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내 글은 자주 그렇게 시작한다. 새로운 것은 무섭고 두렵다고.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어린아이처럼 자주 내일이 두근거려 잠 못 들곤 했다. 그것은 달가운 설렘이 아닌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이었다.
"행복은 늘 불안해."
안정적인 내가 오래되면 그 가운데 불안이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올해 퍽 안정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 올해 초까지도 필요시약을 가방에 잔뜩 넣어 다니곤 했다.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숨이 가빠오기도 했고, 나를 끌어안고도 모자라 파고들었다. 사실 올해 쓰기 시작한 일기를 되짚어 보면 자주 잠겨 들었다. 적당한 아픔은 현실을 인지시키고, 현실을 지우기 위해 적당한 쾌락을 추구했다. 떠나가는 것들은 여전히 놓지 못했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 행복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늘 알 수 없고 두렵다.
"기분이 구겨진 지폐 같아."
어쩌면 세탁기에 넣고 돌려졌을지도 모를, 구겨지고 너덜너덜한, 그 본질이 돈이라도 나는 지금 그래. 민영은 자주 내 엉망진창 모호한 표현에 공감해 준다. 태완은 그렇다면 오만 원짜리라고 말했다. 민영과는 이런 소소함을 나누지 못할 뻔했고, 태완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계절을 돌아 그 고된 마음을 시답잖게 나눌 수 있다.
"네 글에는 넘치다 결국 흘러나온 감정들이 담기는 것 같아. 그래서 난 네 글 좋아해."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송이는 그렇게 말했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하루하루, 미세하게 변하는 감정들을 여행과 함께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해 여행하는 내내 휴대폰으로 빼곡히 타이핑 한 글을 공유했다. 그 글을 읽은 몇몇이 지나고 나서 글을 통해 내가 달라지고 있는 게 보였다고 했다. 여행에서 만난 석영은 내가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글을 써보라고 했다. 이미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며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흘러가는 것을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 사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나는 글을 썼다.
변화는 갑작스럽지만 또 서서히 젖어든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 영원할 것 같은 것들이 바스러지기도, 형태를 갖추지 않은 것들이 내게 큰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습을 바꾸었다고 해서 그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애정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 하나의 형태인 것처럼.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좇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너의 모든 길이 꽃길일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걸음이 꽃길이기를 그리고 그 꽃길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너에게 소중한 인연들이기를."
스무 살, 엄마는 나를 새로운 길로 등 떠밀었다. 여행을 시작했고, 여행을 통해 많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낯선 환경,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보다도 한국에서 자라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얼얼함이 남아있어서 아직 나는 여행을 떠난다. 변화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 변화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이 항상 반짝거리지는 않겠지만, 걸음을 나서지 않으면 나는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많은 임팩트를 남긴다.
나는 아직 나를 어필하는 것이 어색하다. 세 번째 주제 글을 쓸 때,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에 예은은,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도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어 멋지죠"라고 답했다. 그는 틀렸다. 나는 매일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도 너무 겁났다.
"나는 그때 너무 행복해서 오늘 만나는 게 조금 걱정되기도 했어, 근데."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한 딱 하루를 함께했다. 마냥 행복했던 그곳과 달리 이곳은 현실이니깐. 우리는 결국 현실을 살아간다. 그날도 변화와 안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왜 우리의 하루가 행복이었던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 조심스럽게 한 말에 그가 공감해 주어 행복이 덧칠되었다.
올해 초 2여 년 만에 독대한 준하는, 사실 만나기 좀 싫었다.
"우리는 10중 9가 맞지 않는데 맞는 1이 너무 좋았고, 때론 그 1 때문에 9도 좋았어."
우리는 2년 전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눴고 매일같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의 간극을 매우기 위해 자주 소리 질렀다. 그런 우리가 새삼 애정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계속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변하는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새로운 형태로 찾아오는 내일이 어떤 칼날을 숨기고 있을지 늘 두렵다. 변하지 않는 오늘은 나를 독촉한다. 우리가 바꾼 오늘이, 또 변화하지 않은 하루가 언젠가 나를 위로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