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타로를 보러 갔을까

믿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했던 거겠지

by 결 Gyeol

나는 타로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

사주를 맹신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종종,

예약 버튼을 누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카드 몇 장이 내 인생을 설명해줄 리 없고,

태어난 시간과 날짜가

지금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점괘가 아니라 '말'을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고생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는 조금 나아질 거다."


그 말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었다.

tempImage1zXvSx.heic @Fool,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의 카드


누구도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았고,

사실 나조차도

그 말을 나에게 해주지 않았다.


타로를 보고, 사주를 보는 동안

상대는 내 표정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카드를 해석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많이 애쓰셨네요."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건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삶을 나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 뒤

괜찮았다고 말해주기를.


어쩌면 타로나 사주를 찾는 마음은

미래가 궁금해서라기 보다

과거가 인정받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사람은 생각보다

확신보다 위로를 먼저 원한다.


우리는 늘 계산하고 계획하지만

가끔은 논리가 아니라

다정한 문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그리고 어쩌면,

카드 몇 장이 기대어

내 삶을 통째로 건네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통째로 그냥,

덮어놓고 잘 했다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지도.


미래가 맞을지 틀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누군가가 나를 평가, 판단하지 않고

들어준다는 느낌이 필요했을 뿐이다.


타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금 이상했다.


카드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말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믿으러 간 것이 아니라

위로받으러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잘해왔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고생은 끝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는

버텨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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