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5편 : 37부, 38부
자신에게 준다던 삼한지세의 주인을 유신으로 새로 정한 문노를, 비담이 가로막는다. 완성된 삼한지세를 들고 숲길을 걷던 문노에게서 책을 빼앗으려 들며 시비를 거는 것이다. 잠시 후 둘의 결투가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질긴 악연의 끝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비담이 죽음을 각오했건만, 칼이 한창 부딪히는 중에 문노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에 의해 독침을 맞게 된다. 비담은 인생의 유일한 존재로 자신의 전부였던 스승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볼 수가 없다. 그는 그대로 쓰러지는 문노를 업고 산길을 달려 내려간다. 삼한지세가 두 사람이 싸우던 현장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이내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간다.
비담이 애를 써 보지만 문노는 이미 목숨이 다했음을 직감한다. 삼한지세가 아닌 쓰러진 자신을 택한 비담의 마음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문노는 자신 인생의 가장 큰 실수인 아이의 품에서 영원한 잠에 든다. 서라벌에 돌아가 화랑이 되고, 유신을 따르고 덕만 공주를 도우라는 유언과 함께 품에 넣어둔 서찰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 그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비담은 스승의 죽음을 껴안고 엉엉 운다. 그의 모든 것이 내게도 있기를 바랐고, 그 무엇도 내주지 않아 미웠고 그래서 사랑했던 이. 인생의 전부를 이루었던 기억을 비담은 이제 묻어야 한다.
그는 스승의 유언대로 서라벌로 돌아간다. 문노가 독침으로 죽었다는 말은 부러 하지 않고 그 언젠가 신선이 되었다는 소문처럼 태백산으로 들어갔다고만 전한다. 그의 명예와 위신을 보존한 셈이다. 또한 문노가 죽기 직전 비담에게 건넨 서찰은 국선의 자격으로 비담을 화랑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체를 칠숙이 입증하여 비담은 화랑이 된다.
정식으로 문노의 후계가 된 비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문노를 죽이고 삼한지세를 가져간 이를 정확히 직감해 찾아간 것이다. 그의 정체는 ‘염종’이다. 이 이름은 비담의 생애 내내 엉키고 뒤섞여 그 파멸까지도 함께하게 될 것이다.
염종은 본디 신라의 큰 상단을 이끄는 자인 동시에 고구려와 백제 등에 첩자를 심어두어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첩보 조직의 수장인 자이다. 그리고 문노가 삼한지세를 만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작업에 함께하기로 선택한 자이기도 하다. 즉, 염종은 자신의 조직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문노에게 도움을 주며 그가 삼한지세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큰 공헌이 있는 자라는 것이다. 비담은 이를 알고 있었고, 그가 삼한지세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것을 탐내 문노를 죽였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곧바로 복수를 위해 그를 찾는다.
염종은 자신이 삼한지세를 가지기 위해 문노에게 독침을 쐈다 시인하면서도 비담에게 우리가 공범이지 않냐고 음흉하게 웃어보인다. 평소의 문노라면 독침을 피하지 못했을 리가 없고 비담과 결투 중이었기에 그 바람에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문노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 자신을 죽이고 스스로도 자결하지 않을 거라면 자신 역시 살리라고도 말한다. 또한 자신의 조직이 문노에게 정보와 자료는 물론 자금까지 갖다 바치고 있었는데 왜 삼한지세가 문노의 소유이기만 하냐는 물음을 던지더니, 그것을 갑자기 김유신에게 멋대로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비담을 자극하고, 그 조직을 이제는 비담에게 연결시켜줄 테니 이를 통해 왕을 만드는 일에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염종은 비담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와중에도 혀를 놀려 비담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비담은 그를 죽이지는 않고, 다만 눈 바로 아래를 칼로 베어버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상처가 쑤실 때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기억하고 다짐해라. 날 배신하면 죽는다. 도망쳐도 죽는다.”
비담은 자기 세력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사람을 가질 때의 순간이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란 것이 이렇게 서로의 상처를 빌미 삼아 맺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말이 파멸일 수밖에 없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첫 세력을, 비담은 자신의 주인에게 모조리 바칠 예정이다.
“또한 우리가 만들 다음 왕은 그 애가 아니야.”
염종이 원하는 차기 군주인 ‘그 애’가 아닌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 일에 염종의 조직을 이용하려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애’란 누구일까. 바로 천명의 아들인 ‘춘추’이다.
춘추는 이미 풍월주를 뽑는 비재 에피소드의 시작과 함께 극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실 측에서 보낸 대남보의 수행을 받아 수나라에서 귀국하였다. 천명이 죽은 뒤 후계가 되기에 가장 유력한 위치에 있는 춘추에게 황실도 미실도 모두가 의도를 갖고 접근할 것을 천명은 이미 예상했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서라벌에 다 와서, 대남보의 밀착 감시를 잠시 피해, 귀한 이는 비재를 구경하기 위해 홀로 걸음하셨다. 비담이 오직 덕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결승전을 승부조작으로 물들이고 있던 와중에, 또 이 때문에 덕만이 수세에 몰리게 될 지도 모르는 난장판 직전에, 태연히 관람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기억해야할 것이, 지금 춘추를 수행하고 있는 대남보가 바로 천명에게 독화살을 쏜 바로 그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대남보는 춘추를 모시러 수나라에 가자마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천명 공주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며 죽여 달라 빌었는데, 춘추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일단 알았다며 나를 서라벌까지 데리고 가라는 말만 하는 것이다. 대남보의 부친인 미생은 이를 전해 듣고 ‘그 정도로 반푼이란 말인가’라고 판단하며 씩 웃는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미실 쪽에서는 아예 설원의 손녀이자 보종의 딸인 보량과 춘추를 혼인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춘추는 미생과 보량과 나날이 어울리며 황실을 걱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춘추를 ‘반푼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제 막 정계에 뛰어든 덕만에게마저 그는 조카라는 이유로 춘추를 그저 어린 아이 정도로만 여기는 것 역시 오산이다. 언뜻 춘추는 천명을 죽인 대남보에게 별 악의도 없어보이고 미실 가(家)의 사위가 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어보이지만, 그는 앞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뒤에선 아득바득 이를 가는 세월을 살아온 자이다. 다시 말해 힘 없는 황손으로 태어난 그는 지금 힘을 가질 때까지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얘기다. 천명을 죽게 만든 미실은 물론 미실이 무서워 자기를 도망시켜놓고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힘 없는 황실까지도, 그는 용서할 수가 없다. 그의 계획은 미실에게도, 황실에게도 복수를 하는 것이다. 이 맨 얼굴을 춘추는 덕만에게는 이미 드러내보였다.
“지금,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후광을 업으려고 하지 마세요. 또, 어머니이신 천명 공주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덕만공주님이 아니라 오로지 저, 김춘추입니다. 또, 덕만 공주님께선 천명 공주의 그 어떤 것도 이어받지 못하실 겁니다. 덕만 공주님께서도 저처럼 멀리서 서라벌로 오셨다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또, 전 어떤 마음으로 서라벌에 왔을까요?”
미실에게 장악 당한 황실은 춘추를 뺏길까봐 아예 멀리 보내버려놓고도 천명을 죽음에 빼앗겼고, 심지어 그 미심쩍은 죽음을 덮었다. 따라서 황실은 춘추와 천명 모두를 모른 척 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래놓고 천명의 이름을 함부로 슬퍼하고 자신을 이 무능하고 낡은 세력을 이은 뉴페이스로 세울 게 뻔한 황실이, 춘추에게는 얼마나 뻔뻔스럽고 치가 떨리겠는가? 춘추에게 덕만은 황실과 다르지 않다. 춘추는 오로지 홀로 강한 이가 되어 자신들을 버린 황실이든 황실을 그렇게 만든 미실이든 자신의 발 아래 두어 오욕의 날들을 씻으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가시 돋힌 길을 걷는 춘추는 자신의 훈육 담당이 된 유신을 깔보기도 한다.
“우둔하고 미련한 놈이 머리를 너무 쓰는 듯 싶다. 비재에서 네 놈은 참으로 우둔해보이더구나. 아. 그 무식할 정도의 우직함이 네 놈의 무기인 것이냐? 그래. 그런 우직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꾀어낸 것이야. 그것이 서라벌에서 살아남기 위한 네 놈 나름의 술수로구나.”
그러나 우리는 춘추에게서 천명을 보게 된다. 다른 이들을 쉽게 적으로 돌리며 강한 척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어린 날의 천명이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유신에게 같은 말을 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에 유신이 웃음짓는다. 당황해 왜 웃느냐는 춘추의 물음에 유신이 이렇게 답한다.
“공과 똑같은 말을 하시던 분을 압니다.”
결국에 춘추는 천명이 덕만에게 남긴 선물이 될 것이다. 내내 서투르게 꼿꼿이 세우고 있던 고개를 숙이고 그가 덕만의 품에 안기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춘추가 펼치는 독립적인 무대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 그는 천명의 여의주를 품고 날아오르는 용이 되어, 새로운 형태로 ‘세 용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이는 다음 편에서 상세히 다룬다.
곡물가가 폭등하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갈등이 심해져 살인 사건까지 벌어지기에 이른다. 덕만은 곡물가 폭등의 실체를 알기 위해 직접 시장에 잠행한다. 그곳에서 덕만은 곡식이 뻔히 있는데도 이미 팔렸다며 금 세 냥을 줘도 팔지 않겠다는 상인들을 마주한다. 누가 사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침묵했는데, 뒤를 붙여 알아보니 곡물가 폭등의 원인은 귀족들의 매점매석이었다. 귀족들이 자신의 재물을 갖고 이윤을 보겠다는 것이니 다들 이를 어쩔 수 없다 쉬쉬하는 와중에, 덕만은 계속 의문을 가진다. 진평은 덕만에게 기근이 일어나면 미실이 늘 황실보다 더 많은 구휼미를 내놓았으니 백성들은 지금 잠시 힘들고 결국 미실에 의해 다시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덕만은 어차피 무상으로 내놓을 곡식을 너무 높은 가격으로 무모하게 사재기하고 있는 귀족들이 의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덕만은 다름 아닌 미실을 찾아간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적의 의도가 궁금해서 그것을 적에게 직접 물어보는 대담한 발상을 한 것이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예. 제가 생각해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찌 제게 그런 것을 물으실 생각이 드십니까. 하필 제게요.”
“뭐…. 저는 궁금하고, 서라벌에서 이런 답을 알려주실 분이 새주이실 것 같고. 뭐, 그래서요.”
이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전혀 긴장이 흐르지 않는다. 미실은 덕만을 신기해하면서 또 기특하게 쳐다보고, 덕만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진심으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애초에 덕만이 답을 구하기 위해 미실을 직접 찾은 발상을 한 자체가 그가 미실을 단순히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2편에서도 다루었듯 덕만은 그를 영웅전에서 튀어나온 대단한 어른, 그래서 부디 오래 살아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면 좋겠는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미실은 덕만을 어쩌면 내가 키웠을 수도 있는 아이, 적수인 동시에 제자인 아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묘한 관계성은 두 사람을 적수인 동시에 사제인 여성들로 만들고, 미디어에서 잘 재현되지 않는 독특한 울림이 그 주위에 형성된다.
미실은 덕만을 답으로 인도하는 질문들을 던져주고, 이 알쏭달쏭한 힌트들을 덕만이 제대로 알아 들어 답을 찾는다. 귀족들이 무모할 정도로 곡물을 사재기하고 가격을 폭등시킨 이유는 백성 중에서도 자영농을 몰락시켜 고리대를 얻기 위함이었다. 덕만의 신하들은 이를 막기 위한 율령이 없으니 원인을 알아도 해결할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덕만은 “장사에는 장사로 합니다”라며 자신 있게 웃어보인다.
그는 황실 창고를 열어 비축해둔 구휼미를 장터에 풀어버린다. 그리고 공급이 많아지니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손해를 막기 위해 귀족들은 다시 앞다투어 곡식을 내다팔 것이며 그것은 또 한번 가격을 내리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계산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결과가 이어진다. 미실은 비롯한 귀족들은 구휼미로 장사를 해 버리는 이 젊은 패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그를 찾아가 항의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덕만은 군량미까지 풀 것이라는 소문을 내어 상황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 공표해버린다. 미실은 귀족들이 단합하여 곡식을 내놓지 않고 버텨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물으며 그 기고만장한 계획에 훼방을 놓고자 하는데, 덕만이 가볍게 웃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리 될까요? 버티실 수 있을까요? 그러기엔 다들 너무 비싸게 사시지 않았습니까?”
기가 막힌 수로 자신의 수를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 너희들이 먼저 엿을 먹였으니 나도 너희들에게 엿을 먹이겠다고 답해보이는 이 당돌한 아이. 이 아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미실은 그런 표정으로 덕만을 바라본다. 버티는 것이 귀족 집단 전체에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귀족은 당연히 버티기를 택해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변수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귀족 개개인들은 불안하여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덕만은 통찰해낸 것이다. 군주는 사람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다. 덕만은 이 모든 것을 새주님이 알려주신 것이라 미실을 도발하기도 한다. 그는 미실에게 배운 것들로 자신만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다. 미실은 귀족과 등을 지고 어찌 헤쳐나가실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며 덕만의 기를 누르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애가 이미 다음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목도한 후 이제 마음을 다하여 싸울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과연 군주로 향하는 덕만의 길에 더이상 남은 굴곡은 없는 것인가? 미실은 덕만의 길에 어떠한 자국을 남길 것이며 그것은 어찌하여 결국 흔적으로만 끝나게 된단 말인가? 우리는 그 슬픈 답을 처음부터 쭉 알고 있기는 했다. 이제 미실의 질곡이 정말로 모습을 드러낼 차례다. <1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