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가장 사진 많이 찍은 날
"얼음 언덕을 맨발로 걸으라고?"
나처럼 난감한 얼굴로 망설이던 사람들도 몇몇 있지만 결국 모두 신발을 벗어 든다. 양말을 신고 걷는 사람도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양말을 하나 더 가져왔을 것이다.
터키의 파묵칼레는 관광지가 되면서부터 훼손이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없게 되었다는 후기가 있어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던 곳이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꽁꽁 얼어붙은 언덕을 한 겨울에 맨발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볼품 없어졌다는 풍경을 굳이 많은 고생을 하면서까지 봐야 하나? 좀 망설여진다. 그러나 여기까지 힘들게 운전해 온 광민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난 저혈압에 몸이 차서 차가운 걸 아주 힘들어하는 편이다.)
다행히 생각보다 견딜만했고 곧 따뜻한 온천물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눈 앞에 펼쳐진 믿기 어려울 만큼 황홀한 풍경은 그곳에 온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풍경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더 좋은 것은 내가 그 풍경을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을 느끼며 그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 좋지 않은 후기 덕분에 만족도가 더 높아진 걸까? 여행을 시작한 후 오늘이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날인 것 같다.
파묵칼레는 고대부터 치료를 위한 휴양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자연 풍광 못지않게 광활한 유적지 히에라폴리스가 펼쳐져 있고 볼거리도 많다. 특히 끝도 없이 늘어선 부와 권력자의 오래된 석관들이 내게 말한다. 지금 바로 여기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즐기라고.
입구에 신발과 짐을 보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가지고 온 덕분에 간식도 먹어가며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사실 나는 힘드니까 두고 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신을 신고 다녀야 하는 유적지가 훨씬 더 넓다.)
유적지에서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엔 황혼까지 더해져 물빛과 얼음빛은 더 신비로운 빛깔이 된다. 얼음 언덕 끄트머리까지도 아쉬워서 한 번 더 돌아본다.
우리는 파묵칼레 초입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만 즐길 뻔했다. 마침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 하는 때라서 별 기대 없이 여기서 며칠간 쉬어가자고 했다.그러다 피로가 풀리자 힘든 운전을 하며 여기 까지 온 광민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기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파묵칼레에서 쉬는 동안 바삐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일기도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했다.
12,26, 이즈미르 가는 길
이스탄불에서 깜깜한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470킬로를 달리는 동안 날씨가 여러 번 변했다. 비 오다 흐리다 맑다 진눈깨비 우박 눈비 등등. 그러나 날씨 못지않게 변화가 많은 터키의 교통 시스템에 우린 많이 당황했었다. 터키에 들어올 때는 국경부터 거의 정차하는 일 없이 이스탄불의 숙소 근처까지 왔었다. 그리스에서 고속도로비를 많이 내던 터라 고속도로 요금 없이 이 넓은 길을 이용하는 게 횡재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이즈미르에 오는 길 첫 100킬로 정도 거리에서 두 번에 걸쳐(114.8,31,85) 많은 돈을 냈다.(이틀 치 캠핑카 주차장 요금이다.) 우리는 나머지 거리가 아직도 300킬로가 훨씬 넓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을 고속도로비로 쓰게 될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고맙게도 그때부터는 국도여서 고속 비를 면했다. 도로 상태는 아주 좋았기 때문에 다음부턴 국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12,27 이즈미르의 기억들
아침에 트램 표를 사기 위해 역의 직원에게 물으니 표를 구할 방법을 모는다. 말도 통하지 않고 서로 쩔쩔 매고 있을 때 영어가 되시는 분이 자신의 카드로 타게 해 주고 우리가 돈을 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역의 직원이 한 명분만 받았다) 그분은 트램을 기다리는 동안은 물론, 트램을 타고 나서도 우리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를 계속 자신의 핸드폰으로 찾아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내려야 할 차례가 되자 우리 쪽으로 와서 내려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을 가리키면서 거기서 표를 사라고 알려 주셨다.
가고 있는 길에 건너편 다른 쪽에 지하철 역으로 보이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메트로라는 이름의 창고형 매장인데 이름이 지하철이란 단어와 똑같다) 저것이 지하철 역처럼 보인다고 광민에게 말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와 저기는 지하철역 아니라면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메트로를 자세히 알려 준다. 그분도 역시 지하철 역 근처까지 우리가 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시 한번 다가와 지하철로 내려가는 길을 확실하게 알려 주었다.
확실한 친절을 베푸는 터키인들은 릴레이를 하듯이 지하철 역 안에서도 곧 만났다. 기계는 충전만 되고 1회권이나 최초 카드 구입은 역의 창구에 가야 하는 것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이번엔 친절한 터키 여인이 도와주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시스템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참 안심되는 나라이다.
시장도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아 보여 그들의 일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음식점의 질도 양도 가격도 이스탄불 보다 훌륭했다. 하지만 이 곳도 역시 거리에 복권을 파는 분들이 많이 눈에 뜨였고 아직 중학생도 채 안돼 보이는 나이의 아이까지 손님을 부르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우리는 말린 과일들을 조금 샀다. 엄청 달고 맛있다. 여행의 피로회복제로 그만이다.) 거리의 자동차들도 바빠 보였고 콩나물시루처럼 복잡한 버스와 트램에 타고 오가는 사람들도 여유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코낙 광장은 여유로웠다. 특히 시계탑이 참 예뻤다. 파란 하늘과 옆에 있는 야자수들과 또 바다와, 방향을 돌아가면서 보아도 멋졌다. 지금까지 보았던 시계탑 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기대 없이 와서 일까? 이즈미르가 은근히 매력이 있다. 광민도 그렇다고 한다. 코낙광장의 시계탑은 오스만 마지막 황제 즉위 25주년을 기념해 시민들이 모금을 해서 만든 탑이라고 한다. 그 탑이 만들어진 것이 1909년이라 하니 대한제국의 마지막과 참 가깝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첫째 아들 성두의 생일날
그릴에 구운 닭고기와 튀긴 두부 위에 얹은 쇠고기 찜으로 외식도 하고 멋진 카페에서 싼 홍차 대신에 아메리카노와 겨울 차도 주문했다. 사실 난 홍차 두 잔을 주문하고 싶었지만 광민이 홍차보다 세 배나 비싼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오늘은 성두를 나은 날이니 나를 위해 좀 더 좋은 차를 마시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는 홍차를 모든 곳에서 4리라에 팔고 주는 유리잔도 모두 똑같다. 하지만 커피는 세 배이고 다른 차들도 10리라 이상이다. 터키 식당에서 물은 2리라인데 아이란 이란 요거트도 2리라이다. 조금 고급 식당에서는 물을 무료로 주기도 한다. )
12월 28일 에페소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간들이 흩어져 있는 유적지는 폐허가 되었지만 과거의 영화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과거 유적의 주인들은 이제 이방인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문화권의 터키인들 입장에서 과거의 어마어마한 유적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해졌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아르테미스 신전에 관한 이야기와 과 장서로 가득 찼던 도서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