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하루, 작은 시간 속에서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늘 저녁이 시작되는 캠퍼스로 향한다.
5월의 캠퍼스는 공기부터 다르다.
풀 냄새, 석양빛, 살랑이는 바람까지
수업 전에 잠깐 스치는 그 풍경이
하루의 피로를 살짝 걷어내는 느낌이 든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실 한쪽에 준비된 간식 앞에서 가볍게 웃는다.
오늘의 메뉴는 닭강정과 콜라.
바쁜 하루를 마친 누군가는
이 간식 하나로 허기를 달래고,
또 누군가는 짧은 숨을 고른다.
나는 식품 전공자지만,
우리가 배우는 내용은
단순히 식품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업대학원이라는 특성 덕분에
인공지능, 자동화공정, 마케팅, 그리고 사업분야까지
주제는 늘 폭넓고 현실적이다.
학생들도 다양하다.
직장인부터 회사 대표까지
나이도, 직급도 모두 다르지만
‘조금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같다.
오늘 강의는 식품제조업 회사 대표님의 마케팅 수업이었다.
벌써 세 번째 시간인데,
들을수록 한 단어, 한 문장이 더 와닿는다.
그는 느리지만 단단한 말투로 강의했다.
작은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고.
강의 중간,
그는 본인 회사의 모습을
예능처럼 편집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직원들이 워크숍을 가서 함께 생활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
그 장면들이 어쩐지 따뜻하게 다가왔다.
회사는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길 바란다는 그의 말은
나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는 실력보다 인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사람 하나로 회사가 성장하기도 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회사에 바라는 건 뭘까?
안정성과 성장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재미’일지도 모르겠다.
늘 마음속엔 물음표가 있었다.
나는 벌써 10년째 같은 직무를 맡고 있는데,
이 일이 과연 나와 맞는 일일까?
내 업무는 정량적이고 체계적이며 딱딱하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감정적으로 지쳐 있을 땐
그저 일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웃음과 사람 사이의 온기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게 한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 밖으로 나왔을 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나서 맞이하는 저녁의 냄새,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의 냄새와 같다.
이 모든 순간들이
결국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작은 뿌듯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