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30년이 되는 해를 앞두고 이제 막 50대의 중반에 들어선 동갑내기 우리 부부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주변에서 아직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우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또래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가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할 무렵이라 학비는 해결했다 하더라도 능력이 되면 자녀의 집을 사 주거나 전세자금이라도 보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젊었을 때 보다 더욱 허리띠를 조르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집값이 턱없이 비싸 자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두 채씩 아파트를 사둬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투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능력껏 돈을 벌어 아파트를 사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범한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길어진 노후준비에 대해 걱정이 많다. 화려한 노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궁색하지 않은 노인이 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팍팍 주면서 외면받지 않는 노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무모해 보이겠는가? 한겨울에 개미의 집을 찾아왔던 베짱이의 이야기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좀 다르다. 집값은 이미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모두들 집을 사놓는다면 집 값은 점점 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후손들의 주거권을 빼앗는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선 더욱 그렇다.
결혼 초에 시아버님께서 “집은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라고 하셨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신 분이지만 그 한마디 가르침에 난 지금까지 아버님을 존경한다. 아파트 청약한 번 못해보고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집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의 대상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은 삶의 터전으로서만 가치를 지녀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건강한 주택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오히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 자녀나 손주들에게 외면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으로 산 환심은 갈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돈이 떨어지면 끝이 난다. 심지어 돈 많은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돈이 많은 집 안일 수록 자녀들이 재산으로 싸우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은 우리보다 아버님과 더 자주 통화하고 선물도 잘 챙긴다. 그것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다. 아버님이 주시는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도 딱 아버님 정도의 인기를 누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중년의 나이에 장기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대게 아이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 이번엔 부모님이 문제다. 여행을 계획할 당시 시골엔 홀로 되신 시아버님이 계시고 나는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는 10년 전 자궁 말기암을 극복했었는데 우리의 여행 계획이 구체적으로 세워질 때쯤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몇 년 전부터 함께 살게 된 동생과 멀리 사는 언니가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으나 엄마의 병세는 쉽게 호전되지 못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가 여행을 가기로 한 해가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친정 형제자매들에게 담담히 우리의 장기 세계여행 계획을 말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엄마 때문에 여행을 못 가거나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면 엄마를 사랑으로 대할 자신이 없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가장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정해진 기간이라도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2018년 우리가 여행 가기로 마음먹은 해 이른 봄에 엄마는 떠나셨다. 우리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으셨다. 엄마는 일제 강점과 6.25를 겪은 분이다. 이북이 고향이었던 엄마는 16세의 나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피난민이 되어 기차 꼭대기에 매달리기도 했었다. 엄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난 어릴 때부터 가여운 엄마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같이 살아보니 엄마는 늙을수록 점점 더 대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갔다. 젊은 시절의 고통 속에서 생겨난 피해의식이 너무 깊었다. 엄마를 모시며 힘든 일이 너무 많았고 다시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한 엄마의 마음을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만든 사람은 상담을 배운 적도 없는 언니였다. 언니는 멀리 살지만 매일 전화하고 자주 찾아오며 엄마를 안아드렸다. 그런 적극적인 사랑을 받으며 엄마 마음속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동생과 언니의 극진한 대접에 비해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늘 모자랐지만 나도 점점 엄마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엄마를 두고 떠나겠다는 이기적인 결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길어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삶을 잘 정리하고 새로 맞이하는 두 번째의 인생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첫 번째는 얼떨결에 주어진 인생이었다면 두 번째는 내가 누구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되었기에 적극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계획할 수 있다. 부모나 자식에 얽매인 삶이 아닌 나 자신이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럼 언제 그것을 하는 것이 좋은가? 무슨 일이든 시작단계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젊을 때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돈은 언제든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 시간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세계여행은 우리 부부가 새로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체질로 바꾸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1년 간의 여행 자금과 돌아와서 1년 정도 생활비를 모을 수 있는 때, 계산해 보니 결혼 30주년 되는 해다. 늘 돈벌이를 하며 바쁘게 살아왔던 내가 하루 종일 자유롭게 노는 일을 1년 넘게 해 보면 어떻게 될까?
세계여행에 대한 계획이 있기 몇 년 전부터 난 일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었다. 일은 그냥 놔두면 점점 불어났고 나를 일 속에 파묻어 버려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없애버리곤 했다. 막연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다른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간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내겐 참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차게 많은 할 일에 싸여 지내 온 내가 막상 스케줄이 헐거워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쓰느라 생각해보면 아직도 더 많은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진정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있는지 슬금슬금 의문이 들었다. 그럴 때 아들의 조언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엄마, '쓸 데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야 말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 있는 사치에요"
생각해 보자. 해야 할 일들이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 일로부터 벗어날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마음을 빼앗긴다면 무엇을 해도 행복할 수 없다. 세계여행 계획은 자칫 표류할 수 있는 내게 작은 좌표가 되었지만 여행을 떠나기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노는 체질로 만드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재미를 찾는 일. 그래서 난 스스로 재미 탐험가가 되기로 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재미가 목적인 놀이다.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갑자기 마음이 훨씬 더 부자가 되는 느낌이다.
함께 살고 있는 당시 3학년이었던 조카 유빈이에게 새로 생긴 나의 직업에 대해서 말해주니 대뜸 물었다.
"이모, 그럼 월급이 얼마예요? “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렇지 직업이란 수입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답이 바로 나왔다.
"난 나를 고용했고 나는 나한테 우선 무료로 일해 주기로 했어... 하지만 만일 수입이 생긴다면 전액 나에게 다 주기로 했지. “
'나의 시간을 모두 내가 계획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거' 너무 멋지지 않은가?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할 때는 내가 수입이라는 함정에 빠져 서두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길어진 노후를 대비하라고 모두들 난리 법석이 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