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아프리카여행

언젠가의너에게

by 굥굥

어쩌면 10년째 세계여행 중일지도.
이번에 예은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11년이고, 예은과 알게 된 지도 3년이 되었다는 게 놀랍다.

휴학 후 유럽, 첫 번째 퇴사 후 남미, 두 번째 퇴사 후 북미,
세 번째 퇴사 후에 스페인에 이어 이번에는 호주와 아프리카로 떠난다.
첫 여행 때 떠나기 싫어서 밤을 지새우고 엉엉 울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렇다.
친구들이 가서 잘 놀 거면서 엄살 부리지 말라고 할 정도로 늘 내 이면은 그렇다.
보여줄 수 있는 내 모습과 보이는 내 모습 사이에는 언제나 미묘한 균열이 있다.

갑작스러운 퇴사에 이미 결정되어 있던 호주와 인도 사이에 아프리카를 끼워버렸다.
멍하게 어영부영 한 달 보낼 바에는 차라리 도장 깨기라도 마저하는 거 괜찮잖아.
급하게 결정한 만큼 비행기도 5일 전에 끊었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 게 없다.
끝장나게 잘 놀기.
정말 끝이 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최근 독서모임에서 '나'에 대한 주제로 몇 번 모임을 개최했는데 그때마다 늘 하는 말 중에 '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하면 후회될만한 게 있나요?'였다.
' 그럼 그걸 하세요. '
삶은 유한하다.

이 나이에 또 한 달 넘는 여행을 이렇게 훌쩍 떠날 줄을 몰랐는데,
여전히 가기 싫다며 징징거리지만 내심 이렇게 큰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겁 많고 울기만 하던 애가, 어쨌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정은 이제 좀 자제해줬으면 싶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를 이보다 잘 수식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싶다.

진영언니와 이야기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달라지는 부분이 있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짧은 여행도 그렇지만, 긴 여행만 꼽았을 때

첫 번째 여행 이후에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에게 낯설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인 것만 같았다. 새로운 사람과 무수한 만남과 기약 없는 헤어짐을 처음 겪어보기도 했다. 개중 대부분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뼈 시린 외로움을 남겨줬다. 그때부터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구나 자각했다. 그럼에도 반깁스를 하고 꾸역꾸역 떠난 여행은 무언가를 할 때 망설임을 조금 덜어줬다.

두 번째 남미 여행은 나조차 갈피를 잡지 못할 때였다. 스물여섯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였고, 또 발목을 다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일주일 뒤에 파타고니아를 오르며, 진짜 의지로 못할 게 없게 느껴졌더랬다. 알고 있던 나를 다시 많이 알게 되었고, 자라지 않는 내가 싫기도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을 맞았다. [ 스물셋의 여행이 스물일곱쯤 되면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열아홉의 느낌이라면 스물여섯의 여행은 스물일곱쯤이 어른은 개뿔이라는 느낌 ] 스물일곱의 내가 남긴 글인데, 서른넷도 여전히 어른은 개뿔이다.

그렇게 인생은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한 채 캐나다를 가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조각처럼 이어져서 간 캐나다에서 진짜 많이도 울었고, 하루하루 지쳐갔다. 돌아가는 것과 돌아가지 않는 것의 기로에서 갈피를 잡지도 못했고, 주변도 많이 괴롭혔다. 버티는 것도, 버티지 않는 것도 용기라는 걸 알았다. 포기가 회피가 아닌 다음으로 나아가는 계단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는 내가 결정했지만 그때의 말들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었겠지. 결국 나는 한국에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 코로나가 있을 줄은 몰랐지ㅋㅋㅋ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쩌다 스페인. 막연하게 다음에, 를 기약한 곳까지 돌아오는데 10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기회가 올 때마다 잡으려고 해도 쉬이 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포기하는 이유가 나 자신이 되진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10년 동안 세상도 많이 바뀌었고, 나도 많이 바뀌었다. 같은 유럽이라 그런가, 10년이라는 세월 안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는 그렇기 때문에 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겠구나. 삶이 여유로워진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경험이 쌓아서 만든 나에 대해서 새삼 실감했다.

나에게 여행이란, 결국 책갈피와도 같아서 끼워둬야 기억할 수 있는 페이지인 것이다.
호주를 여행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호주라서가 아니라, 최근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구나 싶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이후 나는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삶에는 여러 방향의 길이 있고 우리는 끝없이 변한다.

스물셋의, 스물여섯의, 스물여덟을 지나 서른둘과 서른넷의 내가 언젠가의 나에게.
너 그때도 되게 불안해하고, 겁나는 것도 많았어.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언제나 너를 만들어 냈잖아.
조심히 다녀와.
다녀와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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