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가치와 월급은 일치하지 않는다.

14화

by 갸리

규모는 작아도 그럭저럭 안정적인 중소기업. 회사가 창업하고 25년간 유지되고 있으므로. 작은 기업이 이 정도 버텨왔다는 건 안정성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은 별개 문제다. 적어도 그 업계에서는(애니메이션) 내로라할 만한 수준임은 틀림없다. 해외 클라이언트가 바라보는 회사의 기술력만큼은 자랑할만하다. 그에 비해 직원들의 처우는 기업이 가진 기술력과 반비례라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뭐 어느 기업이나 다 똑같다면야 투덜거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봉급쟁이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불만은 있지 않을까.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 미조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의 가치랑 보수는 딱히 일치하지 않으니까, 신경 안 쓰는 게 나아."

"그런가요?"

"잘 버는 놈들일수록 제대로 된 일 안 해. 거만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뽁뽁거리며 버튼이나 누르고 사람을 아랫사람 부리듯이 부려먹고. 그보다는 짐 나르고 물건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훌륭한데 말이지."


살면서 일의 가치와 보수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작은 회사만 다니다 보니 정말 절절하게 느끼면서 살아간다. 중기는 그런 환경에 속이 문드러지고 짜증이 난다. 자신이 가진 기술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왔고,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게 인도했다. 사람이란 게 무릇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울하고 짜증도 나고. 끝내는 자괴감이 밀려와 괴로울 때도 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뉴스가 생산되고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사실 앞에서 절망감을 느끼곤 하면서. 그냥 아무런 기술도 없이 좋은 기업에서 단순 노동하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윤택한 생활을 한다는 뉴스를 보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중기가 가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그 속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시간은 회사의 규모 앞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며칠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과 2, 3년은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은 엄연히 다른데 말이다. 일의 가치를 단순히 단순 노동이냐 아니냐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로 괜찮은 보수를 받는 것을 볼 때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중기의 일은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워야 하므로.


중기는 소설 속 인물 미조구치처럼 뇌까려본다.

"일의 가치랑 보수는 딱히 일치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마!"




고용주가 볼 때는 충분하다는 시각과 직원들 처지에서는 항상 부족하다는 관념이 팽팽히 맞선다. 바로 이것이 월급 아니겠는가. 쥐꼬리만 한 월급에 투정만 부리며 정작 새장을 박차고 날아갈 용기 없는 월급쟁이. 새장 속의 갇힌 새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중기의 실상은 대한민국 도시근로자 평균에도 못 미치는 연봉이 말해준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 목을 매는 것이 참담한 현실이 되었다. 회사를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성찰이 먼저이겠지만 누구보다 자신이 담당하는 일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래서일까. 항상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조선 시대 직업을 기준으로 사농공상의 순서로 계급을 나누듯이 중기가 다니는 회사도 확실한 계급이 존재한다. 이 말인즉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신분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기가 이 집단에서 사농공상에서 '공' 정도의 계급이라면, '사', '농'이 받는 급료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곳엔 업주가 정해놓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일의 가치와 연봉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54년 어느 과학자의 발견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뇌에 쾌락을 느끼는 세포에 전기 자극을 받은 실험용 쥐는 쾌락에 심취해버렸다. 미친 듯이 쾌락을 좇아 전기 자극을 주는 장소로 찾아간다. 실험용 쥐는 쾌락이라는 목적을 좇아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연한 쾌락의 경험이 습관이 되어버린 쥐는 그 장소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중기도 그러했을까? 회사에서 쾌락을 느끼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아등바등 살면서 애처롭게 몸부림만 치는 이유는 뭘까? 턱없이 부족한 월급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제날짜에 나왔던 월급에 안주한 것은 아닌지. (그 업계 작은 회사들은 월급 밀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했으므로)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길 자신이 없어서였을지도.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비굴한 마음을 키운 건 아닐는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내재적인 속성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기 습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보다 설령 위험할지라도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한다.

중기도 어렵사리 잡은 불안한 안정 따위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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