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그래도 해낸다.
아침 출근 버스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빽빽하다.
오늘도 할머니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손자의 유치원 길 동반자가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손자의 네발자전거를 끙끙대며 버스 안으로 끌고 올라온다. 좁은 버스에서는 아무리 꼬마 자전거라 해도 비좁은 통로를 전부 차지하는 형국이 된다. 가령 내 딸의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유치원에 데리고 간다는 생각을 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자리를 대신해서 할머니가 손자를 즐겁게 유치원에 보내려는 마음에는 내 핏줄이라는 의식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렇게도 힘든 일을 마다치 않고 하는 모습을 아침 출근 버스에서 여러 차례 마주치곤 한다. 자전거를 타야만 유치원에 가는 손자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 내 딸이나 아들이 유치원 가는 길에 자전거를 가져가야 한다고 투정 부린다면 나는 절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텐데.
아침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손자의 가방과 자전거를 책임져야 하는 할머니의 지극정성을 어린 손자는 결단코 알 수 없다. 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를 위해 힘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손주를 위해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렇듯 대부분 어른이 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러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저 꼬마도 자라서 어른이 되어 이런 광경을 보게 된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었던 고마운 마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이를 가진 아빠 입장에서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만원 버스에 자전거까지 싣고 탄다는 행동은 생각해볼 여유도 없다. 일단 내가 힘드니까 아이를 설득하던가 자전거를 왜 가지고 가냐고 화부터 낼 것 같다. 유치원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것도 나이 든 노인으로서 쉬운 일이 아닌데, 매일 아침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버스에 근근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오늘도 나는 버스 제일 뒷자리에서 자전거를 들고 내리려는 할머니를 본다. 기사 아저씨는 빨리 문을 닫고 출발하기 위해 잽싸게 문을 닫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자전거와 씨름 중이다. 정류장에서 버스 문이 열리고 승객이 내리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짧은 틈에 자전거와 손자를 무사히 내려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급한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러 차례 문을 닫았다 열기를 반복한다. 문틈에 걸리는 자전거와 내리지 못한 할머니의 아찔한 광경이 연출된다.
다행히도 무사히 내린 할머니, 손자, 자전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자전거에 탄 손자의 입가가 저절로 올라간다.
할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쉰다.
결코 쉽지 않은 일.
할머니는 그래도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