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생각, 감정 너머에서
어느 날 문득,
이 시간이 ‘참아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시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감정을 오래 눌러두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금세 지치고,
정서적인 압박이 쌓일수록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칠 수도 없고,
모든 걸 끊어낼 수도 없다.
얽혀버린 관계도, 책임도, 생활도
이제는 내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회색지대 한가운데에 선다.
이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로도 쉽게 떠날 수 없는 공간.
한때는 따뜻한 온기와 웃음이 머물던 곳.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이건 그냥 지나가는 거야.”
참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지키는 중이라고.
물론, 지킨다는 말이
항상 단단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가끔은 내가 나였던 얼굴조차 희미해진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지나고 나면,
감정도, 생각도,
한때는 나를 이루던 결도
조금씩 희미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지금은 흐릿할지라도
언젠가는 이 시간조차
내가 나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순간이었음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흐릿한 시간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