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이 아이돌 연습실에 모인 이유 (2)

아재 F의 정면승부

by 글쟁이 결변

우리의 팀명은 없다. 정한 적도 없고, 정할 예정도 없다. 다만, 여기선 대학 새내기 때 만나 이젠 정말 사회 경력을 꽤 먹은 아저씨가 됐기에 '아조씨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ㅎㅎ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우리(이하 "아조씨들")를 멤버별로 소개한다고 하면 우습겠지만, 몰입감(독자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몰입감 걱정이 맞나..?)을 위해 앞으로 각각의 아조씨들을 아재 A부터 아재 F로 부르기로 하자. 30대 초반 아조씨 6명의 간단한 프로필을 아래와 같다.


아재 A : 9x년생 , 이 모임의 주인공이자 결혼식의 신랑이고 과묵하지만 믿음직스러운 사랑꾼인 신랑

아재 B : 9x년생, , 이 모임의 맏형이자 동아리 선배이며 정 많은 흥부자인, 보험계리사

아재 C : 9x년생,, 기존 안무를 따서 가르쳐주는 이 모임의 실질적 리더(과거에도 그랬다)인, 공무원

아재 D : 9x년생, , 만능 스포츠맨으로 열정이 넘치고 다재다능한, 시나리오 작가 겸 N잡러

아재 E : 9x년생, 나이상으론 A,F와 동갑이지만 동아리 1년 후배, 그렇지만 최근까지 춤을 취미로 쭉 해온 최고의 실력자인, 자동차기업 회사원

아재 F : 9x년생, 최악의 춤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최고의 걱정거리이지만 그나마 애는 성실한, 변호사


아조씨들이 축가도 아니고 축무를 떠 올리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1편에서 아조씨들이 같은 동아리 출신이라고 말했는데, 그 동아리가 사실 대학교 '춤 동아리' 이기 때문이다. '아 뭐야?' 춤 동아리 하던 사람이 축무를 준비한다고 하니 무슨 대단한 일이겠거니 싶겠지만... 실상은 정말 그렇지 않다. 춤 동아리라고 해서 엄청난 실력자들이 모였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아리는 대학교 중앙 동아리임에도 면접이 아니라 자원한 사람들 대상으로만 동아리원을 뽑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민주적인 멤버 선발방식이 있나 싶다(대신 혹독한 방학 연습을 모두 마친 사람만 정회원이 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선발방식의 최대 수혜자는 아재 F다).


그러다보니 우리 실력은 일반인(?)보다 낫겠지만 그 격차가 크지 않은, 그런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0년 사이 춤을 추는 인구도 늘어나 춤에 대한 기준도 늘어났고, 요즘 대학 동아리 수준은 꽤나 뛰어난 걸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은 화려한 요즘 대학교 춤 동아리의 그것과는 분명 좀 다르다. 즉, 이번 축무 준비는 아조씨들에게 큰 도전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조씨들이 춤 동아리 출신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물론 아조씨들 중에서도 댄싱머신이라고 불릴 법한 뛰어난 사람도 있긴 한데, 그 아재마저도 남들 앞에서 혼자 춤 출 정도로 패기가 충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나마 체력만은 대단했던 아조씨들의 몸 상태는 사회생활 하다 보니 이제는 이미 녹이 슨게 슬슬 티가 나고 있었다.


그럼 필자는 위 중에서 누구냐고? 짐작했겠지만, 가장 혹독하게 소개를 했던 아조씨 F이다.

스스로에게만 혹독하게 평가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저 소개는 정말 얌전하게 적은 편이다.

예전에도 글로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아재 F의 춤 동아리 경험은 말 그대로 '극기 훈련' 그 자체였다.

상상해보자. 나름 학생회장을 했을 만큼 인싸재질에, 리더쉽이 좀 있던 F는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만 있었다.


하지만 춤 동아리서는 신세가 달랐다. 단체 춤 공연, 특히 남자 무대는 군무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기에 독보적으로 못하던 아재 F는 아무래도 연습에 방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아재 F는 그가 없어도 그만이고 오히려 그가 없길 누군가는 바라고 있을 것만 같은 조직에서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멘탈이 무던한 아재 F에게도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대신 아재 F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아재 F의 끈기는 확실히 뛰어나다. 진짜 진짜 끈질긴 사람이다. 그래서 1곡을 준비할 때 남들은 3일을 준비한다면, F는 6일, 심지어는 30일(아니 될 때까지)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연습을 했다.


그 시절에, 아재 F는 춤(예술)과 공부는 완전히 다르단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공부는 남들이 3일 준비할 때, 30일 하면 매우 매우 높은 확률로 그에 비례하는 보상이 따라온다. 그런데, 춤(예술)은 F가 아무리 10일을 준비했어도 3시간 준비한 다른 동아리원 보다 잘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예술에는 끈기로는 되지 않는 재능의 영역이 확실히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재능있는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0일을 준비해서 외운 재능없는 사람이 재능 있는 천재의 3시간의 느낌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블랙핑크 리사가 춤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래도 다행히 아재 F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 소질이 없는 것을 알기에 불평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잘 했으며, 열심히 연습했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재 A~ E를 비롯한 동아리원들은 그런 아재 F를 배척하지 않고 존중해줬다(서씨인 아재 F의 당시 별명은 서+ 장그래 = 서그래 였다).


아재 F는 춤은 잘 못 따라갔지만, 자신이 못하는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은 댓가로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조금 배울 수 있었고, 귀한 친구들을 얻었다. 귀한 친구들 중 이번에 결혼하는 아재 A는 단 한 번도 아재 F의 허접한 실력을 비난하지 않았던, 속이 깊고 의리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아재 F는 아재 A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들의 '축무 농담'을 꺼냈을 때, 두렵지만 함께하고 싶었다. 그건 더 이상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리의 문제, 애정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재 F는 결심했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자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A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하자고.'




그런 와중에 단톡방에 슬슬 우리가 연습하게 될 곡들의 후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아재 A는 아이돌들이 연습할 것만 같은 안무 연습실을 대관하기에 이르렀다.




아조씨들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재밌으면 구독하시고 또 찾아와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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