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중기는 이제 갓 스물이 넘었다.
대학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 친구들은 재수에 삼수까지 하며 여전히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신분으로 몇 년을 살아간다. 당연히 가야 할 길이기에 부정도 반대도 거부도 하지 못한 채. 급류에 자신의 몸을 띄운다. 술, 친구, 당구 등등 재수생을 괴롭히는 떨쳐 버릴 수 없는 유혹들. 이런 장애물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목표는 단 한 가지. 잘은 모르지만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바꿀 수 있으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공부만 한 건 없다고 누누이 어른들은 말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어린 중기에게 그 말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기나긴 병원 생활에 지쳐 공부에 흥미를 잃어서였다.
대한민국에서 공부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일까? 누구라도 고등학교 때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중기는 그 시기에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다 보니 저절로 학교와 공부는 멀리 떠나갔다. 따라서 중기의 선택지는 기술을 배우는 일과 돈. 기술을 배우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은 어디서 공짜로 생기지 않기에. 간단한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벌어보니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노동의 고단함을 알아갈 무렵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 편했던 어린 시절 생각이 간절했다. 그 옛날 엄마가 팔다 남은 옥수수를 보며 한숨 내쉬는 이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몸이 힘들면 힘들수록 백 원의 가치와 천 원의 가치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복잡한 수학 방정식이 아니었다. 외국에서야 어린 나이에도 부모에게서 독립해 산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부모라는 그늘 밑에서 어른 아이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어리석지만 중기도 한때 그런 자유를 꿈꾸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돈을 벌어야 했다. 조선 시대라면 남자 나이 스물이면 어른이라고 했다. 혼인을 치르고도 남을 나이이며 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대접받는 때가 된다. 지아비라는 호칭도 어색한 나이가 아니었다.
한편 20세기를 사는 나이 스물의 중기. 그는 갓을 쓸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도 않았고 학벌이 좋아 사회에 그럴듯한 직장을 얻을 능력이 있지도 않았다. 모든 여건이 미성숙한 채로 어른들이 사는 세계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억울한 감정이 있거나 분해하지는 않았다. 단지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야만 했기에. 집안 형편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벌면서 기술을 배우고 집안 생계를 꾸리는 일에 싫고 나쁨을 생각할 겨를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더디지만 차근차근 돈을 모았다. 한국에서 못다 한 공부를 외국에서 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중기의 유학 생활은 고단하게도 세 가지 신분을 동시에 짊어지게 됐다. 학생, 클럽 매니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베테랑 배우가 아니고서는 훌륭히 해낼 수 없는 1인 3역의 배역. 마치 홀로 세 쌍둥이를 양육하는 엄마의 시간 같다고 할까.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쓸 수 없는.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처지 말이다.
IMF로 힘들었던 시기 1997년, 중기에게만 한파가 비껴나갔다.
그의 첫 사회인의 시작은 이랬다. 유학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돈 문제. 한국에서도 돈벌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 한구석이 편할 날이 없었다. 왜냐하면 중기는 한국에서 그만큼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95년 일본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계장 직책에 월급이 35만 엔 정도였다. 우리 돈으로는 대략 280만 원. 중기의 수입은 그보다 많았다. 유학생 신분으로 얼마나 큰 수입이 있었던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학 생활을 하며 한국의 엄마 아버지까지 챙기는 생활이 가능했다. 썩 괜찮은 외화벌이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중기는 어느새 스물여섯이 되었다. 돈벌이가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안 되는 생활 속에서 하루빨리 직장을 잡아야 했다. 친구들처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을만한 스펙은 아니었기에 닥치는 대로 구인 정보가 있는 곳은 찾아봤다. 그가 전공했던 분야가 아니더라도 괘념치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백수 생활은 늘어났다. 유학생의 탈을 벗을 때가 차차 다가옴에 따라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고 초조함과 다급함만이 커져갔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우선시했던 것은 돈이었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어차피 대기업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라 유학 생활에 벌었던 수입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활이 마이너스만 쌓이지 않기 위해선 취직이 우선.
세상 물정 모르고 들어간 곳이 젊은이들을 무저갱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피라미드 업체였다. 나이 어리고 젊은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이는 사기 업체의 행태에 속고 말았다. 직장을 잡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젊은이들에게 사기를 친다는 것이 떨리고 무서웠다. 하루 만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중기에게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곧바로 일본 무역을 하는 회사에 면접 봤지만 탈락. 중기의 이력서는 매력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무도 답장을 주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6개월이 지난 끝에 정말 겉만 화려하고 뻔지르르한 중소기업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바라고 바라던 직업을 갖게 되어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