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우아한 패배다

가벼운 고백(김영민, 김영사, 2024)

by 최 윤
가볍지 않은 드립, 촌철살인의 문장, 글로 담을 수 없는 여백

22_ 인간은 필멸자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우아한 패배다.

산다는 일은 그냥 사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수혜자이자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삶이란 사태를 바라보는 일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읽고 쓴다.


23_ 안 좋은 일 때문에 놀랄 때마다, 놀라는 자신을 보고 한번 더 놀란다. 삶에 이토록 은연중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니!


31_ 벚꽃 아래서 야구하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상대의 적시타로 패배한 아이들은 글러브를 땅에 팽개치느라 자신들이 행복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모르겠지. 물론 나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매일 하는 바로 그것이다. 무엇을 매일 할 것인가.


35_ 겨울은 봄이 온다는 걸 모른다. 나는 이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봄은 비틀거리면서 온다. 나는 이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39_ 삶의 질을 측정하고 싶다면, 행복의 정도를 알고 싶다면 근심 없이 아침 산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라.


63_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그렇다. 당신은 남지 않는다.


67_ 과학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과학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비과학적인 걸 늘어놓고 그걸 과학이라 하는 것이다. 삶을 혐오하는 최적의 방법은 삶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69_ 발이 신발을 잊지 못하면 신발은 구속이 되며, 심하면 족쇄가 된다. 허리가 허리띠를 잊지 못하면 허리띠는 재앙이 되며 심하면 밧줄과 오라가 된다. 사람이 종일토록 신을 신고 허리띠를 매고도 싫어할 줄 모르는 까닭은 이것을 잊었기 때문이다.(소동파, 동파역전, 성상구 옮김. 청계, 2004, 269쪽)


73_ 노인이 되면, 전보다 현명해지되 속은 좁아진다고 한다. 위기감 때문이겠지.


85_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생계 수단을 읽는 것을 뜻한다면,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99_ 사람 대부분은 자신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근처를 서성거리다 죽는다.


106_ 성장이란 허장성세와 근거 없는 희망과 비문으로 점철된 자신을 첨삭해 가는 과정이다.


107_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 삶을 더 잘 누리기 위해서다. 허겁지겁 살 때 채 누리지 못한 삶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삶의 깊은 쾌락은 삶의 질감을 음미하는 데서 온다. 그러니 공부가 어찌 쾌락이 아닐 수 있겠는가.


114_ Q : 왜 이렇게 늘 읽고만 있는 거죠? 왜 정리해서 발표하고, 사회로 나아가지 않는 거죠?

A : 이렇게 해야, 사회와 무관하지만 아주 유식한 상태로 죽을 수 있거든.


115_ 너희가 고통을 사랑하느냐. 적성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괴로움의 종류를 찾는다는 것이다.


118_입시나 고시 공부에 인생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은 불행해지기 쉽다. 합격을 못 하면 자존감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불행해진다. 합격을 했다고 행복해질까? 어떤 좋은 결과도 오랫동안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고생한 시간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엉뚱한 데서 보상을 찾기 시작한다. 이제 그의 개인적 불행은 사회적 불행이 되기 시작한다.


139_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정신없이 주워 담고 있는데, 책이 내게 물었다. "넌 날 왜 사는가."


141_ 아이들은 뛰어나다. 다만 방치될 뿐이다.


191_ 신체의 비유는 힘이 세다. 우동사리는 우동의 뇌다. 설사는 창자의 오열이다.


211_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 오랜 표류 기간을 견뎌 살아남았는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뗏목에 호랑이와 함께 탔기 때문이다 호랑이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그 긴장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그 강함이 그로 하여금 대양을 건너게 했다. 현재 당신이 표류 중이라면, 당신의 호랑이는 누구인가.


217_ 왜 과일은 썩기 직전에 가장 달콤한가. 달콤한 것은 왜 다 썩기 직전의 상태인가


218_ 이것이 나의 산책 예찬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다. 혹자는 살아남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척하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산책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삶을 원한다. 산책보다 더 나은 게 있는 삶은 사양하겠다. 산책은 다름 아닌 존재의 휴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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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목적지향주의자의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져 허송세월을 낚는 강태공만의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사이의 무엇이고, 그 허무함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내야 하며,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끊임없이 삶의 이유를 찾고, 작은 성취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을 인정하며, 내일은 새로운 배낭을 짊어져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투정만으로 흐르는 시간을 채우는 것은 생에 대한 모독임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스스로 눈물겨운 노력을 다하는 개그맨의 심정으로 철저히 공부하고, 배움을 실천하며, 현학적인 지적허영으로 타인을 비판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요구하는 잣대를 더 엄격히 요구하는 학자다.

그 가운데 엄숙주의를 경계하며, 가벼운 미소를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의 본분을 잊지 않고, 배우는 이의 고통이 삶의 지혜로 성숙하는 과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스승의 태도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너는 어떤 선생인지, 스스로에게 늘 질문을 던지고, 과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그러라고 선생의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냉혈한(?) 교수님이다. 그래도 졸업 후 다시 찾게 되는 은사가 된다.

기존의 에세이에서 퇴임을 앞둔 마지막 수업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상투적이지 않겠는지 고민 끝에 갑자기 휴강을 해버리면 좋겠다는 작가의 인식에서 왜 이 책의 제목 또한 '가벼운 고백'으로 지었는지 짐작이 간다.

부디 더욱 건강하시라. 그리고 촌철살인의 드립으로 우리에게 각성과 동시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글과 행동을 남겨주기를 기원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아직 김영민 교수와 같은 분이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