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1일
카파도키아 버섯 바위들이 우리 집 정원 석
카파도키아 오는 길에 러시아 도로만큼이나 험준한 길을 한 번 만났지만 더 이상 네비에 속아 좁은 길로 들어가는 실수는 하지 않아서 곧 큰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터키는 도로가 비교적 넓고 상태가 좋은 편이라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며 광민은 캠핑촌에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으려고 캠핑카를 마련한 것 아닌가?
지금 고등어조림과 따뜻한 밥이 익어가고 있는 우리 집 앞마당에 카파도키아 커다란 버섯 바위들이 한가득이다. 한가한 맘으로 오늘 하루를 다시 정리해 본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장미계곡에 붉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버섯 바위들 덕분에 잠시 내가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 황금빛 노을로 빛나는 순간이어서 더욱 드라마틱했고 나는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순간 이동된 기분이었다. 지금 이대로도 너무 좋은데 광민이 조금 떨어진 전망대로 가자고 한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먼지를 일으키며 속력을 내서 달리는 놀이 차들이 위험스러워 보였고 가파른 언덕길로 올라가는 말도 너무 가까이에서 위태롭게 보였다. 언제나 겁이 많은 나. 사람들은 이런 나와 달리 절벽 아슬아슬한 곳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들을 찍느라 분주하다. 절벽에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또 더 높은 꼭대기에 올라간다. 지는 태양빛을 받은 반대편 절벽도 황홀경인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지는 쪽으로만 향해있다. 그 모습도 참 신기하다.
그러나 어느 방향이든 아름다운 순간은 짧게 지나가 버린다. 어느덧 하나 둘 관광객들이 떠나고 가끔씩 들리던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만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의 버섯바위들이 우리 집 정원석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광민이 600킬로나 운전을 했으니 빨리 맛있는 밥을 차려줘야겠다.
2월 22일 아침 깜짝쇼
아직 깜깜한데 갑자기 밖이 환해지고 소란해져서 잠이 깼다. 창밖을 보니 열기구들이 화려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다. 근처에 열기구 출발 지점이 있었다. 우리는 자다가 뛰어나가서 아주 화려하고 재미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심한 탓에 열기구 타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대신 열기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화려한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다.
2월 23일 절벽,절벽,절벽.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두 군데의 야외박물관을 갔다. 구태여 야외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웅장한 버섯 바위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지만 야외박물관에서는 사람들이 살던 동굴 집이나 포도주 보관소 혹은 교회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의 프레스코화에서도 그리스의 마테오라에서 처럼 예수님이 부처님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심지어 성서를 들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야외박물관은 많은 관광객들로 조금 붐볐는데 특히 중국인 관관객들과 마주치면 좀 피곤한 느낌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어디서나 좀 많이 떠들고 사진 찍는 곳을 독차지하고 좀처럼 양보가 없다.
전망 좋은 곳에 가서 절벽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야외 박물관도 많은 절벽을 지나야해서 익숙해졌다고 믿고 싶었고, 몇몇 사람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는 모습에 용기를 내어 보았지만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절벽길이 너무 무서워서 중간애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와 지나가던 터키 남자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광민은 괜찮다고 했지만 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눈물이 날 뻔했다. 무게 중심이며 각도에 대해 광민이 조언을 해 주었지만 무서우니까 땅에 자꾸 붙어 버리고자 하는 본능만 남아서 더 위험했다. 광민은 나를 두고 몇 군데 더 다니기도 했지만 나 때문에 더 이상의 트레킹은 포기하고 카페로 가서 쉬기로 했었다. 카페의 야외에도 절벽에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나오는 길에 용기를 내어 앉아 보았다. 광민이 나 때문에 너무 절벽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안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안전장치도 없이 절벽길을 다니는 것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 안전사고 문제도 있고 자연이 더 많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난 처음 정박 장소가 좋았었는데 광민은 또 새로운 장소를 원한다. 우리는 정박지에서 또 한차례 짧은 절벽 트레킹을 했다. 이곳은 앞 뒤로 탁 트인 들판이었는데 발아래로 절벽이 펼쳐지고 있는 걸 보면 고원지대인 것 같았다. 광민이 자꾸 아찔한 절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맘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곳은 아예 관광객이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2월 23일, 24일
동굴 숙소
전 날 검색해놓은 동굴 숙소로 향했다. 광민은 좀 더 비싼 호텔을 가거나 가격 대비 시설이 좋은 숙소에 가자고 했으나 난 반드시 동굴 숙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동굴 숙소가 아니라면 반드시 숙소를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직 여행의 피로가 누적된 것도 아니고 앙카라에 이틀간 묵을 숙소를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층에 있는 숙소 카페에서 아무 때나 차를 마실 수 있는데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전망이 좋다. 우리는 일찍 체크인을 한 덕에 1박이지만 충분한 이틀을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욕실엔 월풀 욕조도 있고 앙증맞은 동굴 방은 동화 속에 나오는 공간처럼 아늑했다. 예쁜 나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테라스에는 푹신한 그네 소파도 있다. 다음 날 아침은 바람도 없고 맑은 날씨에 첫날처럼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열기구들이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우리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는 소년이 너무 어려 보여서 나이를 물어보니 열다섯이라고 했다.(터키에선 아동의 노동을 많이 접하게 된다.) 여러 개의 커다란 접시를 가득 채워 수북하게 가져다 놓느라고 많은 시간이 걸렸으나 음식들의 대부분은 겉치레다. 몇 개면 족할 수북한 올리브와 먹기 힘들 정도로 엄청 단 과자들, 그러나 정작 계란 프라이 하나 없다. 그래도 역시 남이 차려준 음식은 고맙고, 따뜻한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