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지혜로워 졌는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내게 입영통지서가 나왔고, 그 길로 친구 두 명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친구들은 기꺼이 함께 나서 주었고,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면 일단 부산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하여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막상 부산에 내려서는 방학중이던 부산 사는 친구를 불러 점심을 먹고, 제주도에 가고 싶은데, 가진 돈으로는 돌아올 비행기 값이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친구의 권유로 거제도행 버스에 오른다.
거제도 버스터미널 여관에 짐을 풀고, 주인아주머니에게 거제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냐고 물어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해금강.
그런데 버스의 종점까지 왔는데도 해금강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 아저씨에게 물어 해금강 가는 버스를 탔는데, 왜 강가는 보이지 않느냐고 물으니, 여기가 해금강이라는 답변.
해금강은 강이 아니라 바다다.
해금강은 강이 아니라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려 해금강이라고.
스무 살의 청년 셋은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해금강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하다는 학동 몽돌해변을 찾았다. 해변에서 오랜 파도를 견뎌내며 몽글몽글해진 돌 틈 사이로 보석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보석은 다름 아닌 사이다병의 깨진 유리조각
쓸모를 다해 버려진 유리병이 바다의 시간을 견뎌내고 빛나는 보석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몽돌해변 몽돌 채취 금지 안내판을 보며 마음의 가책을 받았지만,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한 막연한 투지를 갖게 하는 보석을 들고 숙소로 향하는 길.... 날이 어두워져 버스는 안 보이고, 한참을 걸어왔다.
지나가던 동내 아저씨의 차에 올라타서 군대 가는 친구를 위해 함께 여행을 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저씨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아저씨는 스무 살의 자신을 떠올렸으리라.
해금강이 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불가사리가 바닷가에 이렇게나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점도 배웠고, 서울에 올라와 추운 고속터미널 지하철역 앞에서 쭈그리고 모여 앉아 첫차를 기다리며, 워크맨의 음악을 들었던 스무 살의 아련한 추억이다.
그리고 26년 흘렀고 아들과 함께 몽돌해변을 찾았다.
몇해 전 아들과 떠난 겨울여행지의 장소로 거제도의 몽돌해변을 택했다. 아들에게 해금강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많은 몽돌 사이에서 오래전 나의 모습을 찾아본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 좋아질거라는 기대감으로 지냈을 그 시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좀 더 지혜로워졌는가? 가지고 있는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생겼는가?
박경리 선생께서 이야기한 '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던 삶의 태도를 견지하며, 채우고 또 비워왔는지 돌아본다.
나의 철학은 그리 깊어지지도 않았으나 이미 몸은 노화를 겪고 있고, 주위의 사람들을 보내는 애도의 시간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2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떠올려본다.
여전히 아이처럼 작은 불편함에 투정하고, 분노하고, 불안감에 도망치는 태도는 그대로인 듯하다.
작은 기쁨에도 세상을 얻은 듯이 해맑게 웃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뉴우런의 기능저하로 나타나는 노화의 단면을 불평하기 보다 성찰의 깊이가 더해짐에 감사하고, 이기심이라는 감정과 욕망이 나의 심장을 잡아먹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무언가를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기보다 함께 작은 경험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을까?
무엇이 중요한가?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의 대사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