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결] #07 끝을 지나야, 비로소

잊혀진 계절, 오래된 기억 속에서

by 결이

처음에는 그에게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정을 내보인 순간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의 삶에 불편한 그림자가 되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

그다음에는 그에게 화가 났다.
오랜 시간 쌓아온 온기마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것 같아 서러웠고,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는 차가움이 가슴을 쳤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마음을
왜 서툴게 다루었을까.
왜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졌을까.
왜 좀 더 단단하게 품지 못했을까.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는,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모든 걸 다 주고도
스스로를 아프게 한 나를,
지켜주지 못한 나를,
애써 외면했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고맙다.

그를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혼자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침묵이 가장 깊은 대화가 된다는 것을.

그를 통해 나는 배웠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날에도,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걸.
잃어버린 것 같던 시간 속에서도
진짜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갈 수 있다는 걸.

그는 내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고 갔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조금 더 조용해졌으며,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후회도, 서운함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단지 고마움뿐이다.


때론 어떤 만남은 지나야

비로소,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이전 06화[마음의 결] #06 나는 나를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