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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Dec 25. 202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조금 길어진 발칸의 사연

 2019년 3월 22일


세르비아의 국립공원에서 1박 을 하면서 세르비아 역사에 대해 조금 공부했다. 세르비아를 나가기 전에 세르비아 청년이 왜 오스트리아 황제 부부를 쏘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다. 소수민족과 평화공존을 원했던 오스트리아 황제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약자 편에서 굴러가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평화를 사랑했던 황제가 제거되고  오히려 전쟁의 명분이 생긴 사건이었다. 


그렇다 해도 '전쟁'을 도발한 국가들의 국민들은 무슨 명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일까?

'애국'이란 이름으로 값도 없이 죽어갔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참담하다.


 세르비아 청년이 황제 부부를 쏘았던 사라예보가 멀지 않았다. 

그는 왜 크로아티아 출신이면서 골수 급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되었을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2019년 3월 23일 

친절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람들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투즐라'라는 도시다.  아직 환전을 하기 전에 도착한 주차장에서 주차료를 낼 방법이 없어 쩔쩔매고 있을 때 한 친절한 신사분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주차 관리인에게 우리 사정을 알려주고 대신 주차비를 내주셨다. 여기도 세르비아만큼이나 사람들이 친절하다. 이름에 담긴 두 지역에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인 세 민족, 혹은 세 종교 집단이 대통령도 교대로 하면서 평화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의 축제가 있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지만  정작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도 궁굼하다.

사라예보의 공동묘지 주차장

 저녁 늦게 사라예보에 도착했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제 부부를 암살한 바로 그 장소이다. 그런데 어쩐지 수상하다. 마을  한쪽에 공동묘지가 있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시내 한 복판 공원에 바로 붙어 있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 원래 공원의 부지에 급하게 묘지를 만든 것 같다. 불과 얼마 전에 조성된 것처럼 보이는 묘지는 세계대전과 상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 공동묘지 근처 유료 주차장에서 하루를 정박했다. 묘지의 설명을 보니 1990년대 초 세르비아에 의해 사망한 보스니아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스니아의 참혹했던 순간들이 그대로 보존된 곳을 방문하면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방금 따뜻한  환대를 받고 지나온 세르비아인들이 이 참혹한 역사의 장본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너무 얼마 안 된 과거의 일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던 시절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가끔씩 비참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었지만 나한텐 그저 먼 나라의 일일 뿐이었다. 빚진 마음 때문인지 사라예보의 참혹한 역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어 져서 머물 곳을 찾았다. 그러나 마땅히 우리 차를 품어줄 수 있는 숙박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모스타르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3월 24일부터 3일 간 모스타르

모스타르에 들어오기 전에 아침 먹은 식당 풍경

식당 아래로  자블라니 카 호수로 이로 이어지는 길에 예쁜 들꽃 잔치를 보며 사라예보에서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았다. 


간단한 오믈렛과 수프를 주문했는데 수프가 너무 화려하고 커다란 용기에 담아와서 놀랐다. 사기 접시에 덜어 주었는데 맛을 보니 인스턴트다. 그리고 보스니아식 커피를 주문했는데  터키식 커피가 나온다. 화려한 겉치레를 보니 터키가 바로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모스타르 구시가지에서는 터키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다.) 



모스타르에서 3일간 쉴 집을 얻었다.

우리가 얻은 집은 단정한 삼층집인데 주인이 일층에 살고 호스트의 어머니는 나와 동갑이다. 아주 깨끗하게 집과 정원을 관리해서 쾌적하다. 마당도 넓긴 하지만 골목이 좀 비좁아서 우리 차는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 호스트가 직접 주차시켜 주었다.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참 좋다.


예쁜 다리의 비통한 사연

날이 아주 화창하고 조금 더워서 샤워를 하고 한 잠 잔 후에 마을 구경을 갔다.  예쁜 다리에서 수영복 차림의 남자가 서있다. 돈을 받고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렇게 예쁜 다리에도 비통한 사연이 있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가 살고 있었는데  1993년 어느 날 크로아티아 쪽에서 보스니아 주민을 향해  총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백 년간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웃이 누구 때문에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했을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멀쩡했던 다리가  당시 부서졌었다고 한다. 도시 곳곳에 그때 일을 기억하기 위해  총탄 자국을 그대로 놔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스니아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에서 참혹한 인종청소를 당해야만 하는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2008년 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강물 속에 빠진 돌덩이까지 건져 올리고 다리를 만들 당시의 채석장에서 돌을 가져다 만들었다고 한다. 아치형 다리는 강물에 비쳐서 동그란 원을 만들어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 아름다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제 다시 옛날처럼 서로 다른 종교 집단이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보스니아계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화장실도 돈을 받고  슈퍼에서 돼지고기도 안 팔기 때문이다. 터키를 벗어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고기를 사 오지 않은 걸 엄청 후회하게 될 줄이야. 


보스니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생우유를 팔지 않는다. 멸균우유나 요구르트 치즈 햄 등을 팔고 신선육도 드물다. 커다란 슈퍼 한 군데서 겨우 쇠고기를 사 왔다. 

저녁엔 양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3월 25일

아침을 먹고 나서 잠을 많이 잤다. 전 날 베개가 높아서 잠 자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피곤했다. 차에서 우리 베개를 가져오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저녁때가 다되어 외출을 했다. 식사비를 절약하는 대신 멋진 호텔 커피숍에서 카푸치노와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착하다. 에너지 충전하고 구시가지의 다른 쪽으로 가보니 현대적인 공원과 건물이 즐비하다. 모스타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이 모두 손에 손을 잡은 모습을 그려놓은 커다란 달걀 모양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민족과 다종교를 품은 발칸엔 평화가 절실하다.



 이슬람 사원과 정교회의 첨탑들이 서로 뽐내듯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마침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와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로 좋은 화음을 이뤄내길 바라고 싶은데 서로의 귀에 거슬릴까 걱정되는 마음이다. 종교가 과도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거나, 드러내 놓는 것에 대해 광민이 비판한다. 나도 같은 심정이다. 서로 배타시 하거나 적대시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그림도 참 좋다. 광민이 그림을 사고 싶어 했지만 구경만 했다.  어쩐지 그런 게 다 욕심인 것 같다. 우리가 찍어놓은 사진으로도 충분하다. 저녁은 집에 와서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광민이 아주 맛있게 먹는다. 내 요리실력이 좋아진 건지 배가 고팠던 건지... 낮에 잠을 자서 인지 밤에 영화를 두 편이나 보았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레지스탕스.


3월 26일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서 날이 안 좋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였다. 쇠고기 국물 맛이 제법 괜찮다. 고기 건더기가 너무 많아서 점심때 다시 국물을 좀 더 만들어 미역국을 또 먹었다. 저녁 때는 남은 재료들을 사용해서 스파게티를 할까 생각했는데 광민이 밥을 먹자고 해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산책을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돼지고기를 살 수 있었고 내가 만들어 두었던 양배추 김치가 국물이 알맞게 익었기 때문이다. 광민이 김치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는다. 반찬투정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맛있는 걸 먹을 때의 표정은 확실히 다르다. 


3월 27일, 28일

3일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참 많았다. 

3월 29일

지금 강에 해가 지고 있다. 보스니아의 트레비네에 있고 여기도 모스타르처럼  트레비스니차강이 마을을 양쪽으로 나누고 있다. 모스타르는 구도심 한복판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지만 여기는 구도심 한 복판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슬람사 원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크다. 산 위에는 그리스 정교회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크로아티아를 20여 킬로 남겨놓은 곳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ㅋ캠핑카 여행의 장점은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마음놓고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교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정체성을 가르칠 것인가?


편향된 민족주의나 종교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똑똑히 목격한 선생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잘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세계가 배워야 할 가치를 가장 먼저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니다 보면 기록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잠시 후에 하려고 마음먹곤 하지만 순간을 놓치고 나면 기억이 사라져 버리곤 한다. 가계부를 쓰는 일도 요즘엔 더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다.




*조금 길어진 발칸의 역사 공부


여행기를 쓰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순서가 되자 두 달 여동 안 쓰기를 멈추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여러 참극의 장소를 가보았지만 이곳처럼 머리가 복잡해지는 곳은 없었다. 정교회가 주를 이루는 세르비아와 가톨릭이 주를 이루는 크로아티아 사이에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이 두 종교(여행 전엔 두 종교가 이렇게까지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와 함께 회교도가 주를 이룬다. 복잡한 민족과 종교문제 때문이었을까?


수도 사라예보의 시내 한 복판 공원에 바로 붙어 있는 묘지에는 끝도 없는 무덤들이 있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슬픈 통곡이 들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따스한 대접을 받으며 지나왔던 세르비아가 이 무덤의 통곡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방금 행복하고 평화로운 환대를 누리고 지나온 세르비아를 악마화 하는 스토리는 어쩐지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역사를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짧은 여행 일정 중에 공부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여행기를 쓰기 위해 여행 중에 못 다했던 공부를 이어갔다.


발칸의 원래 이름은 '하이모니아'였다. 그리스 신화의 '하이모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이모스는 신의 노여움으로 산이 되었다. 터키어로 험한 산지라는 뜻의 발칸이라는 단어를 오스만이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이름으로 확정되었다. 오스만에 의해 살던 곳을 등지고 각지로 흩어져 이방인이 돼야 했던 세르비아인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준비 없이 몰려드는 이방인들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것을 이유 없이 내주어야 했던 사람들. 발칸의 비극의 출발점에 오스만이 보인다. 그리고 몇 백 년 후 뒤늦게 제국주의 반열에 오른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발칸이라는 통로가 필요했다. 발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들어가 시간이 흐를수록  본질은 보이지 않게 된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값도 없이 대리전쟁을 치르고 그 속에 깊이 쌓인 분노가 발칸에 휩싸였다. 인종청소의 시발점은 무솔리니나 나치의 앞잡이였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괴뢰정부였다. 1,2차 세계대전을 지나 1990년대까지 비극의 명분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황제를 쏘았던 청년 가브릴로는 크로아티아 출신이었다. 크로아티아에 살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절실해 보이고, 그것이 정의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어느 한쪽을 악마화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가릴 뿐이다. 나도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서방언론에 가리어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6.25도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공의 대리전이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가? 이제 서로 악마 화하는 발상은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발칸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발칸은 하이모니아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은 신의 노여움이 사라진 진짜 평화로운 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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