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극단의 시대를 지나며, 한 저널리스트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

by 최 윤

저자 : 권석천 / 출판사 : 어크로스 / 출간일 : 20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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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나와 마주치는 서늘한 순간


○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다.

-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 ‘나는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


□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① 뒤집힌 자라가 뜨거운 태양에 점점 말라서 죽어 가는데 당신은 돕지 않는다. 왜인가?

② 생일날 누가 당신에게 가죽 지갑을 선물한다면?

③ 잡지를 보다가 여자의 누드사진을 보개 된다면? 남편이 그 사진을 벽에 붙인다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과 복제인간 ‘리플리컨트(replicant)를 가려내기 위해 던지는 질문)


○ 가상 상황에 대한 대답과 눈동자 홍체의 변화를 분석하면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리플리컨트는 대답을 해내지 못한다. 당신도 대답을 잘 못한다면 당신도 리플리?..


○ 의미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 세상과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말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고통받은 만큼만 진실이다.



□ 그동안 당신은 어디 있었나


○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말한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

- 우리가 아이히만이 아니라고 해도 이 물음을 비켜갈 수 없다.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 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 (기자 지망생 질문) 제가 언론사에 입사했는데, 부장이 나쁜 기사를 쓰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당신이 나아갈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나쁜 일’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사는 불편한 사람이 되라.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정도는 아니라 믿는다.


□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직업도 있는 것이다.


○ 사진기자 캐빈 카터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소녀와 그 옆에서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촬영하여 1994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촬영 후 “왜 그 아이를 곧바로 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 속에 괴로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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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카터 사진, 독수리와 소녀(a starving Sudanese girl who collapsed on her way to a feeding center while a vulture waited nearby)>

출처 : 서울신문 (2011.4.30 17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430017008


- 기자들은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취재대상으로 할 때, 아이 잃은 가족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물었다. 속보의 경쟁속에 인간의 공감이 설 자리는 없었다.


-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재판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 정권은 잔혹 행위를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고 강조한다.


- 좋은 사람은 결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정의는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지만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상고법원 도입과 관련하여 작성한 문건에서 ‘자신의 사건을 제대로 판단 받고 싶은 일반국민’을 ‘이기적인 국민’으로 표현했다.



일반 국민들은 대법관이 높은 보수와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만큼, 그 정도 업무는 과한 것이 아니며, 특히,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임.


※(법원행정처 문건 <8.29(금) 법무비서관실과의 회식 관련> 일부. 밑줄은 문건 원문에 있던 것임


이어 ‘이기적인 국민들 입장에서 상고법원이 생겼을 경우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의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정의는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 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정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 우리가 향해야 하는 건 결과로서의 정의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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