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아온 카톡 문자
오랜만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인수야 점 점 점...
뭔가 일이 났다는 직감이 든다.
고등학교 친구인 경호. 우린 평소 전화를 하거나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30년 친구 사이. 나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서로의 가는 길과 방향이 다르다 보니 자주 만날 일이 없다. 몇 년에 한 번씩 친구 가족들이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만나곤 한다. 와이프끼리도 친한 사이에 친구들 와이프도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던 사이. 친구를 만나는 날은 아주 가끔씩 집으로 가족들이 놀러 오는 모임이 전부다.
갑자기 날아온 카톡 문자.
인수야 점 점 점...
어이
뭔 일이여?
그러고 한 참을 답이 없다.
연락할 내 친구가 이제 너밖에 없구나 다들 어디 갔노 내가 잘못 살아온 건지 원 허망하네
함 보자
좀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우리는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남자들이 그렇다. 나이 먹어 40 중반이 넘으니 친구에게 문자 보내는 것도 참 힘들다. 그게 무어라고. 삶에 지쳐 누구 하나 돌아볼 여유 없이 자꾸자꾸 친구들이 떠나간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6명이 꾸준히 만나 술도 마시며 떠들며 지내왔다.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가 되니 자신과 금전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나의 밥줄을 틀어쥔 사람만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만나도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 벽이 가로 놓여 있는 느낌이 든다. 친구들 서로가 다 다른 분야에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어느 놈은 해외에 어느 놈은 지방에 어느 놈은 아직도 솔로라는 이유로 서로의 공감대를 만들기가 어려워졌다.
그냥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수도 있는데 누구 하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듯 친구들도…
친구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나에게 밖에 전화할 곳이 없었다는 카톡 메시지. 나에게도 이런 날이 언젠가는 다가올 텐데... 나 또한 이 친구와 같은 심정일 것 같은 기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힘든 일에 처했을 때 누군가 같이 위로해 줄 친구의 존재는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냈을 때 그 필요함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에 지쳐 내 곁에서 하나둘 떠나보내는 친구의 수는 늘어만 가고 친구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이 줄어든다.
태어나서 처음 납골당으로 가는 운구 버스 안. 성당에서 나오신 아줌마들의 찬송가 소리가 마치 절의 불당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납골당으로 가는 내내 스님의 염불과도 흡사한 톤으로 이어진다. 큰 버스 안은 유가족 4명 상조 팀장 한 명, 성당에서 나온 여섯일곱, 그리고 내가 전부. 빈자리가 많아 운구 버스가 더 크게 느껴지는 공간을 염불과도 같은 찬송가가 빈 곳을 메꿔준다. 성당에서 도움 주신 아줌마들이 없었다면 참 쓸쓸할 뻔했던 고인을 모실 납골당 가는 길.
납골당에 도착하면 유가족에겐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고인이 된 유골 항아리를 안치할 칸을 선택한다. 참 이 시간이 갈등이 시작된다. 내 부모를 그래도 조금이라도 좋은 위치에 있게 하려면 돈 문제로 넘어간다. 아파트 구조와도 같이 납골당은 층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파트에도 로열층이 있듯 이곳 또한 마찬가지. 아파트와 다른 점은 제일 위층이 1층으로 제일 밑이 8층으로 되어 있다는 것. 중간층인 3~6층이 로열층 그리고 나머지는 똑같다. 부모님 두 분을 모시는 공간은 가격이 두 배. 어느 자식이건 가장 좋은 자리에 두고 싶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생의 끝을 결정하는 장소도 돈이 있어야만 한다는...
죽어서도 평등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층으로 구분되는 고인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