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이번 전형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by 결 Gyeol


최종 결과 메일이 오전에 도착했다.

짧고 정중한 문장이었다.


"아쉽게도 이번 전형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tempImagedRWrcL.heic @겨울보다 추운 순간

모니터를 오래 바라봤다.

놀랍지도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졌다.

그리고는 눈물이 흘렀다.

약이 오르기까지 했다.


나는 십 년의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더 늦으면 한국사회에 적응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쌓은 경력과 경험이 여기서도 유효할 것이라고 믿었다.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결국 제자리로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도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고,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지막 문턱에서 멈춰 서는 기분은 묘했다.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선택되지는 않는 자리.


그날도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족들 식사를 준비했고,

아이의 일과를 챙겼고,

저녁에는 내일 일정을 정리했다.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말을 해도 위로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은 나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

"내 자리가 아닌가보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질문이 맴돌았다.


이젠 정말 그만해야 한다는 하늘의 메세지인가.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인건가.


사십 대의 도전은 이십 대의 도전과 다르다.

실패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자존감과 직결된다.

"나는 아직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긴 한가?"

"이 사회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질문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조용히 작아진다.


특히 해외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돌아온 나에게

한국 사회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애썼고,

경력을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문장을 덧붙여야 했다.


나는 분명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늘 마지막에서 멈췄다.


그럴 때마가 멈추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안정적인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면 상처도 덜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떨어졋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의 반, 타의 반, 도전을 멈춘 나를 상상하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조금씩 안전해 지는 대신 작아지는 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다시 지원서를 정리하고,

이력서를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공부한다.


여전히 불안하다.

여전히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때로는 속으로만 앓는다.


혹시 나와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지막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그 문턱까지는 갔다는 뜻이라고.


우리는 이미 멀리 왔다.

해외에서의 시간도, 아이를 키운 시간도,

경력의 공백처럼 보였단 시간도,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증명해야 할 뿐이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서 보는 일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완전히 멈추지는 않기로 했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나를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는 그렇게 깊어지고 싶다.


BGM. 괜찮은 척, 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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