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처절한 복수

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8편 : 43부, 44부

by 구일삼

덕만과 춘추가 만든 붕괴에 무너져놓고, 미실은 쓰러진 포물선 그대로 일어난다. 스스로 왕을 선언한 미실에 세종과 설원은 복종을 맹세하고, 그들을 세치 혀로 분열시키고자 한 춘추의 수는 덧없게 된다. 설원, 세종, 미실 모두 자신의 이간계 이후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춘추는 조급해진 마음을 그대로 내비치며 미실을 찾는다. 그리고 미실은 기어코 어린애의 오만을, 아니, 마음을 부러뜨려 놓는다.

“생각해 보면 공과 저는 참으로 인연이 깊은 듯합니다. 공의 조부이신 폐주 진지제, 공의 부친이신 용수공, 공의 모친이신 천명 공주님… 제가 다 죽였습니다.”

“왜일까요. 황족이라는 어설픈 우월감으로 이 미실을 누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미실을 누르는 데 온몸과 온 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수 싸움의 실체입니다. 계략이 머리싸움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이 미실, 일생 동안 황후가 되기 위한 모략을 펼치며 온몸을, 온 가슴을, 온 목숨을 던져왔습니다. 그런 제가 무섭거든 매달리고, 복수를 해야겠거든 덕만 공주처럼 목숨을 거세요. 저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 두 가지입니다. 목숨 걸고 맞서거나 아니면, 그냥 죽거나.”

이전에도 미실이 '황족이라는 어설픈 우월감’을 얼마나 혐오하는지가 드러난 장면이 있다. 5편에서 김서현과 만명이 신분 복권을 확인받기 위해 새주 미실을 찾았을 때 만명은 미실이 자신에게 예의를 갖출 것을 바라며 그가 단지 “선대왕들의 인첩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짚었다. 이 말을 한 것 자체가 황실 혈통만이 미실에게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현실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미실은 픽 웃었지만, 이내 그 모욕을 삼키며 쓴 표정을 지었다. 12편에 미실이 성골, 황실 혈통, 적통이 아닌 데에 대한 콤플렉스를 설원 앞에 아예 직접 드러내는 장면이 있기도 했다. “왜 저는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라며 울음을 토한 것이 그것이다. 춘추는 이미 황실의 세력 반쪽을 등에 업은 채로도 미실에게서 감히 설원을 훔쳐가려 했다. 여기에는 분명 ‘어설픈 우월감’이 있었을 터. 미실은 이것을 철저히 짓밟고 어린애에게 모욕과 망신을 되돌려 준다.

이렇게 춘추는 그간 치열하게 계산해 쌓아 올린 것들을 한 순간에 잃는다. 그러나 춘추가 ‘버릇없게’만 보인다면 그를 다 읽지 못한 것이다. 미실에게서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어릴 적 수나라에 보내져 홀로 자란 춘추가 “어떤 마음으로” 서라벌에 왔는지를, 우리는 다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춘추가 본색을 드러내고 미생을 대면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어머니 천명공주께서 대남보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전 대남보를 살려두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허면 미생공은 저에게 어찌 보은을 하실 생각입니까.”

떠보듯 간질거리는 말투가 아니다. 분노에 차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미생은 그제서야 보량을 핑계로 미실 가(家)에 접근한 춘추의 의도가 처음부터 모두 계획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다. 그 멍한 얼굴에 눈 맞추지도 않는 춘추는 화가 나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 앞만 달리면 되는, 날아오르기만 하면 되는 시점을 먼저 겪었던 덕만이 ‘미실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며 설레했던 것을 기억하는지. 반면에 춘추의 시작점은 자꾸 슬플 수밖에 없다. 춘추가 대업을 이룬다면 그것은 천명의 죽음에 대한 복수, 어머니를 죽게 만든 미실과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 둔 황실에 대한 복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살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계속해서 화만 쌓이는 세월을 견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추는 앞으로 달려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미실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황폐한 마음이 된 춘추. 그를 덕만이 품에 안는다.

“나에게 서라벌에 어떤 마음으로 왔냐며, 너는 어떤 마음으로 왔을까, 물은 적 있지. 미실뿐만 아니라 폐하와 이 말도 안 되는 신라, 모조리 복수해 주마… 이제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폐하께도, 황후께도, 유신랑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었어. 오기와 독기로만 똘똘 뭉쳐서 복수할 사람들만 헤아려보고. 너도 그런 마음으로 왔지. 근데 춘추야. 안되더라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니까 그 어떤 것도 시작할 수가 없더라고. 같이 시작하자. 같이.”

춘추는 덕만의 품에서 다음 세월을 준비하기로 한다.

“미실… 이기실 수 있습니까.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제가 운 것만큼 공주님께서도 우셨습니까.”

이로써 황실 세력의 분열이 다시 봉합되고, 덕만은 뛰어난 지략을 가진 ‘춘추’라는 인재를 자신의 ‘사람’으로 얻게 된다.


덕만은 황좌를 두고 미실과 본격적으로 대결하기 위해, 미실 세력을 흩뜨려놓을 수를 준비한다. 미실이 춘추를 내세우며 황실의 분열을 가져왔던 것처럼 귀족 세력의 강력한 단합을 방해하고 미실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함이다.

덕만은 미실이 그동안 신국을 책임져왔다는 그 자체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가 왕이 되어 신국을 이끄는 것은 독이 될 것이라 정확히 판단한 상태다. 12편에서 다루었듯, 미실은 귀족 세력의 우두머리이기에 결코 백성을 땅으로 삼는 군주가 될 수는 없으므로, 덕만은 ‘삼한일통’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신라를 생각한다면 미실이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실이 귀족으로 세력 기반을 다졌기 때문에, 덕만이 황실의 주인으로서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 미실과 그 휘하의 귀족 세력을 악으로 상정하고 이를 압도하는 식의 보편적인 영웅 서사를 기본 골자로 가진다면, 미실은 왕이 된다고 해도 그 자리까지 자신이 업고 왔던 귀족들을 자신과 분리해 그 힘을 누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모순과 반발을 거쳐와야 했을 것이므로, 결코 순탄하고 간편할 수가 없는 서사를 가지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도 성골이 사라진 이후로 진골들끼리 왕좌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나라가 휘청거리게 되지 않는가. 이는 진흥이 자신이 없다면 미실은 신라에 ‘간악한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지점을 확실히 비껴나가면서도 슬픈 대답이 된다. 여성 정치가인 미실을 제대로 봐주는 덕만이라는 존재가 위안이 되는 동시에 둘을 가르는 차이가 여전히 미실을 ‘독’으로 정의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미실이 귀족이라는 자기 기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허나 난 왕이 되고나면 내 기반을 더 키울 거야. 백성이라는 기반 말이야. 비록 아직은 힘이 미약하고, 아직은 미실보다 뛰어나지 않지만 내가 왕이 되고 싶은 이유고. 너와 나… 황실 세력, 유신랑의 가야세력, 알천랑의 토호세력이 다 뭉쳐야 하는 이유야.”

미실이 귀족이라는 것은 끝까지 족쇄가 되고 만다. 황실 태생, 성골, 적통이 아니라는 덕만으로부터 갖는 미실의 차이가 그가 결코 넘지 못하는 벽이 된다.

그러나 덕만은 이것을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당연한 이유가 될 것이라 자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냉정하고 차분하게 현실을 보고, ‘삼한일통’을 위해 무엇이 득이고 독일 지를 가늠하고 판단하는 군주의 시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덕만은 미실의 약한 고리를 살피고 붕괴시키는 것으로 그와의 싸움에 ‘진심’으로 뛰어들고 있다. 귀족 세력을 분열시켜 그것이 미실의 ‘힘’의 원천이자 동시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라는 사실을 노출시키는 수는 이런 마음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덕만이 귀족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내놓은 수는 조세 계획으로 그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덕만은 “오천 속의 토지를 기준으로 그 이상의 영토를 소유한 자들에겐 중과세를 부여”하고 그 이하의 토지를 소유한다면 세를 낮춘다는 법안을 내놓는다. 미실과 같은 상위의 대귀족 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게 될 테지만 오천 속 이하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중소 귀족들은 법안 통과를 기원하며 덕만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화백회의를 장악하고 있는 대귀족들이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면 그것을 목격한 모든 중소 귀족들은 적극적으로 귀족 내부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고 더 나아가 아예 돌아서 덕만의 세력으로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도망칠 곳이 없어 보이는 덕만의 수. 미실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미실은 어쩔 줄 몰라하는 미생, 세종, 하종에게 모두 화백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지라 말하고 다른 대귀족 하나를 시켜 반대표를 던지라 단속하는 것으로 대처한다. 그 결과 다음날 공개 화백회의에서 조세 개혁안은 찬성 아홉, 반대 하나로 “신국의 전통인 만장일치제”에 따라 부결된다. 부결도 시키고 대귀족인 자신들을 향한 원성도 듣지 않는 또 하나의 기 막힌 수인 것이다. 어쩌면 미실이 덕만의 수를 막아낼 것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미실은 전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모자라 그 역사 자체가 된 자이기 때문이다. 덕만이 ‘오천 속’이라는 기준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날을 써 계산했다는 것을 한 순간에 작아 보이게 할 만큼의 시간이 미실이 위를 향해 걸어온 세월이다. 그 거대함 앞에 모두 무력하기만 할 때, 덕만은 바로 다음 화살로 역사를 뚫어내려 한다.

“다시 발의합니다.”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를 다수결로 바꿀 것을 발의합니다.”

그러나 다수결제에 대한 제안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장일치제 전통에 따라 찬성 둘, 반대 여덟로 부결된다. 전통과 신흥의 대결. 역사 그 자체가 된 미실이 또 한 번 덕만의 새 시대를 가로막았으니, 이는 신세대를 막아서는 구세대의 질척거리는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미실은 단순히 구세대라는 말로는 설명될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수족들 앞에서는 대업을 이룬다면 제일 먼저 없앨 것이 화백회의라고 밝힌다. 미실 역시 덕만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지부진한 시간을 붙잡는 것들은 없애야 한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화백회의의 지지부진한 본질을 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실이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무섭고 슬픈 일이 된다. 자신이 직접 나라의 주인이 될 마음을 먹자마자 곧바로 변혁을 꿈꾸는데도 그간의 시대가 미실을 보수적이고 더딘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미실은 새 시대가 움트는 것을 막으려 한다기 보다도, 새로운 시대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몫으로 움트려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덕만이 미실에 대적하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수들이 결국 진압되고 말았다. 이에 언뜻 덕만이 실패를 마주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만장일치 화백회의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중소 귀족들을 포함한 모두가 함께 목격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울림이 될 테니, 덕만이 완전히 졌다고는 할 수 없고 미실 역시 완전히 이기지 않은 셈이 된다. 마치 무사들이 서로의 칼을 한 번씩 주고받고 그 파열음을 음미하듯이, 두 숙적이 눈빛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새주께서 이긴 것 같습니까.’

‘주고받았습니다, 공주님.’

이렇게 나라의 주인, 시대의 주인 자리를 걸고 싸우는 여성 정치가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격돌로는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앞으로의 대결은 미실과 덕만, 두 사람의 싸움만이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덕만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실을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은 맞지만, 미실의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해 있다. 그는 신라를 갖기 위한 “더 비겁하고 더 비열하고 더 치사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천할수록, 비열할수록 좋습니다. 누구나 이걸 알게 되면 그 천박함에 치를 떨 수 있도록.”

미실의 ‘천박한 계획’이란 화백회의를 시작으로 한다. 그는 덕만이 화백회의의 만장일치 제도를 없애야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고, 제도나 율령은 적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벨 수 있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공주께서도 만장일치 제도의 덕을 보고 계신단 사실을 아십니까.”

“만약 귀족들이 단결하여 공주께서 조정의 정무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발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다수결제라면 현재의 화백회의 대등 열 명 중 여섯 명의 대등만 찬성하면 공주께서는 물러나셔야 할 것입니다. 허나 만장일치제이기에 서현공이든 용춘공이든 한 분만 반대를 하면 부결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해서 공주께서 그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덕만이 스승 격인 미실로부터 또 하나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해당 장면은 소강되는 듯했다. 그런데 미실이 한 수를 가르쳐주며 든 이 예시를 그대로 가져다 써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유신과 춘추가 각각 미실 가(家)의 사위가 되어 있기에, 김서현은 미실의 아들인 하종과 사돈 관계, 용춘은 미실의 첩인 설원과 사돈 관계가 되어 미실의 손아귀 내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종과 설원이 이들을 찾아가 ‘사돈’으로서 정을 나누자며 술을 마시는데, ‘비열하게도’ 술에 약을 타버린다. 이렇게 서현과 용춘 두 사람을 강제로 늦게까지 잠들게 해 놓고, 미실은 다음날 덕만의 정무 정지를 안건으로 긴급 화백회의를 열어버리는 것이다. 뒤늦게 깨어난 서현과 용춘이 화백회의장으로 가지만 무사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소식을 들은 유신과 알천은, 여덟의 대등만이 모인 상태이지만 이것이 ‘만장일치’로 해석되어 덕만이 일선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위부를 이끌고 화백회의 장을 향한다. 이에 서현과 용춘이 화백회의장으로 진입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유신과 알천이 감히 화백회의 장에 칼을 들고 들어온 죄를 지은 셈이 되고 말았다. 전부 우직한 두 사람이 화백회의장을 지키는 무사들을 부러 비무장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지 못하고 함정에 빠질 것을 미리 미실이 계산한 결과이다. 짜 맞춘 대로 설원이 곧장 대역죄인들을 포박하라며 병부령 병사들을 이끌고 등장하고,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세종이 칼을 맞고 쓰러진다. 이 또한 전날 화랑 ‘석품’을 시켜 정교한 계산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 세종의 목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이로써 ‘자신의 정무 정지를 안건으로 하는 화백회의를 막기 위해 덕만 공주가 상대등을 시해하고자 하며 정변을 일으켰다’는 명분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상주정 당주 ‘주진’의 대(大) 병력 또한 이 명분에 따라 ‘덕만 공주의 정변’을 진압하자며 미실을 돕기 위해 서라벌을 향한다. 한 스텝 한 스텝이 전부 함정인 동시에, 전부 만장일치 화백회의를 건드린 덕만을 욕보이는 것들이다. 특히 가르침을 주는 듯 예시로 들었던 덕만의 정무 정지 발의를 그대로 시행해 버린 ‘치가 떨릴’ 정도로 비열한 술수. 덕만의 정변을 가장한 '미실의 정변’이다.


미실은 성골만이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천박한 계획’을 자처하며 자신의 수를 관철하고 있다. 악을 자처하며 살아남은 여자는 이제 ‘감히 여의주를 탐하는 뱀’을 자처하는 용으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앞으로가 미실과 덕만의 격돌이 되지 않을 이유. 그것은 미실이 지금 전혀 다른 종류의 정면돌파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실이 정변을 일으켰다. 그는 덕만에 대적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부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실의 아우 미생은 지금까지 명분은 지키는 범위 내에서 권력을 취해온 미실이라는 이름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계획이라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는 미실에게 걱정을 전했는데, 미실의 답이 다음과 같았다.

“그때와 같은 마음입니다. 사다함을 연모하던 마음과 비슷한 마음입니다.”

“이 미실도 이(利)를 버리고 꿈을 좇는다… 부서지더라도, 옥이 깨지든 찬란히 부서질 것이다… 뭐 그런 거.”

당신과 함께 행복한 꿈에 살았다는 사다함의 마지막 말처럼, 미실은 부서지는 것이 결말이어도 신라를 향한 연모를 풀어내며 한바탕 꿈에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다름 아닌 추락을 위해 비상을 준비하는 마음. 어떤 수가 되었든 가진 것을 전부 쏟아부어 역사에 이름 한 자락을 남기겠다는 의지. 미생은 그 반짝반짝하고 슬픈 눈을 이제야 보고 입을 다문다.

춘추는 미실의 불안과 초조가 무리수를 쓰게 했다고 분석하고, 덕만은 미실이 ‘망가졌다’고 표현하지만 모두 답이 아니다. 미실이 지금까지 내놓은 수들은 단 하나도 미실의 ‘진짜’ 몫으로 돌아올 것들이 아니었다. 과거와는 달리 미실이 남이 아닌 자신을 전면에 세우는 싸움을 이미 시작한 후이므로, 지난날의 미실을 떠올리며 지금의 그녀를 판단하는 것은 실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것을 얻기 위해 달려드는 미실은 전과 아주 다르고 또 전보다 더 무섭다. 나라 전체를, 시대 전체를 가지고 싸움을 시작하는 미실. 이제 덕만은 정변을 진압하겠다는 거짓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키는, 미실이 키워놓은 말도 안 될 정도의 규모의 판에 적응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미실은 자신이 지금까지 공들여온 자신의 모습에는 이미 관심이 없다. 시대가 자신을 가둬왔음을 안 이상, 미실은 이 족쇄를 어떤 방법으로든 부수려 든다. 그것이 자신이 부서지는 길이라도 말이다. 그의 복수는 이토록 처절하다. <1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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