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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Jun 07. 2018

뇌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경기다

"나의 실력이 부족했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경기다"(3국이 끝나고)
"4국을 지켜봐 달라"
"1승 하고 이렇게 축하받은 건 처음이다"(4국이 끝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이다"(4국이 끝나고)
"신의 한 수가 아니라 그 수밖에는 둘 데가 없었다"(4국 78수)
"5국에서는 흑돌로 이겨보고 싶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는 듯한 즐거움

1997년 5월 11일, 무려 16년간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그는 이날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에 첫 패배를 당한다. 결국, 2승 3무 1패로 딥블루의 승리로 끝났다. 두뇌 싸움에서 인간이 컴퓨터에 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의 소식을 접했던 사람 중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던 이도 있다. "체스는 인간이 컴퓨터에 질지 몰라도 바둑은 그럴 일이 없다." 바둑의 룰과 변수가 체스보다 복잡하다는 일반론 때문이었을까. 바둑은 감히 컴퓨터가 넘볼 영역이 아니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바둑판 361개의 착점을 모두 채워가는 것만 해도 10의 170제곱이라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한 마디로 셀 수도 없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긴 뒤 10년이 지나서 드디어 사건이 벌어졌다.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알파고(AlphaGo)의 등장이다.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 기계의 상대는 이세돌.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에이, 바둑은 컴퓨터가 안 돼!"라는 분위기였다.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데 30년 걸렸던 체스, 바둑은 향후 50년이 지나도 컴퓨터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드디어 이세돌과 알파고의 1국이 시작됐다. 결과는 이세돌의 186수 만에 불계패. 적잖은 충격이 전해졌다. 인간의 두뇌로 가장 복잡한 사고력과 창의력을 뽐낼 수 있는 바둑에서 네모난 전자칩 따위에게 패한 하루였다. 대국은 1승 4패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대국을 치르며 이세돌이 한 멘트 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경기다"였다. 이 말속에는 인간은 컴퓨터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컴퓨터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유지해왔던 바둑계. 그 자존심은 어쩌면 바둑계만의 것이 아닌 인류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인공지능이라 포장하며 스스로 배운다고 자랑한다. 우리들이야 그것의 복잡한 구조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단지 그들이 계발한 기계라는 것이 네모난 박스 안에 수천 개의 CPU를 담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뿐. 이런 이벤트 한 번으로 수천 개의 전자뇌를 가진 알파고가 감히 1000조 개의 뉴런 세포를 가진 인간 두뇌의 사고력을 뛰어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날 이세돌이 알파고에 졌을 때, 사람들은 아마도 놀라움보다 두려운 감정이 더 크지 않았을까. 물론 예상과는 반대로 알파고가 이겼으니 그에 대한 충격으로 놀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마지막 다섯 번째 판을 졌을 때는 내 머릿속은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너무도 이른 시기에 바둑이 컴퓨터에 점령당했다는 것과 앞으로 머지않아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등장. 데이비드 이글먼이 쓴 [더 브레인]에서 인간 뇌 하나의 고해상도 구조를 저장하려면 제타 바이트(10의 21제곱 바이트) 용량이 필요하다고 썼다. 이렇듯 인간의 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영역에 있다. 아직은 과학기술이 뇌의 신비를 벗겨낸 건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지만, 알파고(AlphaGo) 같은 존재를 뛰어넘는 기계가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계속 남아돌아 지워지지 않는 것은 이세돌이 했던 말이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경기다"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이 이야기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인간이 컴퓨터를 상대로 체스 대결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이 승부를 정작 인간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 사뮈엘 핀처와 슈퍼컴퓨터 딥블루Ⅳ의 체스 대결 무대. 핀처는 딥블루Ⅳ를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저녁, 그의 애인 나타샤 안데르센과 섹스를 하던 중 갑자기 죽게 되는데. 그의 죽음은 타살 흔적이 전혀 없다. 단순히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다 격정 한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잡지사 기자 뤼크레스와 기자 출신 탐정 이지도르는 핀처의 죽음에 의문을 품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팀을 꾸린다. 큰 얼개는 핀처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인간은 과연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컴퓨터와 인간의 사고력을 측정하는 가장 두드러진 방법은 체스인 듯하다. 동양이라면 그 자리를 바둑이 대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뮈엘 핀처는 자신의 병원에서 장 루이 마르탱을 환자로 만난다. 교통사고를 당해 모든 신경은 죽었지만 '뇌' 신경 하나만 살아남은 록트인 신드롬, 즉 리스 증후군이라 부르는 마르탱을 담당하게 된다. 마르탱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 하는 처지가 됐다. 단지 한쪽 눈과 생각할 수 있는 뇌만 살아 움직인다. 고장 난 육신에 정신이 갇힌 존재가 되었다. 핀처는 그가 눈 깜빡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 더 원활한 대화를 위해 그에게 딱 맞는 컴퓨터를 제공한다. 마르탱은 덕분에 인터넷 검색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움직일 수 없으면 권태를 느끼게 마련이고, 권태를 너무 심하게 느끼다 보면 뭔가 몰두할 만한 일을 찾게 된다"는 마르탱의 말이 앞으로 벌어질 일의 큰 동기가 된다. 리스 환자가 된 그에겐 '권태'가 행동하는 유일한 동기가 된다. 말하지도 못하고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그가 세상과 교류할 방법은 자신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방법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핀처 박사의 도움으로 뇌에 전기 장치를 연결한 마르탱은 인공지능 컴퓨터 아테나와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쌓아나간다. 급기야 핀처 박사의 의료 지식을 뛰어넘는 수군까지 도달한다. 인공지능 아테나와 연결된 마르탱의 뇌는 놀랄 만큼 더 명석해지고 자연스럽게 뇌와 관련된 논문을 찾던 중 '최후의 비밀'을 발견한다. 뇌의 깊숙이 숨겨진 부분에 인간에게 극한의 쾌락을 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을 자극하면 인간도 컴퓨터에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핀처 박사는 결국 마르탱의 권유로 자신의 뇌에 전기 장치를 다는 수술을 받는다. 최후의 비밀을 자극함으로써 핀처 또한 일반인의 뇌를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하며 극한의 쾌락을 맛본다. 그러나 그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앞서 얘기한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와 바둑 천재 이세돌. 이 둘은 인간의 뇌가 사고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상의 모델을 증명해왔다. 결국엔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현실에서는 컴퓨터에 패하는 건 인간이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린 '뇌' 속에서 사뮈엘 핀처라는 인간은 일반적인 인류와 다른 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딥블루Ⅳ와의 체스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순수한 인간으로서 핀처 자신이 아니라는 것. 인간을 인조인간으로 개조한 새로운 인류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컴퓨터를 상대로 이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순수한 인간은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동시에 지나친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비극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 메시지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이세돌이 알파고와 3국이 끝나고 했던 말이 이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경기다" 

이처럼 앞으로도 과학기술에 인간이 지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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