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왜 코린토스에 편지를 썼나.

2018년 12월 12일

부자들의 도시

코린토스 박물관 앞에 수많은 머리 없는 조각상이 내 눈길을 잡는다. 이건 뭐지?

코린토스의 부자들은 문패 대신 자신의 모습을 조각하여 문 앞에 세워놓았다고 한다. 만드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자 먼저 몸을 만들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머리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부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머리 없는 조각상을 미리 만들어놔야 했을까? 코린토스가 얼마나 부유한 도시였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로마 황제들 옥타비아누스 시이저, 네로의 두상과 조각상이 반갑다. 왠지 아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게다가 친근한 이솝우화의 여우와 포도의 장면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솝이 코린토스 출신이라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그런데 여우가 포도를 먹고 있다. 내가 아는 우화에선 포도를 먹지 못하는데 신기하다.


그리고 눈에 띄는 스핑크스, 스핑크스 하면 이집트가 떠올랐는데 원래 그리스 신화가 원조라고. 이후에 반인 반수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의 스핑크스는 전쟁, 경기와 관련된 승리의 여신 니케이다. 고린 토스의 영원한 승리를 위해 니케 여신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날개를 잘라냈었다가 후대에 다시 붙였다고 하는데 날개에 금이 간 흔적이 보인다.


한 편에는 인체의 부분들이 보인다. 의수나 의족 같기도 한데 성기 모양들도 많이 있다. 그 당시 의술도 상당히 발전했었던 코린토스에서는 병이 치유된 신체 부분을 점토로 만들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부자들은 더 오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이 의술 발전에 기여했으리라.


신화들의 무대

코린토스 유적지는 아크로 코린토스 산기슭에 있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 바람도 없어 겉옷을 벗어도 좋다. 그리스 어딜 가나 그러하듯이 이 곳에도 시원하게 쭉 뻗은 신전 기둥이 있다. 아폴론 신전이다. 기원전 6세 경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여기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 건축물이다. 아폴론 신전을 제외하면 다 로마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이 신전은 그 기둥이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 거대한 통 돌기둥을 자그마치 38개나 세웠다고 하니, 그리스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상상을 초월한다. 기단도 다른 곳은 하나씩인데 이 곳엔 네 개의 기단이 기둥을 받치고 있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참 간결하게 잘생긴 도리아식 기둥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짤막한 길이에 화려한 고린 토스 양식의 신전이 있다. 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화려했던 옛 보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초대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그의 누이 옥티비아를 위해 지은 신전이다. 옥타비아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남편 안토니우스를 빼앗긴 비운의 여인이었다. 머나먼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연적이었다니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고대 사람들의 지리적 스케일이 생각보다 넓고 크다.


20181212_104258.jpg
20181212_105523.jpg

바위로 이루어진 아크로 코린토스는 시시포스 신화의 무대이다. 코린토스에 나라를 세우기 위해 물이 필요하던 시시포스는 강의 신 아스 포스에게 딸 아이기나를 납치한 제우스의 행방을 말해 주는 대가로 페이 레네라는 샘물을 받는다. 이에 노한 제우스는 그에게 매일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내린다. 이 형벌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왜 그런 가혹한 벌을 받았는지는 몰랐다. 인간에게 필요한 물을 얻어내려고 위험을 감수했고, 끝내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된 시시포스를 위해 사람들은 왜 신전 하나도 짓지 않았을까?


유적지에 그 샘으로 만들었던 물 저장 시스템이 있었다. 뒤쪽으로는 원로나 귀족들이 사용했던 목욕탕 시설들이 보인다 이 샘은 근세까지도 이 지역의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고 한다. 푸른빛을 뜻하는 글루 케라는 또 다른 샘물도 있는데 여기엔 유명한 그리스의 비극적 영웅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바닷길이 발달하고 물이 풍요로운 이 곳은 그리스 신화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코린토스는 오이디푸스가 부모에게 버려진 뒤 청년까지 자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니 이야기꾼 이솝이 태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신화들이 작가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작품으로 다시 탄생했고 코린토스는 바로 그 주요 무대 중에 하나인 것이다.

20181212_111930.jpg
20181212_110619.jpg

바울의 편지 '고린도 전서'로 유명해진 성지

2천여 년 전에 조성된 대리석 바닥의 레카 이온 거리를 걸어 본다. 이 길은 레카 이온 항구까지 이어졌었다고 한다. 자동차 두 대가 넉넉히 지날 정도의 넓은 길이다. 양 쪽으로 시장과 상점들의 터가 보인다.


아고라의 중앙엔 '베마'라는 연단이 있는데 로마의 공무원들이 연설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당했던 사도바울도 이 연단에서 자신을 위한 변호를 했다고 한다. 그가 코린토스에 왔을 당시 이곳은 부와 향락의 도시였고 지금도 그때의 영향으로 코린토스 사람을 뜻하는 gorinthian은 관용적으로 사치하고 방탕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 복음을 전파하고자 코린티안들에게 보내는 편지 '고린도 전서'를 썼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로 유명한 고린도 전서 13장의 내용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유명하다.)


20181212_113213.jpg
20181212_111401.jpg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동족들인 유대인들에게 외면당한다. 사도바울이 자신들(유대인)의 율법을 위협하는 데다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어떤 민족보다도 로마에 흡수되려 하지 않았고 특권이 될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나 선생은 자동적으로 가질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의사나 선생 중에 유대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꺼이 로마 시민권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은 할아버지가 로마의 용병이어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인 신분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율법에 어긋나는 설교를 하는 바울을 민족 배신한 자로 낙인찍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 코린토에서 바울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바울도 예수처럼 동족 유대인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박해받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절경 코린토스 운하

아드리아해와 에게해의 두 바닷길을 가지고 있던 코린토스는 양쪽으로 배를 넘겨주는 사업이 번성했었다고 한다. 한 번 넘기는데 열흘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그 사이 선원들은 이 도시에서 먹고 마시며 아프로디테를 지키던 여사제들과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신전은 현재 성채만 남아있다.) 그런 향락의 분위기가 이 도시의 주신을 만든 건지 이 도시의 주신이 그런 향락을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인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될 만큼 부를 가질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강이나 바다를 메꿔서 땅을 만드는 것은 봤어도 바위를 뚫어 바닷길을 내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절벽을 다리로 이어놓았다. 고소공포증으로 힘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다리를 건넌다.

인간이 만들어낸 아찔한 절경. 몇 천 년에 걸쳐 무수한 생명들이 수장되었을 이 바닷길엔 요트가 한가롭게 지나다닌다.


20181212_123917.jpg
20181212_123247.jpg
20181212_124332.jpg

바위를 뚫어 바닷길을 만든 경이적인 역사에 해상과 물류의 중심지였던 코린토스. 아찔한 다리를 세 번이나 왕복했는데도 할 얘기가 아직도 많다며 절벽 사이 깊은 바다가 자꾸 내 발목을 잡아당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쟁터에 없던 전쟁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