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2002년 가을.
중기가 두 번째 회사로 옮긴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그에게도 "언제 결혼할 거니?"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먼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바로 돈. 그전 직장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결혼에 필요한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이라는 단어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다. 깡그리 '빚'을 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중기 연봉은 당시 4년제 대학 졸업자 평균인 1천899만 원과 엇비슷한 수준. 그 월급으로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었다. 하물며 저축 들어놓은 쌈짓돈도 없었으니 허공에 대고 한숨만 내뱉는 참담한 신세였다. 그런 여건이 결혼은 해야 하는 데 ‘아직 준비가 덜 됐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 이유였다. 중소기업이라도 내실이 안정적인 회사고 팀장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다닌 회사.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의 직업과 직장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처음 알게 되었던 시기다.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중기는 '겁쟁이'였다. 그나마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안일한 생각에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겁쟁이의 출발점이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 최대 실수였다. 익숙함이 편했고 변화 없이 사는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결혼은 겉으로는 하나에서 둘이 된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차라리 좀 더 솔직해지자. 100원 들어갈 거 200원이 들어가는 냉혹한 현실이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돈이 필요하다. 더불어 낭만적인 결혼 생활을 꿈꾸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과연 적은 수입으로도 현대 사회에서 그런 결혼 생활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낼 수 없어 ‘아직 준비가 덜 됐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인생에 돈이 전부는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기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풍요로웠던 시간보다 쪼들렸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중기의 어린 시절을 요약한다면 기(氣) 죽은 아이였다. 밝고 명랑한 기(氣), 활기찬 기(氣), 자신감이 넘치는 기(氣) 등등 기운이 부족했다. 그건 아마도 집안의 가난함 때문이 아니었을지. 집안에 돈이 없어 곤혹스러운 일도 많이 겪어야 했다.
어느 날 아침, 초등학교(80년대 국민학교) 교실에서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진다. 등교하자마자 육성회비(그때 돈 5,700원) 가져오지 않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던 선생님. 60명이 넘는 아이들 중 끝까지 대여섯 명의 이름이 불린다. 과연 이들 중 어느 누가 끝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이름이 불릴까. 전혀 경쟁하고 싶지도 않은 레이스에서 중기의 이름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 앙칼진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홀로 일어서는 중기. 120개가 넘는 눈알이 일시에 중기에게 쏠린다. 주위를 둘러보며 구부정한 자세로 무겁게 일어난 아이는 천추의 죄를 지은 죄인처럼 기가 꺾인다.
"언제 가져올 거니? 어?"
선생님의 표독스러운 목소리에 겁먹은 중기는 뭐라 답할 수 없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어린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 창피하고 외로웠던 순간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명 봉지쌀. 동네 쌀가게에 라면 봉지 크기만 한 봉지에 쌀을 사러 가는 심부름이다. 중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창피하고 싫었던 심부름이다. 그 한 봉지로 이틀을 먹을 수 없는 분량이란 건 봉지쌀을 사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한 됫박도 안 되는 쌀을 사러 가는 아이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쌀가게에서는 그런 식으로 팔지 않았다. 그렇게 소량으로 사가는 사람들은 없었으므로.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에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소심하게
"아저씨... 저... 한 봉지만 주세요....."
중기는 쌀집 아저씨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런 중기에게도 가끔은 행복한 날이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중기 집 쌀 단지와 연탄 창고가 가득 차는 날이다. 연탄 창고에 까만 연탄이 쌓이면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신 나서 재잘거린다. 그래 봐야 고작 서른 장이 안 되는 연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쌀이 떨어질 때까지는 부끄러운 '봉지쌀'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이런 생활은 그가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도 이어졌다.
중기가 돈을 벌기 시작했어도 생활에서 ‘가난’을 걷어내지 못했다. ‘풍족함’이라는 단어로 바꾸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쌓인 빈곤을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가당치도 않다는 것. 더구나 중기 월급봉투는 깃털처럼 가벼웠으므로. 그런 상황에서 무슨 용기가 있어 결혼을 선택했는지. 그저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낭만적인 결혼 생활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빚을 지지 않는 생활 기반이 되어야 할 텐데. 결혼을 결정하고 그의 머릿속은 온통 돈에 관한 상념으로 가득 찼다. 한편으론 결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도 했다.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인륜지대사를. 일순간 그런 잘못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뭔가 해결책이 생기겠지. 설마 굶기야 하겠어!'
중기에게 세상은 만만하고 호락호락해 보였을까. 구체적인 계획 없이 두루뭉술하게 살아가면 될 거라고.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게으름 피우지 않으면 생활은 나아질 거라고. 위험천만한 젊은 혈기 하나만 손에 쥔 채로 였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보통 사람들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중기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 문턱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더해져 수학 공식으로는 2가 되는 결혼. 결혼은 단순한 숫자 놀이가 아니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조건이 필요했다. 돈도 있어야 하고, 탄탄한 직장도 있어야 하고,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갖춰야 할 것들이 넘쳤다. 행복한 둘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준비물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열정과 노력만 준비한 중기는 기준 미달이었다. 세상은 그러했다.
직장 생활 6년, 어느 정도 결혼 자금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는데 통장은 빈껍데기나 마찬가지다. 하나가 되기 위한 일말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하나가 되려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