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했던 거겠지
나는 타로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
사주를 맹신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종종,
예약 버튼을 누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카드 몇 장이 내 인생을 설명해줄 리 없고,
태어난 시간과 날짜가
지금의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점괘가 아니라 '말'을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고생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는 조금 나아질 거다."
그 말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었다.
누구도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았고,
사실 나조차도
그 말을 나에게 해주지 않았다.
타로를 보고, 사주를 보는 동안
상대는 내 표정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카드를 해석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많이 애쓰셨네요."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건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삶을 나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 뒤
괜찮았다고 말해주기를.
어쩌면 타로나 사주를 찾는 마음은
미래가 궁금해서라기 보다
과거가 인정받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사람은 생각보다
확신보다 위로를 먼저 원한다.
우리는 늘 계산하고 계획하지만
가끔은 논리가 아니라
다정한 문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그리고 어쩌면,
카드 몇 장이 기대어
내 삶을 통째로 건네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통째로 그냥,
덮어놓고 잘 했다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지도.
미래가 맞을지 틀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누군가가 나를 평가, 판단하지 않고
들어준다는 느낌이 필요했을 뿐이다.
타로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금 이상했다.
카드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말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믿으러 간 것이 아니라
위로받으러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잘해왔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고생은 끝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는
버텨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