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리 버스 365일 [김숙의 검은 비닐봉투]

검은 비닐봉투

by 갸리

검은 비닐봉투


왜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다니세요? | make by ToonBoom Harmony

항상 검은 비닐 봉다리를 들고 타는 그녀. 아주 작은 키의 헝클어진 단발 곱슬머리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레이저를 쏠 듯한 눈빛으로 자신과 마주치는 눈빛이 있으면 바로 응징에 들어가는 그녀.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같은 버스를 타는 그녀.


김숙이 드디어 내 옆에 섰다. (결코, 개그우먼 김숙이 아니다)


아! 절대로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왜 내 옆으로 온 거야?


검은색 점퍼. 검은 가방. 어깨까지 오는 단발 곱슬머리는 오늘도 역시 부스스. 사냥감을 찾듯 이리저리 둘러본다. 누군가와 눈빛을 마주치려는 듯 이리저리 살피는 살벌한 눈빛은 여전하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녀의 손가락은 상대방의 눈앞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슬금슬금 곁눈질로 그녀를 볼뿐.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다. 아니 그녀에게 시선조차 돌릴 수 없어 일부러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 맞겠다.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이 오면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듯 두 눈에선 광기 어린 눈빛을 쏟아부으며 달려든다.


내 눈을 봐라봐! | make by ToonBoom Harmony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녀가 자리에 앉기라도 하면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는 일이 없이 뒤를 돌아본다. 바로 뒤에 앉은 사람들은 그녀의 사람 잡아먹을 듯한 눈빛과 검지와 중지를 뻗어 상대방의 눈을 겨냥해 눈알을 뽑겠다는 제스처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의 입이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다. 입에선 욕지거리를 하듯 위아래 입술은 격렬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뒷자리에 앉았다면 아침 출근부터 당혹스럽고 기분이 잡치겠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아예 모른 척을 한다. 보통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그녀의 존재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녀가 버스에 타면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돌아간다.


오늘도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젊은 아가씨가 모르고 그녀에게 가까이 붙게 되어 희생양이 되고 만다. 바로 그 즉시 김숙을 닮은 그녀의 검지와 중지는 아가씨의 눈을 찌르려는 동작을 하고 있다. 이미 입에서도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당한 젊은 아가씨의 반응은 뭐 이런 미친 ×가 있어 같은 마음으로 한마디 하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냥 다른 쪽으로 몸을 돌리거나 시선을 회피한다.


다음날도 그녀의 반말은 계속된다.


누구든 상관없다. 입에선 무조건 반말을 내뱉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를 째려본다. 드디어 포스 쩌는 할 아줌마와 한 판이 시작됐다.


빨간색 립 크로스에 검은색 털코트와 깔끔히 정리된 살색 매니큐어를 바른 긴 손톱

손가락 두 개는 덮을 정도의 빨간색 큰 꽃 모양 반지.

툭 튀어나온 입과 끝이 위로 올라간 눈썹.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뭐라 할 수 없을 포스가 있다. 버스 제일 뒤에 서게 된 할 아줌마 바로 앞에서 김숙의 반말이 시작된다.


뒤로 가! 뒤로 가!


할 아줌마 결코 지지 않고 받아친다.


어디로 가? 뒤로 갈대가 어딨어?


정말이다. 할 아줌마는 더는 뒤로 갈 수가 없다.


포스 강력한 할 아줌마와 김숙의 다툼을 보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김숙의 존재를 모르는 할 아줌마의 받아치는 댓구가 tv의 어떤 개그 프로그램보다 웃음을 준다.


요즘에야 개그우먼 김숙이 잘 나가서 얼굴도 예뻐지고 인상이 좋아졌지만, 초창기 개콘 김숙의 얼굴은 세상 불만이 가득 차고 비호감의 인상이었다. 그 시절 김숙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 버스 안의 그녀가 그 시절 김숙의 얼굴에 모진 세상 풍파를 맞은 얼굴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듯하다.


항상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헝클어진 머리에 아침 출근시간에 어디를 가는지 같은 곳에서 타고 같은 곳에서 내린다.




매일 아침 어디에 가나요? | make by ToonBoom Harmony

오늘도 이상하게 그녀는 내 옆으로 앉고 내 고개는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녀에게서 눈알이 뽑히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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