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너에게
시절인연.
단어에도 유행이 있고 마음에도 유행이 있다.
나이가 들면 많이들 무뎌진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상처받기 싫어서, 겁이 생겨서 하는 변명이겠다.
그 탓에 굳이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까지구나 느껴지는 인연이 있다.
숙제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인연.
예전에는 그렇게 흩어지는 것들이 애틋해 부여잡았지만 시절이 지난 인연은 쉬이 붙지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렇게 하나하나 힘을 빼나 가는 과정이겠다.
모든 순간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남을 수 있었던 무수한 타인들.
그래, 모든 관계는 타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에도 유효성이 있을까.
가족으로 정의된 우리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집착하는 나인데, 유독 동생들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존재라는 오만이겠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길 원했다.
결국 나중에는 가족이라는,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남는 순간이 올 테고, 그때 우리가 조금 더 돈독하게 서로를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람이었다.
그런 의도를 알고 있지만, 사실 만나는 것도 귀찮아서 모임이 주최된 적은 많지 않다.
그런 우리에게 여행이라니.
우리의 성격과, 그리고 이제껏과 비슷하게 여행의 준비부터 과정까지 흘러갔다.
그래, 남매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항상 이랬지.
향상성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섭다.
우리가 항상 우리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져서, 나는 저들이 당연히 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고, 그것은 어쩌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막내 같은 막내는 이미 내 키를 훌쩍 넘은 지 10년이 넘고, 군대를 다녀와 이제는 사회초년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른들이 항상 우리를 볼 때마다 '네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됐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나이가 됐다.
우리는 더 나이가 들 것이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있기보다는 그 이외의 내 세상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사실 이미 상당 부분 그렇고, 어쩌면 그 안에서 새로운 울타리가 생기겠지.
매번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치를 떨면서도 결국 가는 이유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있어서인데,
동생들과의 가족이라는 이름은 왜 당연히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엄마가 심어준 장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멀었을지도 모르겠음을 새삼 실감했다.
어쩌면 시절이 될 수도 없었던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지가 25년이다.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당연하지가 않다.
" 그렇게 말해서 서운했어. "
라고 말한 내 말에 승현이는 15줄이 넘는 카톡을 보내왔다. 승우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불평을 내심 토했고, 승현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했으며, 승우는 그저 다 좋았단다.
불만을 토해도 부탁을 들어주고, 내 괴롭힘도 순순히 받아준다. 쇼핑에 왜 따라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승우는 형이랑 누나가 챙겨줄 텐데,라고 답했고 당연히 그랬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고, 그럼에도 가족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불만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축할지언정 우리는 서로에게 애정이겠다.
모든 관계는 당연하지 않다.
인연의 끝이란 것은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우리를 비롯해 그 모두가 여전히 나의 시작이고, 끝일 것이다.
살아가는 우리가 책장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마지막 장을 감히 이야기하겠는가.
유행이 돌듯 마음이 다시 돌아 우리라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그 순간순간에 그리고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쟤들이랑도 좀 더 잘 지내봐야겠다.
근데 우리 이만하면 잘 지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