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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Lib May 08. 2017

유토피아의 건설 가능성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소설


500쪽에 가까운 여정 내내 치열함이 가득하다. 마지막까지 갈등이 완벽히 해결되지 않고 불씨의 씨앗, 희망의 씨앗 모두 남겨두었다. 나병,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현존의 공간, 소록도. 실제로 주요인물인 조원장, 황장로, 이기자, 주정수 모두 실존인물을 모티프로 하였다고 한다. 책 속의 핵심 사건인 간척사업역시 실제 사건이라고 한다. 현재 한센병은 조기 발견시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지만 과거에는 문둥병으로 불리며 투병자들은 강제로 소록도로 이송됐다. 전염성이 아주 약함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누명을 쓰고 피와 눈물의 역사를 지닌 소록도라는 공간은 지독한 음울함과 슬픔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극적인 공간을 이용하여 저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의 관계, '정치'에 대한 지극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학, 철학 서적보다 유토피아 또는 낙원 건설이라는 정치적 본질을 고민하는데 있어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선한의지를 가진 지도자는 과연 그 신념만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 소설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 차이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서로 원하는 '낙원'이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지도자가 계획했던대로 피지배자들을 위한 낙원을 완성하였더라도 그건 '당신'의 천국일뿐 피지배자들의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배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간극을 이해하지 않고 지배자가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할 때 큰 위험이 발생함에도 말이다. 지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센가 피지배자들은 그 꿈을 대리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야 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들의 천국 건설을 거부하는 무지 몽매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고 지배자들은 이들을 힘으로 제압했다.


그렇다면 지배자가 이끄는 구조는 무조건적으로 실패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이 소설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앞에서 밝혔듯 자신의 관념 속에 있는 하나의 천국(모델)이 수 많은 피지배자들의 관념과 근본적으로 같아질 수 없다. 그러나 모두의 이상향을 실현할 유토피아는 건설할 수 없다고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마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자는 수직적 관계 속에서 피지배자들의 꿈을 대리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에서 내려와 우선적으로 수평적인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관념과 이상향을 인정하고 모두가 각자 그 꿈을 나름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자유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자유 속에서 지도자도 그들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싹트고 신뢰는 곧 사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사랑으로 만드는 화합을 통해 변화가 만들어진다. 우리 모두의 천국은 관념 속의 완벽한 공간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지속가능한 공간이다. 공동체의 개개인이 존중받고 스스로의 부자유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속에서 천국 또한 꿈꿀 수 있다. 


위 내용은 이 책의 주제의식에 대한 주관적 이해일 뿐이다. 쓰고 보니 오히려 유토피아보다도 더 유토피아같은 공간의 탄생을 바란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다양성이 무시된 획일적인 공간은 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통찰은 이 책이 왜 여전히 읽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통하라, 이해하라, 사랑하라'와 같은 추상적인 행동지침들을 제시하는 경영서적들보다 훨씬 구체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고어체가 남아있어 오늘날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절들이 있지만 내용이 너무 탄탄하고 인물들이 정말 매력적이어서 읽는 재미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리더를 꿈꾸는 이에게, 그리고 정치에 관심있는 이에게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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