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댄스

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9편 : 45부, 46부

by 구일삼

정변을 일으킨 미실. 그는 성골만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영원히 명분을 쥐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비관하는 것만으로 삶을 끝낼 수가 없는 그는, 자신이 시대를 잘못 고른 불운한 용임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의주를 탐내는 뱀을 자처하는 것으로 최후를 준비한다. 성골이 아닌 자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는 분에 넘치는 시도를 오로지 천박한 것으로 기록할 이 나라에서, 미실은 천박할수록 좋다며 미소 짓는 것이다. 진평이 미실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물을 때, 미실은 “그 자리요”라고 단박에 말한다. 이에 진평이 미실을 덕만의 꿈을 뒤늦게 탐내는 욕심 가득한 늙은 뱀으로 보는 것을 숨기지 않는데도, 미실은 이렇게 말할 뿐이다.

“허나 어찌하겠습니까. 그 꿈이 가장 탐이 나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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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를 꿈꾸며 일생 동안 모략을 펼쳐온 미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노리는 것은 ‘옥새’다. 이 시점에서 옥새란, 황실을 집어삼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동시에, 정변을 일으킨 덕만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자신의 정변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그의 계획은 골품제에 반역하는 자신이 아닌, 신국에 남은 유일한 성골인 덕만을 감히 반역자로 몰아 죽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편에서 확인했듯, 미실은 덕만이 ‘덕만 공주의 정무 정지’를 안건으로 한 화백 회의를 막기 위해 서현, 용춘, 유신, 알천을 시켜 상대등을 시해하기를 시도하였음을 죄로 물을 것이다.

이들 모두를 추포하기 위해서는 옥새가 찍힌 추포장이 있어야 하고, 진평은 이것을 노리는 미실에게서 옥새를 숨기기 위해 소화에게 이를 맡긴다. 그리고 마치 그날처럼, 미실의 무사인 칠숙이 이를 쫓는다. 황실을 멸할 쌍생의 증거를 미실에게서 숨기기 위해 젊은 진평이 소화에게 덕만을 맡겨 보냈던 바로 그날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고된 날들을 지나며 소화를 사랑하게 된 칠숙의 마음이다. 칠숙은 소화가 옥새를 가진 줄도 모르고, 정변으로 혼란해진 궁이 무섭다는 말을 반복하는 소화를 다름 아닌 미실의 은신처로 숨겨주기까지 한다. 결국에는 소화가 옥새를 가지고 있음을 칠숙이 알아채고 빼앗지만, 그것은 미실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도, 미실이 옥새를 숨긴 소화를 죽이고 말 것이라는 예감에서 오는 공포였다. “내놓아야 산단 말이오!”라며 절박한 목소리를 하는 칠숙이 그 마음을 말해주고도 있다. 칠숙은 황실 창고에서 찾았다며 거짓말로 옥새를 갖다 바치고, 미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옥새를 찍은 추포장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덕만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유신과 알천을 필두로 그 수족들은 적극적으로 덕만을 보호하려 드는데, 이 와중에 비담이 보이지 않는다. 상기해야 하는 것이, 덕만이 춘추를 자신 다음에 올 황실의 후계로 세우고 있다면 미실은 자신의 후계로 비담을 아무도 몰래 지목했다는 것이다.

만약 미실의 정변이 성공한다면, 비담이 덕만에게 가 있는 지금, 후계가 반역자를 섬겼다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실은 현재 덕만을 군주로 삼고 있는 비담을 이 싸움에 오염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미실은 수족들에게는 문노의 제자로서 가히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있는 비담이 덕만을 해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므로 죽이겠다고 말한 상태다. 그러나 미실은 비담이 홀로 정한 후계이므로, 죽어서는 안 되고 단지 자신이 만들 혼란에서 잠시 벗어나있는 정도가 되어야 했다. 정변이 있기 전, 미실은 미생과도 친분이 있는 염종을 찾아가 내일모레 이틀간 비담을 데리고 서라벌 밖으로 청유를 떠나 있으라 직접 명한다. 그런데 염종은 궁 안에 벌어질 일과 비담이 상관없어야 한다는 미실의 의도대로 비담에게 약을 탄 술을 먹인 뒤 그를 밧줄로 묶어두고 꼼짝 못 하게 했지만, 장사꾼답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담을 아예 서라벌 밖으로 보내놓지는 않는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는 미실이 나타났다는 것에 두려움에 떨며 잔뜩 머리를 조아려놓고도 말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염종에게 비담은 미실이 덕만을 해칠 것을 알고 당장 밧줄을 풀라고 소리친다. 그는 처음부터 미실이 왕을 마음먹었다면 정변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실은 왜 다름 아닌 비담을 후계로 골랐을까? 지난 청유에서 비담은 덕만을 사랑하는 것을 미실에게 가감 없이 밝혔다. 지금도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덕만에게 달려가고자 하는 이 마음을, 앞으로도 쭉 덕만을 따르고 모실 것처럼 보이는 이 아이를 왜 자신의 후계로 삼았단 말인가? 보종과 하종 역시 자신의 자식들이니 둘 중 하나를 후계로 삼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 번째, 미실의 세 자식 중 비담의 근본은 미실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비담은 설원의 자식(보종)도, 세종의 자식(하종)도 아니다. 때문에 미실의 세력 내부의 분열을 절대 가져오지 않을 인물이다. 세종과 설원이 미실에게 복종하는 현재의 균형이 하종과 보종이 비담에게 충성하는 2대의 구도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담의 부계는 진지제이나 그는 폐위된 왕이므로, 이는 은폐되어야 하는 한쪽이 된다. 즉, 비담은 아버지인 진지제의 아들로서는 설명되지 못하기 때문에, 오로지 어머니인 미실의 후계가 되는 것이다. 비담이 다음 왕이 된다면 그것은 부계 상속이 아니라 오직 미실만의 후예로서 존재하는 비담이 즉위하는 일이 된다. 이는 성골 부계가 성골 아들에게 대를 넘겨주는 신국을 여러모로 부수는 움직임이 될 수 있다. 아버지를 왕위에서 갈아치운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가 직접 고른 후예가 왕좌에 앉는 결말까지, 미실은 신국의 새로운 역사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비담이 덕만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이유이다. 앞으로 보게 될 것이지만, 미실은 처음부터 자신이 정말로 왕위에 이름을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완전히 믿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사랑했던 신국에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 혹은 신국에 대한 사랑을 집착으로 이름한 세월을 부수려 드는 마음, 그 애증으로 미실은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실은 자신의 정변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두었다. 그는 비담의 미래를, 왕을 꿈꾸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순간을 지우고 꿈을 이룬 여인의 왕좌를 빼앗으려 드는 것으로 그려두었다. 자신이 사라진 시대에 왕이 될 덕만을 파괴하는 것으로, 심지어 그것을 비담이 다름 아닌 사랑의 이름으로 하게 만드는 것으로, 미실은 다음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우리는 미실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은 물론, 이후에도 그 순간이 덕만과 비담에 관계에 공명하게 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미실이 미래를 위해 세워둔 계획이 있었다. 자신의 정변이 실패한다면, 비담은 애초에 덕만의 사람이니 미실의 반역으로부터 튀는 불똥은 피하게 될 것이지만 그 세력 안에서 공을 세우고 힘을 키워 다음 왕이 될 준비를 하기에는 입지가 좁은 상황일 것이다. 때문에 미실은 비담이 사랑하는 덕만을 파괴하는 데까지 닿으려면 우선 비담이 큰 공을 세워 그 안에서 영향력을 키워두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반역자가 될 자신을 비담이 잡게 만드는 계획이다.

IMG_9069.PNG 진흥제 암살 시도 당시의 미실

이 작품의 시작점을 기억하는지. 족쇄를 모른 채 반짝일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날의 미실을 시작으로, 우리는 각자의 꿈이 뒤섞인 슬프고 거대한 모험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1화에서, 진흥이 미실을 간악한 독이라 칭하며 설원을 시켜 암살을 명한 날이 미실의 족쇄를 대놓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족쇄란 것은 여전히 미실을 움켜쥐고 있고, 진흥이 내린 유훈은 설원의 손에서 다시 미실에게 전해져 그가 직접 움켜쥐고 있는 것이 되었다.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세상으로부터 숨겨놓고는 그것을 아예 폐기하는 게 아닌, 언제든지 쓸 수 있게끔 손에 쥐고 있던 그 위태롭고 쓸쓸한 마음이 자못 아프다. 자신에게까지 이토록 잔인하고 가차 없이 계획을 세운 미실. 그는 정변을 준비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을 시 이 유훈을 비담의 손에 쥐어 보내 덕만에게 갖다 바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것은 덕만을 위해서도, 비담을 위해서도 아닌, 자신이 택한 후계가 왕좌에 앉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유훈이 소화에게로 간다. 상술했듯, 칠숙이 미실의 은신처에 소화를 숨겼는데, 옥새를 뺏긴 소화가 그 공간을 뒤지다 유훈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궁을 빠져나가며 소화는 이를 덕만에게 올곧이 전하려 한다. 이로써 소화는 쌍생도, 옥새도, 진흥의 유훈도 모두 손에 넣어 운명을 좌우하게 되나 그 어떤 이름도 될 수 없는 외로운 이가 되고 말았다. 소화는 또 어떤 계획을 망치고, 또 어떤 흐름을 새로이 만들게 될까. 정변이 실패하게 될 경우를 위해 미실이 세워둔 미래가, 살려둔 비담과 진흥의 유훈이 미실의 첫 번째 수를 어떻게 지배하게 될까. 혹은 미실은 이 모두를 계산에 넣고 있었을까?






비담은 결국 덕만을 살리기 위해 달려든다. 비담이 염종의 군사들을 전부 대동해 덕만과 춘추를 궁에서 빼내가고, 유신은 남은 병력을 상대하기 위해 궁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살아서 훗날 절 구하러 오십시오”라는 말만 남긴 채 문을 닫은 유신을 덕만이 자꾸만 뒤돌아본다. 그런 덕만을 끌어안고 말에 태워 달리는 비담의 마음은 전면에 내세워지지 않는다. 지금의 비담은 덕만을 살리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이렇게 덕만과 춘추, 미실이 어떻게든 잡아야 했던 핵심 인물들이 미실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손에 남은 서현, 용춘, 유신, 알천을 고문해 덕만이 상대등 시도의 배후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다. 마치 이것이 패도라는 듯, 미실은 가차 없이 행동에 이른다. 또한 “서라벌 전역에 폐하의 이름으로 덕만 공주에 대한 추포령을 내릴 것입니다. 허나 덕만은 추포 과정 중에 죽어야 합니다. 국법에 대항하여 추포에 저항하다 사살. 이것이 덕만의 마지막이어야 합니다.”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것은 덕만과 미실이 갖고 있는 전혀 다른 서사 때문에 발생하는 전개이다. 덕만은 적통이기 때문에, 미실의 추포에 쫓기는 와중이라도 세를 키우기 쉽다. 반면 미실의 입장에서는 덕만을 잡아 하루빨리 그 권력을 소멸시키지 못하면 신라에는 이중의 권력 구조가 생기는 셈이 된다.

“공주 하나 빠져나갔을 뿐입니다. 지금 궁 안에 있는 건 이 미실이고, 따라서 모든 권력은 내게 있습니다.”

미실이 수족들에게 이렇게 말해 보이는 반면, 덕만은 이렇게 선언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제가 폐하의 적자이고, 따라서 제게 정당성이 있습니다. 제가 가는 곳이 곧 권력이에요.”

미실은 성골의 무대를 빼앗는 것밖에는 할 수 없지만, 덕만은 걷는 길 자체가 무한히 무대일 수 있는 자이다. 골품이 결말을 정하고 있는 싸움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덕만은 이번 미실의 정변에 큰 몫의 병력으로 협조한 주진을 도망 중에도 직접 찾아가 경고할 수가 있고, 자신을 추포하라는 명이 옥새가 찍힌 명령장으로 온 나라에 퍼진 상황에서도 ‘역적 미실을 추포하라’는 통문을 귀족들에게 돌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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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을 찾아가 경고하는 덕만과 그를 곁에서 보필하는 비담


이것을 미실이 정녕 계산하지 못했을까? 진흥을 뛰어넘어 맞수가 없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미실이, 정말로 자신의 정변이 이런 흐름으로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갈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이 비담을 준비하고, 진흥의 유언을 그 손에 쥐어줄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미래를 대비한 것 자체가 스스로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정확히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나라에 패도를 휘두르는 지금의 미실과 그 대업은, 반드시 왕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라기보다도, 시대에 대한 한(恨)을 풀기 위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실은 진평을 대신해 정무를 보는 것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국왕 직속 기구로 화백회의보다 상위에 놓이는 ‘위국부’를 설치한다. 위국부령은 미실이고, 공주 덕만을 추포하는 것에 전력을 다할 것이 선포된다. 이때 어떤 대신 하나가 정말로 진평의 명이 맞냐는 확인을 했으면 한다고 토를 달자, 미실이 보종에게 눈짓을 보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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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로 왕좌에 앉는 미실을 보고 다들 놀라 혼비백산이 되는데, 이때 미실을 향하는 카메라의 앵글이 묘하게 삐뚤어진 것이 찰나에 울렁거린다.

“지금 제 감정이 조금 흥분된 관계로 잠시 예를 갖추지 않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네놈들은 무엇을 했느냐! 네 놈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이 미실은 진흥제, 진지제, 또 지금의 폐하를 보필하며 이 신국을 책임지고 있었느니라. 폐하의 유일한 혈손, 고귀한 성골? 그것이 신국을 지켜왔느냐? 아니! 이 미실이다! 이 미실이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해 신국을 지켜왔느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이 자리에 지금 말을 하라. 그렇지 않다면 오늘 이후로 혈통에 대해, 성골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새주 미실, 폐하를 대신하는 위국부령으로서 위국령을 선포한다. 지금부터 서라벌 성내에서 다섯 사람 이상 모일 수 없으며 병부 병사 외에 그 누구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 알겠느냐.”

'알겠느냐'라고 말하는 미실의 목소리는 그가 단지 황권에 도전하는 자가 아닌, 정말로 주인 그 자체의 것으로 들린다. 미실의 말마따나 정말로 신국을 책임져온 자가 보일 수 있는 위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도 시대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는 그의 기세을 읽어내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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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보는 미생의 표정이 미실이 마지막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아연하게 알아차린 듯하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미실의 마지막은 이 마음으로 춤추고 있었다. <2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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