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1편 : 27부, 28부
유신이 목숨을 걸어 자신에게 바친 가야계와 월천이다. 덕만은 곧장 일식을 이용해 천신황녀가 되고 공주로서의 기반을 만들기에 돌입한다. 일식 계산에는 미실이 갖고 있는 대명력보다도 정광력이 더 유리하다는 설정인데, 정광력은 덕만이 사막에서부터 가져온 달력이다. 모든 조건이 덕만에게 완벽한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 월천이 책력을 계산하는 데에 협조하지 않는 변수가 발생한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덕만은 당황하지 않고 그를 설득하고자 한다.
“대사께서 계산하신 월식으로 인해 가야의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죽었습니다. 가야 출신으로서, 격물사로서, 괴롭지 않으십니까.”
“대장장이는 칼을 만듭니다. 누구는 그 칼로 사람을 죽이고 누구는 음식을 만들고 누구는 환부를 도려냅니다. 그것을 대장장이가 책임져야 합니까.”
월천은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덕만은 월천이 미실에게 ‘이용당하며’ 괴로웠을 것이라는 전제를 깐 채로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이는 월천에게 통하지 않는다.
“허나 대장장이도 칼을 팔 사람은 고를 수는 있습니다. 격물을 사사로이 이용하여 동족을 죽이는 사람에게 팔아야 합니까.”
“당신은 다릅니까.”
“예.”
“당신도 미실 궁주를 꺾기 위해 일식 날짜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정치를 하는 자들은 다 똑같습니다. 격물을 하는 자들도 똑같지요. 항상 정치에 이용될 뿐입니다. 헌데 제가 왜 도와드려야 합니까.”
덕만은 미실을 악으로 상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상정해 월천을 ‘구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월천에게 미실과 덕만은 이익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전편에서 덕만이 권위를 만들기 위해 우선 미실을 닮아가기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미실과 같은 방법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실과는 다른 종류의 정치를 꿈꾼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저 월천에게 자신은 다르다는 결론 부분만 주입하려 들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앳된 얼굴의 주군으로서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당신은 무엇이 다르냐’는 월천의 한 마디에서, 덕만은 미실의 방법으로 권위를 만드는 와중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본질적 고민을 이어가야만 한다.
덕만은 신하로 마주하게 된 유신에게 월천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사실상 월천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이번 일의 전부인 셈인데, 바로 눈앞의 월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월천의 질문이 생각보다 중대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가린 듯했다. 월천의 질문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미실로부터 달라야 하는 지점을 생각해 두는 것은 앞으로의 통치 방향이라는 근원이 되는 대답을 만드는 작업이다. 자신의 시대는 이전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얼마나 새로울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것이므로, 당장의 초조함으로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유신이 이를 정확히 짚어준다.
“그 자가 원하는 것을 그 자에게서 들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 자가 말하지 않아도 무언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 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셔야 합니다. 앞으로도 백성들이 뭘 원하는지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백성을 상대로 협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읽어내는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그것이 앞으로 공주께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어야 하는 덕만의 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왕이 되어줄 것인지는 덕만이 직접 꿈꾸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덕만은 월천에게 대답을 주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밝혀질 내용이라 지금은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덕만은 자신이 어떤 시대를 준비할 것인지와 직결되는 사안을 월천에게 약속하고, 월천은 이에 덕만에게 협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월천이 계산에 성공하고, 덕만은 유신, 알천, 월야에게 일식이 있을 것이라 선언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일을 진행하는데, 이에 비담을 보낸다. 덕만은 비담의 얼굴에 흉터 분장을 직접 만들어주며, 기묘한 상황을 조작해 혹세무민의 죄로 끌려가 미실과 직접 대면할 중책을 맡긴다. 비담은 덕만의 계책대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알이 발견된 우물인 ‘나정’ 앞에서 제를 올리고 비석을 솟아오르게 하는 퍼포먼스를 보인다. 이 비석은 다름 아닌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적혀 있던 비석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다.
원래의 비석에는 ‘어출쌍생 성골남진’ 뒤에 문구가 더 적혀 있었으나 이것이 깨진 채로 발견된 바람에 나머지 반쪽의 비문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설정이라, 완전한 예언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른 채 그저 반쪽짜리 저주만 전해져내려 온 상황이었다. 뒤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출쌍생 성골남진’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시간이 20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진짜 비석은 어떻게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에 덕만은 뒤쪽의 글귀를 새로 만들어 퍼뜨리려고 한다. 운명을 스스로 적어나가고 있는 덕만에게는 너무나 간단한 일인 것이다. 천명이 자신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게 되고 마야에게 가 확인을 구했을 때, 마야는 모두 자신의 탓이오 죄라는 말을 반복했었다. 계시의 책임을 한 여자에게 씌우고 그의 평생을 목 조이게 만든 시대. 그러나 덕만은 이 저주를 자신이 설 기반이 되게끔 재해석해낸다. 그렇게 덕만이 새로 만든 예언은 어출쌍생 성골남진, 그리고 ‘개양귀천, 일유식지, 개양자립, 계림천명, 신천도래’이다.
개양자 하나가 하늘로 돌아가면 일식이 있으리라. 개양자가 서야 계림의 하늘은 다시 밝아지고 새로운 하늘이 도래하리라.
천명이 죽은 뒤 일식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개양자 즉 덕만이 세상에 나서는 순간 해를 가린 달이 다시 비껴나가 신라의 하늘이 밝아질 것이며, 덕만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비문대로라면 쌍생은 불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을 열기 위한 과정”이 된다. 자신이 버려지고 언니가 죽은 이유가 되고 만 저주를 덕만은 한 번에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비담이 궁으로 끌려 가 미실이 직접 심문하는 가운데 세워진다. 그리고는 아예 미실과 단둘이 대면하기에 이르는데, 비담이 미실과 진지왕 사이의 아들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똑같이 비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모자의 얼굴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그러나 이때 압권인 것은 덕만 그리고 그의 신하가 된 유신이 비담을 통해 미실에게 자신들이 도망치지 않았음을 알린다는 점이다. 비담이 미실에게 자신은 ‘하늘의 뜻을 이용하지 않고 다만 하늘을 경외할 뿐’이라 말하고 ‘또한 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지 않겠’냐고 이어가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전부 미실이 덕만과 유신을 겁박할 때 쓰던 말 혹은 그 말을 뒤집은 말이다. 미실은 비담 뒤에 덕만과 유신이 있음을, 그리고 이제 그 어린애들이 자신을 되려 겁박하고 있음을 곧바로 알아챈다. 덕만은 비담을 통해 미실에게 비문에 적힌 말, 일식이 과연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맞혀 보라는 조롱을 보내온 것이다. 비담이 나정에서 제를 올리고 비석을 땅에서 솟아오르게 만들 때부터 백성들은 ‘천신황녀이신 미실 새주께서 하늘을 달래고 계시를 받아주셔야 한다’고 엎드려 빌었다. 그리고 비담이, 아니 덕만이, 미실에게 쐐기를 박는다.
“답을 하셔야지요. 세상이 새주께 묻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모두 자신에게 묻도록, 세상의 모든 답을 자신이 결정하도록 만들어온 미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유로 두려움에 떨었지만 덕만은 그들을 제치고 미실이 손수 만들어놓은 복종 구조를 이용해 되려 미실을 목 조이고 있는 것이다. 일식이 정말로 일어날지 아닐지, 덕만이 정말로 월천을 데려가 일식 계산에 성공했는지 아닌지, 그 진실은 오직 덕만만이 쥐고 있는 패이며,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실은 ‘천신황녀’인 만큼 세상에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절벽 끝 상황에 처했다. 덕만이 미실을 그곳까지 몰고 간 것이다. 당돌하게도.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덕만이 비담에게만 따로 일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두었다는 점이다. 덕만은 미실이 서리까지 부재한 상황에 월천을 빼앗긴 악재가 겹친 상태이므로, 일식이 정말로 계산되었을 지에 대해 불안해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비담의 임무는 미실이 일식이 일어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즉, 일식은 없을 것이고 미실이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 공표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미실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작전이 덕만이 준비한 진패라는 것이다. 비담이 궁으로 잡혀가자마자 덕만은 유신과 알천에게도 사실 일식을 계산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미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밝힌다. 온갖 패를 미실 주위에 흩뜨려 놓아 미실의 생각을 여러 갈래로 나뉘게 만드는 게 작전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비담을 보낸 것 외에 또 하나의 방법으로, 덕만은 유신을 보내 미실에게 정광력에서 세차 산법을 베껴 적은 것을 전하라고 명한다. 그런데 출발 전 덕만이 유신에게 “천하의 미실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불안하고 무서운 게, 당연한 거겠죠.”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이 불안이 유신에게 그대로 옮겨 가, 미실이 그와 대면하는 자리에서 이를 정확히 꿰뚫어버리게 된다.
“유신랑. 실은 일식이 안 일어나는데 덕만 공주께서 일어난다며 유신랑을 속인 것은 아닐까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예. 좋은 대화였습니다. 물러가세요. 아, 참. 덕만공주께 전해드리세요. 일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술책은 실패했다. 아시겠습니까?”
설원이 평하길, “새주의 통찰력은 이제, 진흥대제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다. 아무도 미실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전 화에서 진평이 천명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묻어두는 대신 미실 쪽은 쌍생을 거론하지 않겠다는 거래를 했었다. 그런데 쌍생이 공론화된 후 공석이 될 왕좌에 앉게 될 가장 유력한 인물인 세종의 아들 하종이 이를 지켜볼 수 없어 뒤에서 일을 꾸민다. 밤사이 쌍생에 대한 벽보를 붙이게 해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게 만든 것이다. 이를 두고 누구의 짓일까 묻는 보종에게 설원은 하종이라고 확신한다. 보종이 당황하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하종의 짓을 빨리 어머니 미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설원은 “새주께선 이미 알고 계실 게다”라고 답한다. 의아한 눈빛이 된 보종이 그럼 어머니는 왜 알고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거냐고 묻는데, 설원이 이렇게 답한다.
“그다지 나쁜 수가 아니니까. 허나 새주께서 직접 입에 담기엔 너무 비열한 수이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없으신 것이다.”
이 모두를 통찰해 낸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대단하다고 말하는 보종에게 설원은, 자신은 단지 미실의 표정을 보고 대강의 파악을 했을 뿐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미실의 통찰력이 진흥의 것을 뛰어넘고 있다는 말을 남기는 것이다. 이 대사가 설원에게서 나온 그 자체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진흥이 설원을 끝까지 자신의 편이라 믿고 죽었기 때문이다. 설원이 이미 미실의 사람이 된 지 오래임을 끝내 통찰하지 못한 진흥을, 미실은 훌쩍 뛰어넘어 과연 당해낼 자가 없는 인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온 것이다.
그런 미실의 통찰력을 믿은 인물이 설원 외에 또 있었으니, 바로 덕만이었다.
덕만은 비담을 보내기 전 일식은 없을 것이며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실을 속여야 한다는 임무를 주었다. 그리고 옥사에 갇힌 비담은 옆에서 화랑들이 새주가 일식이 없을 것이라 공표했다고 말을 흘리자마자, 일이 잘못될 경우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덕만의 말을 기억하고 도망치려 한다. 이는 미실이 유신의 불안을 통찰한 후까지도 마지막 확인을 꼼꼼히 해두기 위해 세운 작전이었으며, 미실은 도망치려 한 비담을 보고 일식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일식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일식을 주장하는 비담, 그리고 그 뒤의 덕만이 도망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미실은 비담에게 화형이라는 처벌을 내리고, 마침내 천신황녀의 이름으로 일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표한다. 그렇다면 이대로 미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겠다는 덕만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일까?
덕만은 미실의 통찰력을 믿는다. 미실의 방법을 믿는다. 미실을 믿는다. 미실이 자신이 보낸 장기말들을 전부 꿰뚫어 볼 것을 믿는다. 그래서 덕만은 사실, 미실을 속이는 작전이 아니라 자신의 장기말들을 속이는 선택을 했다. 비담에게 도망치라는 선택지를 쥐어준 것도, 성정이 곧은 유신을 보내 미실에게 불안을 그대로 내비치게 한 것도, 그러니까 일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그로 인한 좌절까지도, 모두 ‘일부러’ 심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일식은 처음부터 일어날 예정이었다. 덕만이 홀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유신을 맞이하고 그를 꿰뚫어 본 후 미실은 덕만은 아직 멀었다며 용인술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덕만은 그 자체로의 용인술을 해 보인 것이다. 눈을 보고 그대로 읽어낼 미실을 알아서, 덕만은 유신에게 미실의 눈을 피하지 말라는 명까지 내렸다. 중책을 맡기며 비담을 믿었던 게 아니라 비담의 거짓을 반드시 통찰해 낼 미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덕만에게 미실은 무섭지만 파악이 되는 존재, 미실에게 덕만은 우습지만 파악이 되지 않는 존재다. 이 차이가 싸움의 승패를 갈리게 만든 셈이다. 그렇게 덕만은 하늘을 계산하고 백성들을 속여 권위를 만든 미실의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그것이 통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온 미실에게 치욕을 주게 될 그를 속이는 방법으로, 자신을 죽이려 든 신라에 승리한다.
일식이 일어날 것이라 천하를 속이고 백성들을 현혹한 죄인의 화형식이 시작된다. 그리고 불을 지피기 직전, 하늘이 답한다. 달이 낮에 뜨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전부 계획한 배포 큰 덕만을 떠올리며, 비담은 그가 자신까지 속였음을 깨닫고 짜릿해한다.
“어출쌍생하면 성골남진하고, 개양귀천하면 일유식지하리라.”
“개양자립! 계림천명!”
다시 밝아지는 하늘 아래, 덕만이 태양을 등에이고 나타난다.
돌아온 개양자와 숙적을 마주한 절대자. <1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