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리 버스 365일 [눈비]

눈비 내리는 버스에서

by 갸리

눈비



아침 뉴스 일기예보에 눈이나 비가 내린다는 앵커의 맨트.


거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흐린 회색.


육안으로는 비가 내리는지 잘 분간할 수 없는 날씨라 베란다 창문을 열고 오른손을 뻗어본다. 손에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으니 아직은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는다.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지 일기예보 속 앵커의 한 마디보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쪽을 택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기예보에 따라 우산을 챙기지만, 나는 나의 감을 믿는다.


오늘은 우산 없이 나가기로 결정.


버스 정류장의 사람들 역시 우산을 들고 있는 비율이 20% 정도. 다들 눈 소식에는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일기예보를 무시하는 것일까?


버스에 올라타고 조금 지나니 차창 밖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어두운 회색 하늘은 딱 눈 내리기 좋은 조건이다.


오늘은 일기예보 앵커 아저씨의 말을 들을 걸…


거리엔 우산을 쓴 사람 쓰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다. 아직은 안 쓴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눈이 내릴 때의 하얀색 느낌이 아닌 불투명하고 탁한 비에 가깝다. 내리는 눈비는 버스 창에 달라붙어 비가 그리는 기다란 지렁이 같은 궤적과는 다른 모양인 스르르 녹아 물방울 모양을 만든다.




눈비 내리는 버스에서 | make by ToonBoom Harmony

이젠 나이가 들다 보니 이런 눈발이 고맙지만은 않다. 눈만 내리면 들뜨고 빨리 밖으로 나가기에 바빴던 어릴 적의 기억은 귀찮음으로 바뀐 지 오래다.


무엇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가장 큰 차이.


길바닥이 더러워지고 미끄러워 다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오늘도 병원에 있는 엄마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자꾸 눈이 내리니 눈에 대한 감성보다 현실의 일이 더 걱정이다. 오히려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져 온 세상을 하얗게 바꾸어 놓는다면 그런대로 즐길 수 있는 풍경이 되건만. 길이 미끄러워 사람들이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광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함박눈은 그런대로 풍만한 느낌과 상쾌함이 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눈비처럼 우산을 챙겨야 할까 말까의 망설임만 주는 일기예보.

젖은 신발과 빗물 흘리는 우산들로 지저분해지는 버스 바닥.

눈비 맞으며 들어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흩날리는 물방울은 내 얼굴로 날아온다.


점점 더 눈비는 거세지며 비로 바뀌어 간다.


버스 앞 유리창의 와이퍼 움직임도 잦아들고 이미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 버스 바퀴가 긁는 바닥의 마찰음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로 걷고 있는 눈비 내리는 아침 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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