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20편 : 47부~49부
옥새를 찬탈한 미실이 곧 국법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덕만은 추포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는 미실의 말이 그 휘하의 수족들에게 전해진다. 칠숙은 고문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 유신을 어떻게든 구하려는 덕만 측의 움직임을 역이용하려 든다. 월야 등이 유신을 옥사에서 탈출시켜 복야회의 산채에 주둔하고 있는 덕만의 진영으로 무사히 데려온 듯했으나, 이 시도 자체가 칠숙의 손 안에서 노는 꼴이었던 것이다. 유신을 산채로 데려가는 일이 산채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고, 칠숙은 병사들을 이끌고 가 기습을 실시한다.
그런데 난장판이 되고 만 현장에서, 칠숙이 다름 아닌 소화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발생한다. 호위를 받으며 산채를 빠져나가는 자를 덕만이라 생각해 칠숙이 쫓아 죽인 것이다. 그러나 쓰러진 자의 복면을 벗기니 그것은 산채에 남은 덕만을 빼돌리기 위한 교란 작전의 희생양이 된 소화였고, 칠숙은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이에 또다시 사막이 재현된다. 미실의 명으로 덕만을 잡으러 온 칠숙과 덕만의 목숨을 살리고 죽는 소화. 이 악질적인 운명은 그들이 서로를 마주 보게 된 마음을 품게 된 변화를 모른 척하고 두 사람을 동시에 구렁텅이에 처박는다.
소화는 칠숙의 품에 잠든다. 그는 이 악연이 시작되던 날의 칠숙을 기억하는 듯, 그를 ‘칠숙랑’이라 부른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화랑이 아닌 남자는 자신을 마지막 순간에도 화랑이라 부르는, 결코 연인일 수 없었던 정인의 마지막 숨을 품에 안을 뿐이다. 돌고 돌아 우린 제자리라는 소화의 말이 칠숙의 폐부에 닿는다. 그날들로부터 한 치도 자라지 못한 사람처럼, 칠숙은 이제 소화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만 고여있게 될 것이었다.
칠숙은 미실에게 덕만을 놓쳤다고 보고하며, 다른 고백도 전한다.
“매번 용케도 살아남았다 생각했는데… 실은 매번 죽을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미실이 열어준 삶을 소화로 인해 끝내고 싶어 하는 칠숙. 미실은 그를 다그치지 않는다.
인생에 딱 한 번 있는 연모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아는 사람이기에, 무려 공주를 놓쳤는데도 미실은 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칠숙은 울지도 않는다. 울지 못한다.
소화의 죽음으로 칠숙은 삶을 체념했지만, 덕만은 각성한다. “얼마나 더 날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합니까”라며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미실의 입장에서는 ‘하필 이럴 때’ 당나라가 건국 이래 첫 사신을 신라에 보내게 되었는데, 덕만은 사신단 행렬이 한창인 와중에 전단을 뿌리는 것으로 공세를 시작한다.
‘기개 있는 신국의 백성은 의로운 분노로 서라벌의 폐하를 구하라 -개양자(開陽者) 덕만, 개양자자(開陽者子) 춘추’
덕만과 춘추, 그리고 천명이 함께 하는 이 공격은 골품의 나라에서 명분을 쥐지도 못하고 감히 찬탈을 시도하는 미실에게로 향한다. 미실은 흔들릴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애의 증표로 황금 일천관을 달라는 당 사신에게 미실은 불가하다 답하고, 이에 당 사신이 오는 길에 보았다며 전단을 내놓고 미실을 협박하려 든다. 그러나 정국이 혼란하니 웬만하면 요구를 전부 들어주자는 미생의 말에도 미실은 답을 하지 않은 참이다. 그는 당 사신의 협박을 듣고는 부사와 통역을 빼고 단둘이 이야기했으면 한다고 자리를 물린다. 당 사신은 역적의 혐의를 갖고 있는 미실을 옥죄어 신라를 속국으로 확정 짓고 가능한 최대치를 빼앗으려 들 생각이다.
“여기 나와있는 대로 폐하를 연금하고 공주를 역적으로 몬 것이 사실이오?”
그러나 미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찬탈이 아닙니까?”
“허면 당의 황제께선 천하를 찬탈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무례하오! 찬탈이라니!”
“양 씨들이 보자면 귀국의 황제께서도 명백한 찬탈입니다.”
“해서요, 해서, 당이 천하를 찬탈했다는 것입니까?
“황제 폐하께서 국조가 되시는 일은 지금부터 대의를 어찌 펼쳐가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일이겠지요. 저 또한 아직은 모르지요. 아직은….”
미실은 개국을 통해서만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자이고, 사실상 모든 왕조의 시작이 그러하다. 때문에 미실은 지금은 반란으로만 읽히는 움직임이 이후에는 새 시대를 여는 ‘나르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감히 ‘계집년’이 이 대의를 움켜쥐는 주인이 되려는 것은 곧장 지탄의 대상이 된다.
“어찌 이런 변방의 오랑캐 계집년이 중화의 도와 천하의 대의를 입에 담는단 말인가. 주제에 천하를, 대의를 아는가?”
그리고 이것이 미실의 답이다.
“네 놈은 감히 나와 천하를, 대의를 논할 자격이 없어. 나와 그걸 논하고 싶거든 적어도 이세민을 직접 데려와라.”
당나라 태종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미실은 그와 자신을 천하를 훔친 자로서 대등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감히’ 자격을 논하는 눈앞의 사신의 말들은 미실 자신과 신국을 위협할 수 있는 독이 전혀 아니고, 의미와 쓸모가 없는 하찮은 것들일 뿐이다.
“감히, 감히…! 진정 당나라의 군대에 계림이 짓밟혀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정사께선 사신으로 오셔서 ‘계림이 짓밟힌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선전포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외교적 언사. 선전포고를 받은 나라가 그에 응하는 외교적 관례를 아시지요. 정사의 목을 베어 부사에게 귀국으로 들려 보내면 되겠습니까.”
‘계집년’ 따위의 말로밖에는 심기를 긁을 수를 생각지 못하는 한심한 농간 앞에, 미실은 꿈쩍도 하지 않고 현재 양국이 외교라는 중대한 상황 중에 있다는 논리로만 그를 대한다. 악독한 계집년이 평생에 따라붙은 꼬리표라서 마치 단련이 된 듯한 모습. 이번의 패업이 실패하면 그것이 역사에 남을 자신의 이름이 될 텐데도 미실은 물러서지 않고 눈을 똑바로 떠 보인다. 당 사신은 웃음으로 위기를 무마하고 미실에게 사과하며, 황금 일천관 이야기도 없던 일로 해 버린다. 이렇게 신국을 지켜낸 미실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그를 신국을 위기에 빠뜨린 자로 읽을 것이었다.
덕만과 춘추의 반격에 미실은 흔들리지 않지만, 화랑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간 새주를 따랐던 이유는 그가 옳았기 때문이라며, 대의에 어긋나는 이번 건은 석연치 않다며 동요한다. 이 와중에 덕만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궁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와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을 추포해도 좋으니 대신 ‘공개 추국’을 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대등과 화랑들이 이에 합세해 공개 추국을 통해 명명백백히 사안을 따져야 한다고 간언을 하고, 미실의 세는 절벽에 내몰린다. 미실의 수족들은 아무리 저들이 단합해 나서고 있다 하더라도 덕만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바로 죽이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미실은 그럴 수 없다고 잘라낸다. 덕만이 죽으면 춘추에게로 세가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명에게서 덕만으로 대의가 이동했던 것처럼, 황족의 죽음이 어떤 파장과 의미를 갖는지를 겪어본 미실이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덕만이 미실의 원래 계획대로 추포 중에 죽었다면, 그것은 덕만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황국의 공주인 덕만, 신국의 마지막 성골인 덕만의 생사가 미실의 손에 맡겨진 꼴이다. 이것은 미실에게 필시 부담이 되고 있고, 때문에 미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실은 둘로 나눌 수 없지만, 황실은 덕만과 춘추로 나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부군 경쟁 때는 황실의 약점으로 이용되었으나 이제는 미실에 대적할 이점이 되었다. 즉, 황실을 무너뜨릴 저주로 태어난 ‘쌍생’이 마침내 황실을 구하게 된 것이다. 성골, 공주, 적통… 이런 말들은 너무 세고, 그래서 미실은 최대한 빨리 이 말들을 살해했어야 하나 덕만과 그 세를 진압하지 못했다. 결국 미실은 공개 추국을 할 것이라 선언한다. 피를 보지 않고는 되지 않는 일이었나 보다, 읊조리더니 그날 자체를 피의 개국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문제는 가장 많은 병력을 가진 ‘주진’이 미실의 사람인 듯했으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춘추가 주진의 병력을 흡수하고 만다. 목숨을 걸어 직접 장기판의 말이 되어 역사에 뛰어들고 있는 덕만을 보고, 내내 수구적으로 굴었던 춘추가 각성한 것이다.
“지금부터 서라벌로 진군한다. 신국의 근간을 어지럽힌 반란의 무리를 제거하고 폐하를 구하라. 의로운 분노로 일어나 신국을 구하라. 신국의 영광이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다.”
또한 화랑들이 풍월주인 유신과, 국선 문노의 제자인 비담을 따르며 함께 나선다. 골품과 신국을 지키는 것이 곧 가슴 뜨거워지는 일이라 교육받은 자들답게, 모두 덕만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공개 추국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에 앉은 덕만이 미실을 향해 미소 지어 보인다. 그리고 미실의 앞으로 ‘폐하를 구했다’는 말들이 쏟아진다.
미실은 평생을 뿌려지는 말들을 받아내며 그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당 사신에게 들은 것과 비슷한 말들을 말이다. 악독한 계집, 여의주를 탐내는 뱀, 언젠가 나라를 망칠 ‘경국지색’, ‘간악한 독’…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구도. 미실은 분에 못 이겨 화살을 집어든다.
“쏴. 당신이 졌어, 미실.”
“그래, 덕만. 네가 이겼다.”
미실은 패배를 인정함과 동시에 정말로 덕만에게 화살을 쏜다. 모두가 경악하는데, 이때 덕만이 품고 있던 소엽도가 화살을 튕겨낸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미실과 덕만의 싸움을 그리는 거대한 은유 그 자체라고 본다. 평생의 콤플렉스를 깨뜨릴 방법이 이 시대엔 폭력의 얼굴로 자행될 수밖에 없어 지금까지의 자신을 지우면서까지 기어코 결단하는 미실. 그렇게 덕만, 아니, 골품의 죽음을 향해서 일격을 가했는데 이 화살이 소엽도에 튕겨 나오고 마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적통의 상징인 소엽도에 말이다. 미실이 끝까지 넘지 못하는 벽. 소엽도에 튕겨 나온 화살은 다시 미실을 향해 되돌아와 그를 목 조이게 된다.
이제 궁을 빠져나가 치욕스럽게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미실 쪽이 된다. 그런데 미실은 이 반란을 그런 식으로 기억되게 둘 수가 없다.
“궁의 정문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야겠습니다.”
쥐새끼 쫓기듯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름은 가질 수 없어도 나라의 주인으로 기능해 온 미실이 갖는 긍지에서 비롯된 결단이다. 설원이 그런 미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하고 ‘미실의 군대’를 독려한다.
“지금 퇴각하나, 나가기만 하면 수만 군사가 새주의 편이 된다. 허니 목숨을 걸고 새주를 지켜라. 너희들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새주를 위해 죽어간 모두를 기억할 것이다. 새주를 위해, 모두 죽어라.”
이들은 모두 미실이 대의와 함께하기에 따르는 게 아니라, 미실을 곧 대의로 선택해 따르는 사람들이다. 특히 화랑 ‘석품’은 신국이 아니라 새주가 미천한 자신을 중용한 것이라며 충성을 맹세하는데, 이에 이 반란이 반(反) 골품의 싸움이라는 것이 한층 명확해진다.
미실은 대야성을 근거지로 삼아 내전을 준비한다. 반대로 덕만은 황궁을 다시 장악하고 빠르게 미실이 일으킨 내전을 진압해야 하는데, 궁의 정문으로 반란군에게 길을 내준 것부터, 우위의 점령이 쉽지가 않다. 덕만에게는 미실이 40년 넘게 장악하던 궁 안에서 미실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고 축출하는 것부터가 과제로 주어지게 된다. 특히 정무 보고, 장궤, 파발 전체가 미실이 있는 대야성으로 향하는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온다. 처음에 덕만의 사람들은 미실이 이것을 ‘가로채고 있다’고 생각해 분노했으나,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알아서 미실에게 간 것이었다. 이는 전부 미실이 자신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라 자체를 자신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게끔 길들여놓았다는 의미가 된다. 미실이 있는 곳이 곧 서라벌이 되고 있는 현 상황. 덕만은 이제서야,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없게 문을 꽁꽁 잠가놓은 미실, 그가 악으로 버틴 세월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한다. 미실이 없는데도 미실과 싸워야 하는 수준을 넘어서, 미실이 없는 곳은 황궁으로의 구색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춘추에게 황족이라는 어설픈 우월감으로만 자신을 상대할 생각 말라고 소리치던 미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 속, 덕만은 초강수를 두지 않고는 승리할 수가 없다. 소엽도에 맞아 되돌아오는 화살은 미실에게 분명 상처였지만, 미실은 그 화살을 피해 숨지 않는다. ‘부서지더라도, 옥이 깨지든 찬란히 부서질 것’이라는 처음의 다짐처럼, 미실은 찬란히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의 최후는 더없이 반짝일 것이었다. <21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