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항상 딸과 함께 하는 무언가를 대답했던 우리 엄마.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는데, 대학생 때까지 나는 공부하기 바쁘고 엄마는 일하기 바빠 함께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항상 나중으로 미뤘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딸과 함께 운동하기, 딸과 함께 등산 가기, 딸과 함께 벚꽃 보러 가기, 딸과 함께 단풍 보러 가기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여유가 생길 무렵, 안타깝게도 내가 취업을 해버렸다. 우리는 각자 따로 운동을 시작했다. 딸과 함께 운동하려면 엄마가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이제 막 자유를 찾은 퇴사자에게 새벽 6시 기상이 웬말인가? 벚꽃 놀이는 꿈도 못 꿨다. 대학교 다닐 때는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 했는데, 취업하니 벚꽃의 꽃말이 새벽 택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새벽 2시에 퇴근 택시 안에서 보는 여의도 벚꽃길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벚꽃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해결하고 엄마가 이미 잠든 새벽쯤에 집에 들어가니 평일에 함께 식사하는 건 당연히 사치였다. 주말에는 평일 동안의 피로를 풀어야 하니 오전에는 푹 자야했고,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면 오후에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어쩌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남자친구를 만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친구와 약속 잡듯이 엄마와 약속을 잡았다. 적어도 매주 한 번은 같이 먹어야 그래도 같이 사는 것 같지.
나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을 항상 미안해했지만, 엄마는 서운해 하기보다 나를 안쓰러워했다.
“엄마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우리 딸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엄마에게 그런 거 아니라고, 정말 이 일이 좋은 거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늘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딸을 걱정했으니.
남자친구와 만난지 3년쯤 되었을 때 내가 먼저 취업을 했는데, 취업 직후 1년간 정말 많이도 싸웠다. 그때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탓에, 내가 일어나면 자기 직전인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내가 자기 직전 이제 막 일어난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 우리만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컨설턴트가 된 내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 없었다. 새벽 2시쯤 퇴근하면 오후 12시를 살고 있는 남자친구는 한창 수업을 듣고 있었고, 자고 일어나 출근할 즈음인 아침 8시에 남자친구는 오후 6시를 살고 있어서 여전히 학교였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아니, 내 근무시간이 잘못해도 한참을 잘못한 것 같긴 하다.
내가 직장인일 때 대학생이었던 남자친구는 나를, 그리고 내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일이 많아?”
“도대체 왜 그 때까지 일을 하는 거야?”
“내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며칠씩 통화를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그런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나 사이에는 다툼이 이어졌다.
남자친구가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올 때는 더 심했다. 그가 방학 동안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달 뿐이었다. 여자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기 위해 지방에 있는 본가를 마다하고 서울에 머물렀는데, 정작 여자친구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 전부였다. 그러니 남자친구의 서운함은 쌓여만 가고, 그렇게 쌓인 서운함은 또 다툼으로 이어졌다.
다행히도 이 다툼은 내가 2년 차 컨설턴트가 되었을 때 남자친구도 나 못지않게 워라밸이 붕괴된 광고 업계에 취업하며 해소되었다. 아무래도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친구들과 모임 날짜를 잡을 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금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 저녁엔 야근으로 불가, 토요일 저녁은 쉬어야 하므로 불가, 일요일은 또다시 출근해야 하므로 당연히 불가.
우리나라 컨설팅 업계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주말에 출근을 하더라도, 금요일만큼은 정시 퇴근’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덕분에 그나마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 것이라 해도, 친구들에게는 하나 ‘뿐’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이 금요일 저녁뿐이었기에, 다가올 몇 주간의 금요일이 항상 꽉 차 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약속 잡기의 난이도가 최상급이었다.
“우리 오랜만에 모이려고 하는데 다음주 수요일은 돼?”
“미안한데 나 평일은 거의 항상 야근이라… 안 될 것 같은데… 금요일에 보면 안돼?”
“아 그래? 그럼 다음 주 금요일?”
“아 미안, 내가 다음 주 금요일에는 약속이 있고, 다다음주…도 있고… 다음 달 둘째 주 금요일은?"
몇 번 그러고 나니 모임에 나를 부르는 친구들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나는 약속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파워 외향형 인간인데, 나 없이 모인 친구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볼 때마다 속상해 하기에는 어차피 못 갔을 것이 뻔했다. 일해야 하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들은 나를 부르고 싶어도 항상 거절하며 너무 미안해 하니,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해서 평일에 만나는 날은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나의 최우선순위는 일이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일보다 위에 존재할 수는 없었다. ‘20대는 원래 일이 제일 중요한 거야, 공부에 때가 있는 것처럼 일에도 때가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을 안고 살았었다.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에 때가 있는 것처럼, 관계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시간은 유한하고 그들이 언제까지나 내 곁을 지키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나의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수학 정답처럼 정확하게 5:5로 떨어지지 않지만, 어느 시기엔 3:7이 되었다가, 어느 시기엔 7:3이 되기도 하는 순간들에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대체로 5:5면 되었다 생각하려 한다. 삶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일 만큼이나 관계도 중요하다고 되새기며.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단비
hidamb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