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말이 가장 버거운 순간
가끔은 정말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무너질 듯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원망할 만큼의 분명한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사실은 수십번의 면접에서 떨어졌고,
이제는 세상에 약이 오르기까지 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조금씩 버겁다.
하루를 버티는 일,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표정을 짓는 일,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이는 일,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일을 약속하는 일까지.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숨이 차다.
사십대는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불린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닐 것이다.
쌓아온 시간들이 있고,
어느 정도의 자리는 만들어졌고,
앞으로의 방향도 어렴풋이 보이는 시기니까.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다른 의미로도 들린다.
이제 물러날 수 없다는 뜻,
이제는 쉽게 무너질 수도 없다는 뜻,
이제는 더 이상 연습이 아니라는 뜻.
그래서일까.
이 나이는 유난히 조용하게 지친다.
그리고 무섭다.
젋을 때의 지침은
소리라도 낼 수 있었다.
억울하다고, 힘들다고, 모르겠다고
어설프게라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미 많은 선택을 해버렸고,
이미 많은 책임을 떠안고 있고,
이미 꽤 멀리 와버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도를 줄일 수도 없다.
그저 조금씩 닳아가면서
앞으로 밀려간다.
가끔은
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싶다.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도,
증명해서 한다는 부담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그냥 잠깐,
멈춰 있고 싶다.
누군가가
"여기가끼 잘 왔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내가 나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지.
사십대는
어쩌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버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막아내는 일이 더 많아지는 시기.
그래서 더 외롭고,
그래서 더 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끝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이 무게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아주 정직한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오늘 하루 정도는
조금 덜 괜찮아도 괜찮다고.
조금 느려도,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잠시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어딘가에서
같은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
또 다른 사십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