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들판에 냉이는 벌써 세어지기 시작한다. 지천으로 널린 것을 맘껏 캐서 냉장고 가득 보관하고 싶을 만큼 맛있지만 욕심을 버렸다. 또 다른 먹거리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아직 어린 머위를 캐러 간다는 동네 분을 따라나섰다가 달래도 만나고 항가꾸도 예약해 두었다.(이 동네선 엉겅퀴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 집 놀고 있는 땅에 저절로 자란 갓이 먹음직스럽게 풍성한 것을 보고 동네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신다.
"물김치를 담으문 좋아."
"비료를 안하문 세서 못 못묵어."
"실가리(시래기,우거지) 하문 배추보다 맛나."
무엇보다 좀 있으면 너무 억세져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어떻게 해먹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빨리 갓을 수확해야 한다.
지난해 4월 황량한 집터에 갓을 몇 포기 옮겨 심어 놨었다. 싱싱하고 무성한잎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어느 날 유채꽃 닮은 노란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꽃들은 우리 부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날마다 환하게 피어났다. 그렇게 우리 정원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지만 동네 어른들은 먹지도 못할 갓을 심어 놨다고 웃으셨다. 그래서 난 우리 집 갓은 못 먹는 갓인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세서 못 먹는다는 말이었다. 우리 집에서 꽃을 피운 갓은 마음껏 씨를 퍼트려 정원에 가득하다. 이제 너무 늦기 전에 갓을 최대한 먹어야 한다.
아침 일찍 갓을 케려고 하는데 이웃 어르신이 보시고는 이슬이 마른 다음에 수확해야 한다고 하신다. (우리 집엔 동네 선생님들이 수시로 지나다니신다.)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일단 어른들이 시키는 데로 하는 게 좋다. 한두 포기만 수확했는데 양이 충분하다. 나머지 갓들은 예쁜 꽃밭을 이루겠지. 냉장고에 김치는 가득하니 수확해서 데쳐놓고 보기로 했다.
데쳐 놓은 물이 예쁜 보라색이고 데친 갓을 짜는데도 예쁜 보라 물이 뚝뚝. 먹어 보니 맛있다. 문득 해동시키고 있는 만두피가 생각났다. 맛있는 김치가 풍년이라 김치만두를 하려고 생각했는데 데쳐놓은 갓을 같이 사용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결과는 성공. 갓이 주인공 조연은 김치와 두부, 단역으론 표고버섯 가루, 액스트라는 울금 조금. 맛이 그만이다. 그대로도 맛있지만 인터넷에 오른 레시피를 참고해 돼지고기 조금 다져서 국간장 약간 넣고 볶아 더하니 점점 더 맛이 그럴듯해진다.
지난번 마트에서 냉동 만두 대신 만두피를 사자는 말에 광민이 반대했지만 사 오길 잘했다. 어제저녁 해동시키려고 냉동실에서 꺼낼 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 직접 만두소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민도 나만큼 만두를 좋아하지만 만두를 직접 만들자는 나의 제안에는 힘들거라며 한사코 반대했다.
너무 힘들면 다음번에 하기 싫을 것 같아서 가장 간단한 방법을 구상했다. 힘든 일 중 하나가 두부나 야채, 김치의 물기를 짜내는 것인데 표고 가루나 울금 가루를 더하면 그만큼 물기를 덜 짜내도 괜찮을 것이다. 두부를 짤 베주머니가 없었지만 기념품을 담았던 손바닥 만한 깜찍한 면주머니가 마침 눈에 띈다. 찜통에 만두가 붙지 않게 하는 깔개로는 면 손수건이면 될 것 같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촉감이 좋아서, 예뻐서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갖고 있기만 했는데 만두 찔 때 빛나는 활약을 했다.(지금 작은 주머니와 손수건이 드디어 자신의 몫을 해냈다는 당당한 모습으로 빨래 줄에 널려있다.)
엊그제 나물을 캐다가 허리에 조금 통증이 생기는 바람에 광민이 바깥일을 혼자 하고 있어서 만두소 준비를 최대한 혼자 했다.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다. 우리가 한두 번 먹을 양만큼만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쉽다.(한 번에 많은 양을 하는 것만 아니면 뭐든 별로 어렵지 않다.) 해동된 만두피로 광민과 만두를 빚는데 너무 행복하다. 우리 손 끝에서 예쁜 만두가 나온다. 모두 22개. 한 번에 찔 수 있는 최대 양 13개만 먹어도 둘이서 충분하다. 우리 입맛엔 딱인데 이웃과 나누기엔 양도 부족하고 좀 싱겁다.(다음번엔 김칫국물을 덜 짜내도 좋을 것 같다.) 9개는 냉동실에 우리의 비상식량으로
만두피를 다 썼지만 만두소는 아직 남았다. 어쩐다?
이런저런 궁리가 많았지만 밀가루와 계란에 김치를 좀 더하여 부침개로 변신. 이웃 사는 친구와 나눠 먹으니 김치 갓 만두에 이어 김치 갓전으로 완벽한 갓요리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