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결] #03 건너뛴 시간 위에, 다시 걷는다

오래된 기억, 흐린 풍경 속에서

by 결이

긴 연휴를 이용하여 아버지의 칠순 미리 맞이했다.
하늘도 축하해 주는 듯, 날씨는 유난히 맑고 포근했,
아침부터 예약해 둔 식당에 미리 도착해
준비해 놓은 케이크와 선물, 그리고 작은 이벤트 소품들을 설치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가족들이 도착했고,
모두 밝은 얼굴로 아버지를 축하해 주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도 건네고,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웃으며 따뜻한 식사를 나눴다.

우리 가족의 기념일에는
항상 조카가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오늘도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에
우리 모두는 자연스레 웃을 수 있었다.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는 검은 머리보다 훨씬 많아진 흰머리.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주름진 얼굴.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어린 시절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형은 나와 나이 차가 있어서 함께 놀 일도 드물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친구도 없이, 책과 함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유년기 시절 기억에도 없는

몇 장의 사진 외에 간직해 놓은 추억이 없다.
바쁜 부모님과 여유 없는 일상 속에
사진도, 여행도, 기념일도
그저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 기억 속에 유독 따뜻하게 남아 있는 건
아버지와의 소소한 장난들이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를 간지럽히기, 도망치기, 얄궂은 장난.
머리도 직접 잘라주고,

목욕탕에 데려가 때도 밀어주고,
주말이면 직접 요리한 제육볶음 또는 김치찌개로

하루를 특별하게 해 주었다.

그 시간들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가장 다정한 얼굴이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나는 점점 부모님과 더욱더 멀어졌고,
그렇게 한참을 바쁘게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부모님은 내 삶에서 ‘배경’이 되었고
나는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그 배경이 얼마나 소중한 풍경이었는지 깨닫는다.

오늘 아버지의 칠순 자리에서,
그동안 건너뛰어 온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고 싶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기억을 쌓아가며

낯설고 쑥스럽지만
조용히 마음을 전해보고 싶다.

늦은 건 있지만,
너무 늦은 건 없기를 바

이제라도, 놓쳤던 시간을 함께 걸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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