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기계vs인간> by 김대식
http://visla.kr/?p=45671 인공지능이 세계 최초로 작곡한 팝송이 발표됐다. 놀랍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아이로봇과 로봇청소기의 괴리
10년도 더 됐지만 영화 <아이로봇>을 본 기억은 정말 생생하다. 로봇들이 인간을 위협할 때마다 움찔했다. 영화 속 2035년, 인간은 로봇에 강한 인공지능을 탑재했고 대량생산하여 보급했다. 강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은 물리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힘과 학습능력을 갖췄다. 무엇보다 인간을 복종하도록 설계되었기에 로봇은 인간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줄 것이라 기대됐다.
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위 내용이 로봇에게 시스템화된 법칙들이다. 그러나 인간을 공격한 로봇이 등장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 1원칙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위협하는 제 3의 인간을 해한 것이다. 입력된 법칙들이 충돌을 일으키며 인간과 로봇의 유토피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로봇들에 대한 배신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내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로봇은 고작해야 로봇청소기였기 때문이었다. 문지방도 제대로 넘지 못하는 로봇청소기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발전하는 로봇으로? 멀어도 한참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게 어쩌면 당연했다.
<김대식의 인간vs기계>를 읽은 후 터무니없는 공상과학으로만 느껴졌던 <아이로봇>을 새로이 본다. 2016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인공지능은 무엇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인공지능의 발전과정과 그로인해 찾아올 변화를 소개하며 '왜 우리가 인공지능에 주목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직관의 게임: 이세돌 vs 알파고
사실 인간과 기계의 대결구도가 큰 이슈가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인간대표 이세돌과 컴퓨터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그 불을 지폈다. 체스의 경우 이미 오래 전에 인간이 컴퓨터와 싸워 패배했지만 바둑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체스의 경우 각 상황마다 둘 수 있는 수가 평균 20가지 정도라면 바둑에는 평균 200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데 이렇게 많은 수 중에서 바둑기사들은 최적의 수를 선택한다. 바둑기사들도 오랜 경험으로 생긴 직관에 의지해 내리는 자신의 선택을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바둑이 '직관의 게임'이라고 불리며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직관의 게임', 바로 이것이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해 '사소해 보이는' 바둑대결에 과감히 투자한 이유다. 그동안 전통적인 인공지능 기계에게는 프로급 바둑을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이전의 방법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만큼(우리는 뇌 사용의 10%정도만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만을 가르쳐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딥러닝'이 가능해졌다. '딥러닝'이란 데이터를 주입하면 딱 그만큼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단계적으로 압축해 점점 더 작아진 단위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매우 추상적인 내용까지 추론이 가능해졌다. 쉽게 표현해 '고양이'라는 물체를 인간이 기껏해야 100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통해 100만 가지의 표현이 가능하다. 구글의 '딥마인드'는 16만 판의 바둑기보를 딥러닝을 통해 학습시켜 여러 버전의 알파고를 만들고 서로 대결하게 해 거의 무한에 가까운 기보를 만들어냈다. 바둑 전문가들은 대국 중에 알파고가 수 차례 실수를 저질렀다고 분석했지만 사실 알파고는 인간이 내다볼 수 있는 20수 정도가 아니라 훨씬 이후를 추론할 수 있었기에 '신의 한수'를 두었던 것이다. 결국 알파고는 보기 좋게 이세돌을 꺾어버렸다.
사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장면을 목격할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알파고가 왜 혁신적인지 몰랐기 때문이었고 이 날의 대결이 어떤 변화를 예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딥러닝에 대한 실험에 성공했다. 딥러닝의 성공적인 등장으로 터무니없어 보였던 많은 것들이 현실성을 띠게 됐다. 인공지능은 이제 사물, 사람 뿐 아니라 상황을 인식한다고 한다(스토리텔링은 아직이다).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더 정확한 답을 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 저자는 이제 공상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찾아오지 않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앞서 딥러닝을 공부했기 때문일까?)
인지자동화: 제 3차 산업혁명의 도래
저자는 인간의 지적산업에 기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 즉 '인지자동화'가 시작될 때 생길 가장 큰 변화로 무인자동차의 현실화를 꼽았다. 미국에서 무인자동화가 개발되면 지금의 20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만이 자동차를 소유할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자동차 스스로 다니기 때문에 하루 10시간이상 세워두는 지금의 비효율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주차장 감소, 매연 감소, 녹지화, 안전사고 급감, 기름값 절약, 교통체증 감소 등의 많은 혜택이 생긴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동차 완성차업체가 사라지고, 정비소, 주유소, 보험사 등이 줄줄이 사라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 있음을 예견했다.
이처럼 인지자동화로 인해 생길 나비효과는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이미 기계들은 기사를 쓰고 있고,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계산을 한다. 그동안 인간이 독점하던 일들이다. 정보를 사람 수준 이상으로 기계가 처리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기계는 우리를 편하게 해주지만 우리가 일할 기회 또한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공지능 관련 산업에만 부가가치가 몰리면 소득 재분배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빈부격차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1,2차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가 되리라는 것은 말하나 마나다.
머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인지자동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금 유망한 직업이 미래에도 유망하리란 보장은 없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인간은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 '창의성'이란 단어는 자연스럽게 재정의된다. '창의'의 개념도 바뀌어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찾을 때야 비로소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과 디스토피아
인지자동화로 겁을 준 저자는 더 나아가 '강한 인공지능' 개념까지 소개한다. <아이로봇>의 로봇들같이 물리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하고 데이터 입력도 스스로 하는 '사고하는' 기계들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한다. <아이로봇>의 로봇들이 그랬듯 입력된 원칙들만으로 이들을 제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선의 효율을 추구하는 기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도 언젠가 분명 의문부호를 던질 것이다. '과연 인간은 지구에 필요한 존재인가?' 이 대답에 대해서 우리는 마냥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에너지와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스스로 내세운 원칙들조차 지켜지 못하고 싸움과 전쟁을 계속하는 인간이 좋게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직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오늘날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인간끼리 경쟁하는 일도 벅차고 힘든데 '힘듬'을 모르는 기계와의 경쟁은 상상조차 힘들다. 더 비극적이게는 로봇과의 경쟁이 아니라 기계의 작업이 불필요한 소수의 일들을 두고 인간들이 피 터지게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말그대로 디스토피아다.
하지만 먼 후일의 위험을 미리 겁내 기계의 개발을 멈출 수는 없다. 기계와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암 치료 분야와 같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던 영역들에게서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왔으니 최선의 시나리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여지가 생겼다. 혹시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지구의 '알파'가 되더라도 인간과의 공존을 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지금부터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정말 추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기계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을 때 기계도 인류를 버릴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