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 가' 라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해도 앞으로 내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새로 알게 된 것 중 대부분의 것들이 기억 저너머로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들은 다르다. 그것은 또 다른 호기심으로 이어져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더 많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내려 하고 , 그 과정에서 생긴 자발적 질문들은 더 확고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고 그것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남녀 상열지사를 넘어 잔혹하거나 부도덕한 내용으로 뒤덮인 신화를 아이들에게 마구 읽혀대는 사회현상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대학에서 연극을 할 때 그리스 비극은 우리 문화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 것도 잘 알지 못하면서 '원형'을 찾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었다.)
캠핑카 여행에선 박물관에서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대부분의 경우 전시물 앞에서 충분히 머무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조금씩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관심과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탈리아를 지나 그리스에 다다르자 조각상들의 표정이 보였고, 기원전의 의생활이나 헤어스타일이 현대적이라는 게 너무 놀랍게 다가왔다. 분명 이전에도 본 것들이었을 텐데 그땐 '옛날 것'이라는 선입견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더욱이 그리스는 마침 비수기라 개장 시간은 좀 짧아졌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박물관 개장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면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설명문을 자세히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좀 힘들지만 비슷한 단어들이 사용될 테니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덕분에 광민이 날 기다리느라 좀 힘들어했다.) 이해력이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시간이 쌓이면서 그리스의 아테네에 다다르자 이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약간의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테네에서 생긴 질문
제우스를 모시는 신전은 제우스 신전이라 하는데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신전의 이름은 왜 파르테논 신전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파르테논은 '처녀'를 뜻하는 말이다. 아테나 파르테노스는 처녀 아테나 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신은 '처녀'인 상태를 성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동정녀 마리아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무지했었기 때문에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의 신을 모셨던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테네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라는 설명을 읽고 궁금증이 시작되었다. 신기한 것은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함 때문에 남자 신을 떠올렸었는데 파르테논이란 단어가 처녀 또는 여성과 관련된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새로 알아낸 사실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빌견했고, 여신의 처녀성을 성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새롭다. 신중의 신제우스는 많은 부인들과 자식들을 두면서도 당당히 신들의 신으로 군림하는데 여신은 '처녀'라는 성스러움을 지녀야 한다는 것인가?
전쟁의 신 아테나는 전쟁터에 있었을까?
그리스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파르테노스는 전쟁의 여신이다. 지혜를 겸비한 아테나는 포세이돈을 이기고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거대한 기둥에 담아 신께 바쳤다. 그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져 2천 년을 이어왔고 그동안 신전을 받드는 사람들은 신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과연 그런가?
파르테논은 신전으로 지어진지 2천 년 만에 중세 로마에 와서 성당으로 개조되고 다시 오스만의 침략으로 모스크로 바뀌며 그들의 화약창고로 쓰이다 베네치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험란한 역사 속에서 12미터나 되었다던 아테나 파르테노스 여신상도 지금 여기에 없다. 지혜와 전쟁의 신이었던 아테나의 뒤를 이어 이 신전의 주인들이 계속 바뀌었지만 결국 아무도 이 신전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전능한 신이 전쟁터에 없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의 멋진 예술작품 '아테네 박물관'
아테네 거리는 그래피틱으로 얼룩진 노후된 건물들이 많다. 한눈에 보아도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돼 보인다. 그리스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 박물관이 '삐까뻔쩍'하다. 박물관은 그 자체로도 예술품으로 보인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중요한 문화재들을 영국이 가져가서 아직도 더 잘 보존되야한다는 논리로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스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훌륭한 시설의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만났을 때도 생각한 것인데 문화재는 원래 자기의 자리에 다시 돌려보내 졌으면 좋겠다.
아테네의 발자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