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 맞는 브랜드 마케터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이 내 구독 피드까지 퍼져왔다. 크리에이터를 믿고 구매하는 시청자가 많은 만큼 노양심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는 차고 넘친다.
그로 인해 파는 사람인 나도 덩달아 지켜야 할 것들이 늘었지만 못된 광고는 좀 줄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어딜 가든 시끌시끌한 피드를 보다 보니 몇 개월 전 광고를 제안했다 깔끔하게 거절당한 것이 떠올랐다. 거절 당한 주제에 민망하지만 두고두고 펼쳐 보고 싶은 순간이라 글을 써본다.
기획자들의 업무 스위치는 24/7 켜져 있다니 사실이었다. OFF 버튼이 없다. 아 있었는데? 아니 없어요 그냥.. 그날은 주말답게 유튜브의 무한 순환고리에 갇힌 채 우연히 발견한 살림 브이로그가 시작이었다.
콘텐츠는 애정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단정한 살림. 구독자는 그런 살림을 동경하는 주부들. 딱 우리가 추구하는 이미지의 인플루언서였다. 마침 영상 광고 매체를 찾고 있던 터라, 맘카페와 각종 커뮤니티를 뒤적거려 미니멀하고 정갈한 살림 유튜버들을 리스트업 했다. 그리고 두 채널에 위생과 편의 면에서 반응이 좋은 제품의 광고 제안 메일을 보냈다.
그중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따뜻한 영상을 만드는 한 유튜버에게서 회신이 왔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의 채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사의 제품은 위생적이고 훌륭한 제품으로 보입니다.
다만, 제가 불편해도 일회용 제품을 지양하다 보니
귀사의 제품 노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괜히 군더더기 없는 글자들에 딸깍 딸깍 드래그를 반복했다. 민망해서 그랬다. 나 역시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똑같은 소비자인데도 그저 팔고 싶은 마케터로서 영상에 우리 제품이 얹히면 그림이 어떨지, 효율이 얼마나 나올지, 효율을 어떻게 측정할지만 생각했다.
만약, 지키고 싶은 가치와 반대되는 솔깃한 기회가 온다면? 가치관과 다른 방향의 광고를 제안하는 담당자에게 고민 없이 답할 수 있는 확신이 만들어진 상태인지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편의와 양심 사이에서 조금씩 천천히 타협 중이고, 남의 백 마디 말보다 혼자 한 번 생각해야 움직이는 나에게 오랫동안 생각할 주제를 준 메일이었다.
되도록 안 사는 소비자이자, 많이 팔고 싶고 많이 알리고 싶은 마케터인 지킬 앤 하이드로서 풀어야 할 숙제도 주고 갔다. 극과 극이라 친해지긴 힘들어 보이는 둘 사이를 좁힐 수 있을까? 일단은 '걍' 해보자. 과정 속에서 조금씩 떼다 붙이다 보면 그게 나의 답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