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주년 선물 캠핑카 세계여행2

이동식 사무실은 캠핑카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캠핑카 여행을 결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으로 여행프로를 보던 남편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캠핑카를 사서 국내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럼 캠핑카를 사서 여행을 다녀오면 되잖아."


갑자기 캠핑카를 사자는 내 말에 남편은 너무 황당해했다. 당시에 우리는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니 가장 멀리 있고 가기 힘든 코스를 가자는 것이 나의 의견이었다. 쉽지 않은 여행코스 때문에 어렵게 남미 여행을 결정한 뒤 남편은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거의 몇 개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별생각 없이 툭툭 던진 말로 남편이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은 '캠핑카 여행이라면 시베리아 횡단을 해서 유럽을 여행하는 코스가 합리적이야'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우리는 캠핑카 여행이야말로 젊은 시절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운 여행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우린 갑자기 캠핑카로 시베리아 횡단이란 대단한(?) 여정을 결정하게 되었다.

다 자란 아이들이 너무 위험하다며 철없는 부모를 걱정하고 만류했지만 우리 부부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발품을 팔아가며 캠핑카 전시장이며 공장들을 탐색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1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캠핑카가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계약 바로 직전 남편이 어느 블로그의 글을 통해 우리가 사기로 한 캠핑카가 이동식 사무실로 승인된 것이어서 해외 반출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 되었다. 판매 담당자가 얼마 전에도 세계여행을 할 거라며 차를 사가신 분이 있다고 해서 그 고객에게도 연락해 봐 달라고 부탁하고 우리도 관련 법을 직접 찾아보고 선박회사에 알아보았다. 결과는 캠핑카로 승인된 차 만이 해외 반출이 허가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담당자 말만 듣고 계약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캠핑카 아톰을 만나던 날

우여곡절 끝에 15년 된 중고 캠핑카를 사던 날 우리 부부에겐 거액의 대금이었지만 한 푼도 깎지 않았다. 소중한 식구를 맞이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캠핑카를 만나기 전부터 우리는 캠핑카의 이름에 대하여 이것저것 생각했었다. 광민 씨는 내 이름의 ‘맑을 숙’ 자를 따서 맑음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했었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과 우리의 무사한 여행을 위한 기원을 담고 싶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좋은 이름을 짓고 싶어 몇 날 몇 날 며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기로 결정한 캠핑카에 아톰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그냥 아톰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영화 주인공 아톰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였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태양에 '알약’을 가지고 떠나던 마지막 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 시절 그 장면을 보며 많이 울었고 몇 년 동안 기억이 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집에 와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톰은 원자’라는 의미이며 , 원자폭탄으로 전쟁에 진 뒤 원자폭탄을 개발하고자 하는 일본인의 열망이 그 이름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지구를 위해 태양을 향해 돌진하던 아톰이 가미가제를 미화한 것일 수 있다고도 했다. 아이들의 해석이 그럴싸하다. 내 어린 시절 사랑했던 아톰의 실체가 그러하다면 너무도 슬프고 끔찍했다. 아톰이란 이름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신욕을 하다가 아톰의 뒷이야기가 저절로 떠올랐다.


아톰의 뒷 이야기

아톰은 ‘알약’을 가지고 태양을 향해 갔으나 태양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고, 이대로 가면 자신이 아무 의미도 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 것인데 지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의미 없는 희생양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아톰은 지구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지구에 돌아온 아톰은 살아있는 동안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아름다운 지구를 마음껏 누비는 자동차가 되기를 바랐다. 그중에서도 멋진 캠핑카가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톰은 나이를 먹어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들기 직전 중고 매매시장으로 나오게 되고 자신의 기계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인간 중 한 명이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던 어린 소녀였다는 것을 알고 아톰은 행복한 여행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별명 바람(남편)과 구름(나)을 넣어 아톰의 주제가를 개사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바람과 구름 싣고 달려라 힘차게 달려라

우주소년 아톰 캠핑카 되어 돌아왔다.

오늘은 어딜 갈까? 또 내일은 어디서 머물까?

아톰과 함께라면 어디서나 행복한 여행~~~


자동차 매매상에게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로 한 우리의 계획을 말하며 자동의 안전을 위해 사전에 필요한 것을 최대한 조언해 주길 당부했다. 매매상은 가스레인지와 전자랜지, 온수기 등을 추가로 설치해 주기로 했고 여유 분 타이어도 장착해 주기로 했다. 이로써 우린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새 식구 캠핑카 아톰을 맞이했다. 새 차는 아니지만 꾀 말끔하고 우리처럼 나이를 먹은 아톰에게 왠지 정이 갔다.


좌충우돌 중고 캠핑카 아톰

며칠 후 남편이 캠핑카를 처음 집으로 가져오던 날 남편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자동차 윗 쪽 침대 변환이 어려운 문제부터 결정적 문제점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크고 작은 문제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나타났고 캠핑카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갑자기 서기도 했고, 차가 높아서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다 사고가 나기도 했다. 가구가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환불까지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 전에 이런 일을 미리 겪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남편은 여행 바로 직전까지 회사에 다니느라 시간이 없는 중에도 조금씩 틈을 내어 리모델링을 하다시피 차를 손보았고, 주말엔 공장을 찾아 한꺼번에 며칠씩 걸려 수리를 하기도 했다. 차 안 구석구석 수십 군데 남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지자 아톰은 점점 우리 가족이 되어갔다. 나중엔 아톰에게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미리 고칠 수 있게 도와준다며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매매상을 제외하고 자동차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우리 계획을 들을 때마다 새 차도 어려운데 15년 된 중고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한다는 계획에 대해 걱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차 가족이 되어가는 아톰이 믿음직스러워졌다.


결혼 30주년 선물

신혼 때부터 우린 객식구들이 많았다. 동네에 도둑이 들어 집집마다 털렸던 때가 있었는데 아예 문이 열린 우리 집엔 도둑도 들어오지 못했다. 현관에 가득한 신발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많은 식구들과 어울린 생활이 불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신기하게 우리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생각해 보면 우린 통장의 잔고 대신 이런 행복들을 많이 저금해 놓았던 것 같다.


세계여행은 우리 부부가 신혼 초부터 꿈꿔왔던 일이고, 30년간 열심히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남편이 사기로 당한 돈을 얼마 전에야 다 갚았고, 15년 된 중고 캠핑카와 1년 동안의 여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당분간 살아갈 수 있는 최소 생계비가 마련되었을 뿐이다. 전혀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이 불안을 설렘이라 여기고 싶다. 여행이란 원래 낯선 불안을 설렘으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특히 캠핑카가 마련되기까지 겪은 수많은 우여곡절들은 우리의 긴 여행에 자양분이 되었다.


캠핑카에 넣을 살림살이를 준비하며 우리는 다시 신혼의 기분으로 돌아갔다. 알록달록한 수저세트도 단 두벌. 꽃무늬 테이블 보에 예쁜 쿠션들까지. 이젠 출발 준비 완료!


그러나 세상일은 언제나 쉽지 않은 법 산 넘고 물 건널 일들이 출발을 앞둔 우리에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을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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