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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Apr 19. 2018

문제가 있습니다 [사노 요코]

그냥 살아온 인생. 그냥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


책을 읽는 동기는 참 다양하다.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얼마 전 시작한 tvN의 [숲속의 작은 집]에서 교묘하게 책 두 권을 소개했다. 하나는 박신혜가 들고 있던 기욤 뮈소의 '파리의 아파트'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집 회장(아내)이 좋아하는 '소지섭'이라는 인간이 들고 있던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였다. 내 눈에 끌린 건 기욤 뮈소보다 사노 요코 쪽이었다. 어느덧 반백 년 가까이 살았다고 '죽는 게 뭐라고'라는 제목에 끌린 것 같다. 제목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전자책 앱으로 검색했다. 아쉽게도 그 책은 없었고 대신 찾은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였다. 핑크색 긴소매 털 스웨터를 입고 단발머리 스타일로 옆으로 누워 TV를 보는 듯한, 절대 이쁘다고 할 수 없는 여자 머리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책 표지. 일단 소지섭이 보던 책은 아니었지만, 이 묘한 책 표지 그림에 끌렸다. 아마도 이쁘게 묘사된 그림이었다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텐데, 해학적인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쓴 사노 요코는 나의 아버지 세대 사람이다. 1938년 생. 할머니가 쓴 책이다. 젊고 팔팔했던 시절에 쓴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이 들어서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필요 없는 존재가 돼버린 노인이 됐을 때 쓴 작품이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작가들의 이른바 전성기 나이 때 만들어진 책이다. 나이가 젊다고 해서 전성기라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저자 이름을 말하는 것보다 왠지 할머니라는 호칭을 쓰고 싶어 졌다. 보통은 작가 '누구누구'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 책에서는 할머니라고 하겠다. 그저 옆집 할머니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이 할머니가 중국의 베이징에서 태어나서 늙어 병들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도 않다.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게 써나가는 할머니의 구수한 냄새가 전해지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거라면 나도 충분히 한 권 써나 갈 수 있을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풀어놓은 이야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활자를 읽는데 시간을 써온 사람치고는 이 책에서 지식인의 '잘난 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흔적이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좋았다. 정말 편안하게 읽었던 책이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사람에게서 어떤 글이 나올지 자못 궁금했다.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냈을 때, 책 한 권을 쓰게 된다면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다. 과장되지 않은 이야기, 부러 꾸미지 않은 이야기, 그냥 살아온 인생. 그냥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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