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력이 아니라 시간을 설명해야 했다.

by 결 Gyeol
tempImageA9DvSW.heic @다시 또 시작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가장 많이 한 일은

이력서를 쓰는 일이었다.


십 년의 해외 생활을 정리해 한 장의 문서로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왜 그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한국을 떠났습니까"

"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까"

"공백처럼 보이는 이 시기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질문은 언제나 과거를 향해 있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사람인지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증명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외에서의 시간은 내게 분명 성장의 시간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일했고, 새로운 기준 속에서 배우며,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돌아온 자리에서 그 시간은 종종

'설명해야 할 경력'이 되었다.


사십 대의 이력서는 단순하지 않다.

일과 육이, 이동과 선택,

타협과 결단이 뒤섞여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 돌아왔느냐고,

조금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경력이 아니라

시간을 변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십 대의 이력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되었다.

삼십 대의 이력서는 성과를 증명하면 되었다.

그러나 사십 대의 이력서는

'왜 아직도 도전하느냐'를 설명해야 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 그렇다.

아이를 키운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공백처럼 보인다.

해외에서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우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약하게 만든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낯선 나라에서 방향을 잡았던 시간.

아이를 키우며 일의 속도를 조절했던 시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을 준비했던 시간.


그 시간들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면접장에서

그 시간을 짧게 요약해야 한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축소해서 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은 조금씩 닳는다.


나는 여러 번 최종에서 멈췄다.

충분히 잘 해냈다고 생각한 자리에서도

결국 선택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나는 늘 스스로에세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또 도전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속으로 소리치지만

돌아오면 또 책상앞에 앉아서

면접 내용을 복기하고 정리한다.


사십대의 도전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의 문제에 가깝다.


나는 이미 많은 시간을 건너왔다.

떠나기도 했고, 돌아오기도 했고.

멈추는 대신 우회하기도 했다.


그 모든 선택은

그 시절의 최선이었다.


이제는 그 시간을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나의 서사다.


나는 여전히 도전한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의 이력서는

증명서가 아니라

기록이라는 것을.


사십대의 나는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선택하는 사람이다.


혹시 지금,

자신의 시간을 설명하느라 지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돌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건너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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