로 여길까 두렵다고 했으나, 내 고통보단 네 고통이 훨씬 클 게다. 신하인 내가 항상 무언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너한테 배웠거든. 지도자는 항상 따르는 사람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그러니 나도 그럴 것이다. 나도 너와 같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난 항상 요구할 거고 넌 어둠 속을 항상 혼자 걸어가면서 헤쳐가야 해. 그렇게 홀로 가는 네 뒤를 난 항상 따를 것이다. 이제 너를 구박할 수도 없고, 모래주머니를 채울 수도 없고 손을 잡아줄 수도 없는, 내가 택한 길이다.”
황후가 되고자 했던 미실에게 사다함은 죽음으로 자신의 연모를 완성했다. 황후라는 자리는 어쨌든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말이 되므로 사다함의 연모는 그가 남아있다면 정말로 갈 길이 없어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의 것도 되지 않고 스스로 제일 위에 오르겠다 선언한 덕만의 꿈은 유신이 그 길에 따름으로서 더 크게 품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얼마나 외로운 길이 될지 아직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로 두 사람은 군신이 되기를 선택했다. 덕만과 유신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품에 안아보며, 정인이었던 한 때를, 함께 도망치고자 했던 잠시를, 그렇게 놓친다.
이제 태양이 떠오를 차례다. 태어난 자체로 죄가 된 여자가 스스로 지존이 되기 위해 나설 참이다. <11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