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헛헛함에 대하여

만신창이가 된 날의 고백

by 결 Gyeol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살아 왔다.


'열심히' 라는 말이 모호하다면,

그 뜻을 '쉼 없음'이라고 정의해도 좋겠다.

쉼 없이 공부했고,

쉼 없이 일했고,

쉼 없이 엄마였고,

쉼 없이 누군가의 곁을 지켰다.


그래서 나는 자부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그런데 요즘,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너무 헛헛하다.


공부하고 일해온 시간에 비해

내가 사회에서 단단히 뿌리내렸다는 느낌은 없다.

열심히 사랑을 다해 키운 아이는

이제 사춘기라는 틀 속에서 나를 밀어낸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지지해 왔다고 믿었던 남편은,

요즘 말만 꺼내면 날이 서 있고, 모든게 내 탓이라고만 한다.


쉼 없이 일을 해 왔지만

사십 훌쩍 넘긴 지금,

통장을 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온 이유가 무엇이었나 싶어진다.


게다가 뭐 대단한 삶을 산 것도 아닌데,

엄마의 칠순을 잊고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몸도 예전같지 않다.

이유 없이 여기저기 아프고,

거울 속 나는 낯설다.


만신창이라는 말이

이렇게 피부에 와닿을 줄은 몰랐다.

@clara, 봄이 오기 직전 목련같은 사십대


사는 게 엉망처럼 느껴질 때,

결국 남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뿐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힘을 얻어야 할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눈물이 났다.

세상이 아니라, 내가 싫어서 울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연기가되어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사십 대가 이런거라는걸 알았더라면

삼십 대에는 그냥 좀 덜 애썼을까.

어차피 지금도 이렇게 힘들 거라면

조금은 더 가볍게 살아볼 걸 그랬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헛헛한 이유는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쉼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열심히와 쉼 없음을

나는 같은 말로 생각해왔다.


쉼 없는 삶은

성과를 남길 수는 있어도

여백을 남기지는 못한다.


나는 달려왔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기여하고 증명하느라 바빴지만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 헛헛함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지속의 피로일지도 모른다.


사십 대는 완성의 나이가 아니라

재정비의 나이일지도 모른다.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고,

조금 덜 유능해보여도 괜찮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이 만신창이 같은 순간조차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이 순간을 지나고 있는 나 역시

여전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사십 대는

엉망이 아니라

정직해지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여기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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