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7편 : 41부, 42부
덕만이 여성임에도 부군으로 나서고 춘추가 진골임에도 부군으로 나서는 이틀 간을 목격하며, 미실은 멍하니 자신이 버텨온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춘추가 자신을 이용한 후 곧장 등을 지고 홀로 부군 경쟁에 나선 데에 대한 모욕은 이미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 세월이 허망해 가만히 앉아만 있다. 춘추와 덕만을 각각 떠올리며, 미실은 생각에 잠긴다. 한 번도 넘어서려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골품이라는 거대한 벽을 ‘그리 쉽게’ 넘는 춘추를, 여인이기에 한 번도 상상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왕으로의 길, 패업으로의 길을 꿈꾸는 덕만을, 그는 질투조차 하지 못한다.
‘한 시대가 가는 것인가. 덕만, 춘추…. 덕만…. 덕만.’
‘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그 오랜 세월… 뭘 한 걸까, 난.’
춘추나 덕만과는 달리 골품의 벽과 성별의 벽은 미실에게 동시에 주어진 것들이다. 결코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미실은 자신의 시대가 곧 저물게 될 것이라고 직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가 자신의 시대였던 것은 맞는 것인가? 이 시대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될 무언가가 정말 맞는 것인가? 진골 여자로 태어나, 결코 왕의 이름을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이 과연 시대의 주인이 맞는 것인가? 그 회의가 곧 그를 덮친다. 그는 이제 절벽 끝까지 고집을 부리게 될 테다.
한편 춘추가 골품제를 천한 제도라 비웃으며 부군이 되겠다 선언한 것을 두고 황실이 흔들린다. 자신에게는 조카가 되는 춘추를 두고, 용춘은 미실이 내세운 후보이긴 하나 부군으로 적합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를 옹호한다. 춘추를 통해 미실과 황실이 화해할 수도 있다며 궤변을 늘어놓고 “여인이 왕인 것보다는 춘추공이 더 이해하기 쉬운 대의가 아니옵니까”라며 덕만을 중심으로 뭉쳐야 하는 황실에 기어코 분열을 들여놓는다. 때문에 춘추의 부군 선언은 덕만의 편과 춘추의 편으로 황실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실의 수라고 읽히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미실의 세력도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미실이 화백회의에 춘추를 데려온 것이니, 적어도 이 사태가 덕만을 상대하기 위한 미실의 허패라고 짐작하거나 아예 춘추가 미실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춘추에게 미실이 ‘당했다’는 것이 이 사태의 실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어리석은 춘추가 미실에게 놀아나 황실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미실이 춘추의 계략과 본심을 뚫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신라 최고의 통찰력을 가진 미실이 왜 춘추를 통찰해내지 못했단 말인가? 답은 나와 있다. 미실이 춘추를 끌어들인 시점은 이미 덕만의 선언을 보며 그가 휘청거린 다음이다. 즉,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분히 가라앉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꿰뚫어 보던 미실은 그 잠시간 없었다. 자신이 꿀 수조차 없었던 꿈을 아이를 통해 알아버린 어른만이 있었을 뿐이다.
전편에서 춘추가 황실과 미실을 모두 적으로 돌리기 위한 싸움을 준비하며, 설원의 손녀이자 보종의 딸인 ‘보량’과의 혼인을 추진하는 미실의 움직임을 방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춘추는 화백회의 전날 미실을 직접 찾아오며 자신을 선택할 것을 유도했고, 이에 미실은 춘추가 아니었다면 상대등으로서 강력한 후보가 되었을 세종을 설득한 끝에 춘추를 내세운 것이었다. 세종은 이 선택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춘추와 보량의 혼인 계획을 무르고 자신의 가문과 춘추를 혼인시킬 것을 내걸었다. 그렇다면 춘추가 정식으로 부군 경쟁에 뛰어들 것을 선언한 이후에, 미실에게서는 당연히 다음 액션이 나와야 한다. 세종 가문에서 황후가 될 아이를 골라 춘추와 연결하거나 미실과 춘추의 결탁에 당황하고 있는 황실을 살피거나 최소한 덕만이 황실 내부의 분열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지를 알아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미실은 다음 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만 남긴 채 잠만 잔다. 명령을 내리지 않고 긴 잠에 빠진 군주의 속뜻을 알 길이 없는 세종과 설원은 춘추의 장인이 될 미래의 주인 자리를 두고 벌써부터 서로를 경계하기에 이른다. 특히 미실에게서 장인의 자리를 약속받은 세종이 보량의 조부인 설원을 누르려고 드는데, 이때 보량이 납치되는 일이 발생한다. 세종과 설원 간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은 상황에 일어난 일이기에 설원은 곧장 세종을 찾아가 보량을 내놓으라 화를 내지만 사실 이는 전부 춘추의 ‘이간계’였다. 보량까지 속여 납치극을 벌인 춘추는 범인들로부터 보량을 구한 백마 탄 왕자를 자처해 그의 마음을 얻고 함께 밤을 보내는 것까지 전부 계산하고 실행한다. 춘추는 이 수를 통해 용춘의 세력을 등에 업은 채로, 설원의 세력을 미실과 세종의 것으로부터 분리해 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자 한 것이다. 설원과 세종은, 춘추가 보량을 데리고 궁으로 와 혼인을 하였으니 전각을 마련해 달라고 진평에게 간한 시점에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이로써 덕만의 황실이 분열되고 미실의 세력까지도 분열된다. 설원과 용춘이 연결된 자신만의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춘추에게는 이제 정말로 홀로 부군이 되고 군주가 될 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춘추는 미실보다는 제가 오래 살 것이라며 천명이 지은 자신의 이름의 뜻을 직접 내뱉기도 한다. 그렇게 천명의 여의주를 품은 용이 날아오른다.
미실이 이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그저 잠만 자고 있다는 사실은 작중에서 내내 의아한 일로 다루어진다. 왕이 아닌 이름으로 감히 나라를 손에 쥐고 있던 아슬아슬한 세월을 버티느라 내내 곤두서있던 자신을 잠시 내려놓기라도 한 듯, 마치 미루던 잠을 몰아자는 사람처럼, 미실은 긴 잠에 빠져 있다. 이때 우리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도 ‘전운(戰雲)’을 만들어내는 미실의 존재감을 압도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특히 덕만은 이 이상한 고요함을 감지하는 맹수처럼 상황을 경계한다. 모든 경우를 가늠했다 자신하며 실패는 없을 것이라 장담하는 춘추에게 덕만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한다.
“아니. 그래도 실패한다면. 그때 내가 손을 내밀테니 그 손을 잡아다오. 약속하겠느냐.”
“예, 그러죠. 실패한다면요.”
미실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덕만은 그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덕만이 지금의 심상치 않은 전운을 감지하고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반면, 춘추는 아직 꺾이지 않은 자만의 오만으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덕만의 예감이 맞아떨어지고, 긴 잠을 자다가 궁 밖으로 청유를 떠나 한가함을 가장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미실을 찾아가 덕만이 대면하기에 이른다.
“새주.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예?”
“너무도 새주다운 수를 내놓으시고는 새주답지 않은 행동을 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얼마나 새주처럼 생각하고 새주처럼 행동하려 노력하는지 모르시겠습니까.”
“헌데요.”
“새주는 제게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적입니다. 헌데 왜 갑자기 파악이 안 되는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저처럼 생각하고, 저처럼 행동을 하신다….”
“예.”
“그럼 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도 아셨겠습니다.”
“그게 절 불안하게 합니다.”
두 사람은 직접 말로 구체화하지 않고서도 미실이 이미 결심을 했다는 것을, 그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싸움이자 슬픔이 될 것을 알아차린 상태다.
“스스로가 작아 보이십니까.”
“예.”
“그냥 참아 넘기실 수 없는 정도입니까.”
“예.”
“하여 결심이 서셨습니까.”
“예.”
덕만의 모든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한 톨의 망설임도, 부정도 없이 올곧게 답하는 미실. 그가 자신의 결심을 다른 누구도 아닌 덕만 앞에 최초로 선언한다.
“제가 지고, 공주가 이기실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냥 달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그건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이 천금의 재물이거나 천 명의 인재라면 그냥 드릴 수도 있겠죠. 허나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시대입니다. 시대의 이름을 갖는 일에 저를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덕만은 이 선언에 감화되는 동시에 닮고 싶은 스승이자 가장 피하고 싶은 적이었던 미실이 자신에게 직선으로 맞서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급한 마음에 그렇게는 막아질 리 없는 미실을 설득하려 하고, 이에 미실이 단호히 자신의 답을 이어간다.
“그동안 가지셨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원래 가진 것이 없었으나 새주께선 다르지 않습니까.”
“예. 그러니 예까지 청유를 왔지요. 초심. 초심이 필요해서요."
다음 시대를 위해 뛰어드는 아이를 굳이 막아선 어른이라는, 멋없고 초라한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가능성에도 미실의 결심은 굳다. 꿈꾸는 아이일 수 있었던 시절을 잃어버린, 그 기회를 신라라는 나라에 영영 뺏겨버린 미실은 온몸과 온 마음으로 뛰어들 작정이다.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부딪혀 상대하겠습니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요.”
당신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던 그 언젠가의 덕만의 말을 되돌려주며, 미실은 주인이 되기 위해 ‘진심’을 다할 것을 적에게 밝힌다. 특히 이 대사는 곱씹을수록 매력적인데, 이전 회차에 미실이 덕만을 진심으로 상대한 적은 없다는 것이 드러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덕만이 곡물 장사를 통해 귀족 세력을 누르는 것으로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은 에피소드 중, 미실이 황실 서고에 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때 책을 집어든 미실의 옆으로 덕만이 공부하다 밤을 새운 듯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 미실은 덕만에게 다가가 그가 보고 있던 책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다가 이내 손을 다시 집어넣고 그 옆에 앉아서 자신이 고른 책만 본다.
덕만을 몰래 시선을 파악하면서까지 추잡하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유 있는 오만과, 자칫 급해질 뻔한 마음을 다잡는 손까지도, 미실이 덕만의 당돌하고 똘똘한 수에 당황했을 뿐 그를 ‘진심’으로 상대해야 하는 적수로는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갖고 시대의 주인이 되는 싸움을 앞둔 미실은 덕만에게 온몸과 온 마음으로 부딪혀 상대하겠다고 직접 말한다. 진흥의 사람들을 훔치던 젊은 날 그때의 마음으로, 그 초심으로 미실은 이제 덕만을 진정 맞수로 인정한 것이다. 진흥 이후로 ‘제대로’ 대적해 본 이가 없는 절대자인 자신의 숙적으로, 그렇게 어쩌면 자신을 패배시킬 마지막 상대로 덕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실이 이제서야 ‘진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를 말해준다. 그가 각성하지 않고도 지금껏 덕만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었던 존재라는 사실이 첫 번째, 그렇다면 각성을 한 채의 그가 얼마만큼의 절망을 안겨줄지 예측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두 번째이다. 진심을 다할 것이라 결심한 미실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미실의 청유에는 비담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부터가 미실의 결심이라고 본다.
덕만의 부군 선언이 있기 전, 설원은 미실에게 부마 후보로 비담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간언했다. 비담과 덕만이 각별해 보이고, 진골인 비담이 곧 ‘새주의 아들’이기에 미실 세력의 뉴페이스, 왕이 되어 황실을 먹어치울 수도 있는 오랜 싸움의 새 주자로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을 어필한 것이다. 그러나 미실이 이를 단호히 쳐낸다.
“버린 자식입니다. 이제와… 않겠습니다.”
자신의 지난 결단을 번복하면서까지 지저분한 명분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담을 아들로 인정하고 부마로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지난 결심과 통찰을 실수였다 말하고 후회하는 것이 된다. 버린 자식을 대의에 이용하기까지 하며 지난 세월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건만, 이제 직접 대업의 주인이 된 미실은 가릴 것이 없다. 이미 지난 세월이 전부 부정된 마당에, 새로운 대의를 세우자마자 그는 가차 없이 잔인해진다. 이제야 찾은 꿈 앞에서 그는 그만큼 처절하고 간절하다. 잠만 자던 자신을 계속 기다리고 끝내 찾아온 아이에게 “나랑 어디 놀러 가지 않겠느냐?”라고 속삭이며, 그는 비담을 준비시키는 최초의 물밑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비담이 찾아온 시점에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 계획을 마친 미실은, 이 대업의 첫 주자로서 자신이 실패할 결말을 미리 염두에 두고 다음 세월을 준비하기 위해 비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산책 중에 미실은 비담의 팔에 기대고 손을 잡으며 모성을 흉내 낸다. 비담의 결핍이 무엇인지, 그것의 이유인 사람으로서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핍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면서 그 결핍을 있는 힘껏 이용하는 이 잔인한 행보는 비담에게 정확한 방식으로 맞아떨어진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비담은 미실이 지난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을 들으며 이에 감화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미실은 비담에게 문노와 설원, 그리고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 준다. 진흥이 특히 아낀 세 사람에게 각각 나라를 지킬 선인이라는 뜻의 ‘호국선’, 구름 위의 사람이라는 뜻의 ‘운상인’이라는 별칭을 선물했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비담이 새주의 것은 무엇이었느냐 묻는데, 미실은 답을 피한다. 그리고 비담이 되물을 때가 되어서야, ‘경국지색’이었다고 답한다.
“화랑들이 그 말을 쓸 때는 나의 색공이 언젠가 나라를 기울게 할 거라는 비아냥이었다. 폐하에 대한 경고였고.”
“싫으셨습니까.”
“싫었느냐…. 그때부터였던가. 황후…라는 초라한 꿈을 꾸게 된 게….”
천하를 통째로 삼킬 거라며 진흥이 예뻐했다는 그 셋 중, 자신에게는 왜 ‘경국지색’이라는 멸칭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인지, 그 셋 중 가장 큰 권력을 쥐고서도 왜 자신은 영영 ‘희대의 악녀’일 수밖에 없었는지, 미실은 그 답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황후가 뭐라고… 황후가 뭐라고. 한 남자의 정실, 그까짓 게 뭐라고.”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사실은 ‘경국지색’이나 ‘희대의 악녀’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가둬두는 꼴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시대를 거스르고 아들을 버리고…. 버렸다, 가차 없이. 황후가 되려고.”
아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을 가둬놓은 세월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그 마음을, 그 허망함을 지켜보는 비담. 그는 미실이 직접 ‘버린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멋있으십니다"라고 감상할 뿐이다. 초라한 꿈이든 원대한 꿈이든, 모든 것을 버리게 하는 꿈에 뛰어들었던 미실의 과거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이 푸른 마음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덕만을 위해 미실에게 포기를 종용하는 어린 투정에 대한 미실의 싫다는 답에도 웃음 짓게도 만든다. 포기가 아닌 다시 시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미실'이라고 일러주는 그 대답에, 비담은 아닌 척 갈무리하지만 분명 웃고 말았다.
미실은 덕만 앞에 부군 경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 뒤, 세종과 설원을 찾아간다. 세종과 설원은, 춘추가 세종이 아닌 설원을 장인으로 만들며 세력의 분열을 가져온 대로 갈등 상황 중이었는데, 이 갈등을 제대로 다스려줄 미실이 그저 청유를 간 탓에 싸움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미실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미실만의 세력. 절대자인 미실을 통해서만 단결될 수 있도록, 미실은 오래간 이들을 다스려왔다. 작품 초반에는 미실의 세력 안에서 자신들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싸우는 세종과 설원으로 인한 외로움이 다루어졌다면, 중반에 이르러서는 특히 설원이 신하로서 미실에게 모든 것을 바치며 무조건적으로 협력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미실의 길들임이 결국, 미실 안에서 자신의 편을 챙기려 드는 세종과 설원의 움직임을 멈추고 둘 모두 미실만의 편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실이 부재한 상황 속에 세종과 설원은 인질극까지 벌이며 극악의 상황에 치달을 정도로 미실이 없으면 안 되는 이들로 길들여지고, 반대로 미실을 통해서는 모든 것이 자리를 찾게 되는 절대적인 군림의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미실의 ‘남자’들이라는 것이 이 여자의 군왕으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던 조건에서, 이 여자가 군왕이 될 수 있게 무조건적으로 협력하는 조건이 되고 만다.
“예. 제가 직접, 나서보려 합니다.”
“진지제, 백정 왕자, 또다시 세종공. 혹은 춘추공…. 누군가를 내세우는 일을 안 하려 합니다. 내가 하겠어요.”
역사의 기록이란 명분에 따라 적히는 것이기에, 지금은 세상 모두가 신라의 주인이 미실이라 떠들어도 미실은 영원히 기억되는 이름일 수는 없다. 미실 자신에겐 ‘성골 남자’라는 명분이 없기에 자신이 내세운 사람이 시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던 셈인데, 이 시대는 내 이름 두 글자로 기억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또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꿈으로 미실은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다. “도와주십시오” 그 한 마디에 세종과 설원이 곧장 답을 내놓는다.
“새주의 꿈이 저희의 꿈입니다.”
미실이 길들인 대로다. 이로써 춘추의 이간계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자신이 용인 줄도 모르고 잠들어있던 용. 진짜 자신을 마주한 미실은 날개가 꺾일 것임을 알고도 뛰어들 결심을 마쳤다. 미실은 이제, 후회 없는 추락을 위한 비상을 준비한다. <18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