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생각, 조용한 결심 속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평점도 높고,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라는
‘야당’이라는 작품이었다.
정치 풍자와 사회 비판이 중심인 줄 알았지만,
정작 내게 가장 깊게 남은 건 그 안에 스며든
인간의 본능적 쾌락주의,
성공을 위해 서슴없이 행해지는 배신,
그리고 돈과 권력 앞에서 드러나는 탐욕이었다.
나는 원래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은, 힘 앞에서 본성의 민낯을
숨기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선하고 따뜻한 이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선함은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 역시,
본성에서 비롯된 선함이라기보다
집단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물론, 어떤 선함은 진심에서 비롯된 연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연민조차도,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이자,
항상 더 안전한 자리에서만 작동하는 감정일 수 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도덕은 종종 진심과 계산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누구든 힘을 가지거나, 그 힘을 가지기 위해
그 안에 숨겨졌던 이기심과 잔인함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물론 나조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윤리와 도덕이라는 건, 절대적인 선이라기보단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태도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윤리들은, 절대적인 진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이 고통을 경험하며 생존을 위해 만든 사회적 합의일 수 있다. 정의도, 선함도, 이타심도 생존 전략이자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자연을 보면 더욱 그렇다.
사자가 새끼 가젤을 무는 장면을 우리는 잔인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건 본능이고, 생존이다.
벌이 침을 놓으며 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희생처럼 보이지만,
그것 또한 유전자에 각인된 행동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나 헌신도,
진화된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생존 방식일 수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라면,
진짜 의미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진짜 의미는 없다. 우리가 만든 의미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냉정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절대적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매일의 선택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정해진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우리가 옳든, 옳지 않든,
결국 우리는 각자의 선택으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게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자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