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녹슨 우편함의 혓바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입구 바깥으로 삐져나온 광고지며 종이 쪼가리들. 그것은 마치 모란시장 개고기 가판대 위에 놓인 개 머리를 떠올리게 했다. 머리만 남은 죽은 개들. 시커멓게 그을린 개 주둥이에서 힘없이 바닥으로 늘어진 긴 혓바닥. 중기는 우편함 입구에 너덜너덜 걸쳐진 광고지와 고지서를 보는 순간 그 혓바닥이 문득 떠올랐다. 보신탕 골목은 우연이라도 지나치고 싶지 않은 곳이다. 마찬가지 빼내고 싶지 않지만, 중기는 집 우편함에 꽂힌 종이와 봉투를 빼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들여다보지만 죄다 반길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온통 지정된 날짜에 돈을 달라는 글자 투성이. 버는 돈은 쥐뿔도 없으면서 내야 할 돈은 이렇게 꼬박꼬박 우편함 속으로 들어온다.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우편함은 고민, 근심, 걱정 따위를 떨어내는 장치다.
그곳에 떨어진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장을 읽으며 사람들은 위로와 위안을 선물 받는다면, 중기는 그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데 써재낀 돈의 통지표를 열어보며 근심과 걱정이 쌓인다. 뜯어보고 싶지 않은 여러 봉투 중에서도 제일 싫은 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모든 종이 쪼가리가 돈을 내놓으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중 으뜸은 신용카드 고지서다. 플라스틱에 의지해 한 달을 살았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독촉장. 이제는 소설처럼 기대하는 마음으로 손을 넣을 수 없는 우편함이 되었다.
중기 집은 그가 첫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했다. 1997년이 그에게는 사회인으로서 첫출발이기도 하며 집안에 신용카드가 처음 생긴 해이기도 하다. 그의 신분, 아니 중기 가족의 신분을 나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라스틱 쪼가리 한 장으로 중기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용카드가 집에 도착했을 때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이 사회에서 성공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서 이상한 울컥거림이 역류하는 듯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신분 세탁을 이뤄낸 밀입국자의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신용카드 한 장으로 많은 부분이 바뀌어 나갔다.
중기는 현금을 내야 할 장소에서 일부러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는 일이 잦아졌다. 카드를 내밀면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착각과 카드를 쓰는 인간이야말로 바로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이 자리 잡았다. 재벌이라도 된 마냥 어딜 가나 신용카드를 꺼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아무리 꺼내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너무도 쉽게 그의 지갑에서 카드는 뽑혀 나왔다. 나중 일은 생각지 않은 채.
또한, 돈을 빌리는 주체가 바뀌었다. 카드가 없었던 시절 생활비가 떨어지면 중기의 엄마는 주변 지인에게 돈을 빌려 생활을 꾸려나갔다. 돈을 빌려주는 주체는 주로 한동네에 같이 사는 그녀의 동네 친구들. 아무리 친해도 타인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에서 신용카드 한 장은 하찮은 자존심이 뭉개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돈을 빌리기 위해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됐으므로. 채권자가 이웃사촌에서 카드사로 넘어간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빚이 쌓인다는 점에 대해선 가정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하였다. 간편하게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 오히려 빚의 증가에 가속도를 붙이는 꼴이 됐다. 카드빚은 내리막길처럼 쉽게 불어났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구 아빠의 신용카드 한 장.
부러움이 빚이 되어 돌아올 줄은 누가 알았을까. 대단해 보였던 플라스틱이 결국엔 빚의 근원지라는 것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카드가 없었던 시절보다 더 많은 빚이 늘어났다. 그게 오로지 카드 탓으로 돌릴 수는 없어도 적어도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던 인생에 변화가 일었다. 카드 하나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개념이 너무도 쉽게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중기에게는 1997년이 한국에서 정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지만 빚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모든 빚이 부모 명의로 되어 있었다. 중기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정식으로 그의 이름 밑으로 ‘채무’라는 단어가 달라붙었다.
부모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건 아마도 빚도 함께 가져간다는 뜻이 아닐는지. 어느샌가 허리춤에 나날이 불어나는 비곗살처럼 갚아야 할 채무도 곡간에 쌀가마니를 쌓듯 차곡차곡 쌓여갔다. 법이 정한 채무자의 빨간딱지 표가 드디어 중기 인생에도 들러붙기 시작했다. 빼도 빼도 빠지지 않는 허리둘레 살처럼 자신의 몸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빚. 그의 이름으로 관리해야 할 빚. 어쩌면 그의 인생길에 반갑지 않은 동반자로서 끝까지 같이 가야 할지도 모른다. 종아리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처럼.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빚의 무게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돈의 무서움과 자꾸만 쌓이는 빚의 공포심은 점점 더 커진다. 이 나라 평균치 50%도 안 되는 월급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인의 출발점. 그곳은 깊은 안개가 낀 산에서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길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쌍라이트를 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내리막길.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자칫해서 실수라도 하는 날엔 그 즉시 낭떠러지 행이다. 경직된 두 다리는 이내 저리기 시작한다. 덜덜덜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발.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샌가 안개는 줄어들고 산 아래까지 무사히 도착해 그제야 멈추었던 호흡이 안도의 긴 한숨으로 바뀐다. 남보다 느리게 가더라도 천천히 천천히 충실히 살아간다면 빚도 줄어가겠지. 소설 속 우편함처럼 희망과 기쁨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