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공간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성 소피아 성당

내일부터 갑자기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는 예보에 조금이라도 남쪽행을 서두르기 위해 아침 일찍 근무(?)를 나서기로 했었다. 하지만 전 날 너무 힘들었고 비도 많이 와서 우리 부부는 게으르게 푹 쉬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하루 밤 사이게 컨디션이 달라지는 나이가 된 거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오렌지와 물도 챙겼다. 유적지 안에서는 물가가 비싸서 에너지 보충할 요깃거리를 미리 챙겨야 한다.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빵 굽는 가마터가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발견하지 못하여 성당 앞에서 샀는데 비싸고 맛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이 빵을 고고학 박물관 휴게실에서 맛있게 먹었다)


오늘같이 좋지 않은 날씨에도 소피아 성당 앞에는 역시나 줄이 길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이니 무조건 입장해야 한다. 그런데 입구 쪽에 줄을 서지도 않고 입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아보니 5일권을 가진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5일권을 산 보람을 가장 많이 느낀 순간이다.)


소피아 성당 안에서 가끔씩 눈에 띄는 이슬람의 표식들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곳이 전쟁터였음을 실감하게 되서일까? 다행히 터키 정부 수립 후 이제 서로의 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어느 쪽도 예배를 드릴수 없는 곳이 되었다.


여기엔 어떤 신이 존재할까?

사람들이 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이 공간을 신은 정말 좋아할까?


IMG_2736.jpg


20181225_121640.jpg
20181225_123722.jpg
20181225_121428.jpg
20181225_115607.jpg
20181225_115032.jpg



성당에는 로마 황제의 즉위 공간이 있었는데 작은 원들에 둘러싸인 커다란 중심원이 그곳이다. 이곳은 성당의 돔 중앙을 벗어난 측면 공간으로 성당의 중심 공간인 신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당의 중심 신의 공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은 우리 안에 있으므로.


다음은 이스탄불 마지막 코스 고고학 박물관. 광민은 힘든지 자주 앉아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기발하게 잘 발견한다. 돌하르방도 찾아냈다. 그리고 고대의 석관들에 나타난 조각들을 통해 인류가 신을 어떻게 형상화 해왔는지 흥미로운 해석을 들려준다.


석관들을 잘 보면 신은 동물에서 반인반수로 인간화되었고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어. 여러 시대를 거쳐 만들어진 석관들을 이렇게 한 장소에 모아 놓으니 인간이 신을 어떻게 형상화해 왔는지 한눈에 보여.

박물관에 전시된 것 중에 가장 나중인 3세기경 만들어진 석관엔 동물신이 아예 없다. 그리고 인간이 신화 속 신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중세의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세계관이 3세기에도 이미 태동하고 있었던 걸까?

20181225_142456.jpg
IMG_2756.jpg
20181225_142644.jpg


이것으로 이스탄불 여행은 끝이다. 항상 끝나는 순간은 아쉽다. 3리라가 남아 있는 교통카드 덕분에 이스탄불에 다시 올 수 있는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산 빠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