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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May 02. 2018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나이 일흔의 프리랜서 작가 할머니, 사노 요코. 작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지 않는다. 남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써 병원 치료 따위는 필요 없다.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고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는 쪽으로 선택한다. 당장 수입 자동차 매장에 가서 값비싼 재규어 승용차를 구매한다. 그 비싼 차를 가지고 다닐 날이 길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라고.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한 줄 에센스는 아무래도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미래에 닥칠 불확실성 때문에 행동과 사고에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지금 정말 원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걸 덜컥 사버리면 지금 당장이야 편하고 행복하겠지만 나중에 돈이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독거노인.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이유로 주저하거나 머뭇거려 때를 놓쳐 아쉬워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자유를 획득했다고 하는 사노 요코의 말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자신의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남은 여생을 즐기는 마음으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시한부 인생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는 또 다른 인물. 폴 칼라니티 [숨결의 바람 될 때]에서는 신경외과 의사 폴이 남은 생을 의사로서의 열정과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진솔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에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서른여섯의 젊은 남편이자 아빠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면 [사는 게 뭐라고]의 죽음은 왠지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흔한 말로 '살만큼 살았으니까'라고 말해버리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사라진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죽음에 대해서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나 자신이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까운 친구는 절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찾아올 때 의미를 가진다.


단지 인생을 오래 살아서 저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짧은 삶이건 긴 삶이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어떤 자세로 임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있다. (샤를로테 루카스의 '당신의 완벽한 1년')에서 애석하게도 시한부 인생 판결을 받은 젊은이 '지몬'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이렇듯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에 따라서 남은 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비극적인 결말일 수도 멋진 결말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사노 요코라는 독거노인 할머니가 선택한 마지막 남은 여생은 당차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라면 과연 이 할머니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해버릴 수 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말이다. 솔직히 자신 없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이 책은 읽으면서 편안해지는 책이다. 어렵지도 않고 중간중간 고집스럽고 까칠한 할머니의 유머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동화를 그려온 작가라서 그런지 글귀 하나하나가 뽐내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이라고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이해하기 쉽다. 가르치려고 들지 않고 할머니의 일상을 풀어낸 이야기. [문제가 있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것은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가 왜 아줌마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지도 이 할머니를 통해 분명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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